가만히 바라보는 빌뉴스의 아침
Labai Aciu
일요일
일주일째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눈 속에 파묻혔다. 동네 숲에는 주인과 산책하는 개들과 이른 아침부터 눈 속을 조깅하는 사람들과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젊은 부부가 보인다. 눈이 이렇게 오는데 조깅이라니.... 어느 날 빌뉴스에 뚝 떨어진 동양 어느 나라에서 온 나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이들의 일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쳤나 하면 또 오고 이젠 눈이 녹으려나 하면 또 오고.... "왜 매일 눈이 와요?" 하고 물어보니 학생들은 “선생님, 이제 1월 달까지 계속 눈이 와요. 온도도 영하 25까지 떨어져요”라며 일상의 겨울을 말해준다. 당장 이곳 사람들이 신는 눈길에도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 발목까지 오는 튼튼 부츠를 사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이곳의 제설작업은 정말 잘 조직화되어 눈이 옴과 동시에 제설차가 보이고 노란색 조끼를 입은 제설 작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제설작업을 하는지 감탄이 나왔다. 그래서 눈이 오고 얼마 후엔 큰길의 눈은 대부분 녹고 집 앞 눈 정도만 동네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치운다.
지난주에 열심히 넉가래로 눈을 밀고 계신 옆집 아주머니에게 “라바이 아츄(정말 고마워요)”살갑게 인사하니 반갑게 웃어 주시면서 뭐라고 한참 이야기하신다. 못 알아듣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는 다시 “아츄(고마워요)”로 인사한다. 이분은 내가 리투아니아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시나? 내가 아는 리어는 고작 “나모 바르다스 준(내 이름은 준이예요)”과 “라바이 아츄(정말 고마워요)” 밖에 없다. 지난번 퇴근길에 현관에서 만났을 때 새로 이사 왔다고 잠깐 인사했는데 친절하게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주시며 반갑다고 하셨다. 은발과 금발의 머리색이 많은 리투아니아의 여자들은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단정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먼저 다가와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호의에 따뜻하게 웃어준다.
다른 나라에게서 산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도 대단한 언어능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냥 따뜻한 마음으로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인 듯 이들의 그림 속에 조용히 녹아드는 것, 이들의 삶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잠시 머물렀던 세상의 사람들은 내 기우가 무색하게 모두 따뜻했고 다정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아내의 모자 매무새를 챙겨주는 노신사의 눈에서 ‘아 이곳도 따뜻한 곳’ 임을 매일매일 눈이 오는 나라에서 내 집 앞 눈을 치워서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돕는 모습에서 또, 어느 고기가 소고기인지 몰라 번역기를 들고 주저하는 내게 따뜻하게 다가와 저게 소고기라고 알려주는 마트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난 이곳에서도 잘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안정감을 느낀다. 장바구니를 두 개나 들고 일주일 장보기로 나선 마트 앞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보라색 머플러를 두르시고 귀여운 피클을 담아와 팔고 계신다.
난 이 나라가 점점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