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평상에 누우면 별이 쏟아질 듯 밤하늘에 가득하였다. 이른 저녁상을 물리고 남동생과 평상에 누워 엄마의 별자리 이야기들을 옛이야기 듣듯 들었다. 어린시절엔 별들이 지닌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소를 모는 견우와 베 짜는 처녀 직녀의 사랑이야기를 엄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듣다보면 어린 시절 사랑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졌다. 일곱명의 효자가 밤마다 하천을 건너는 엄마를 위해 디딤돌이 되어주었다가 일곱 별이 되었다는 북두칠성이야기. 에티오피아의 여왕, 카시오페아가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다가 신의 분노를 샀고 결국에는 딸 안드로메다가 해변의 바위에 묶여 희생될 뻔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어린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저들처럼 사랑 때문에 눈먼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효도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스스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교만해지지 말아야지 하는 삶의 자세를 별들에게 배운 셈이다.
조금 커서는 윤동주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고서 운명처럼 시인과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를 통해 만난 윤동주 님은 상상하건대 순수한 남자임에 틀림없는 듯하였다. 이후에 그의 사진을 보고 너무 잘생겨서 또 한 번 감동하였다. 그는 밤하늘의 별에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 부여하였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커가면서는 사는 일이 바빠서 밤하늘을 볼 일이 얼마 없었다. 그러다 인생 2회 차를 계획하며 나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변 화단에 겨울인데도 별스럽지 않게 핀 키 작은 잡초조차도 눈에 띄었고 가끔이지만 밤하늘도 다시 올려다보게 되었다.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서 살아보겠다고 제주에 머무는 동안 어린 시절 보았던 그 별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갈 때 한라산 중턱의 1100 고지를 몇 번 지났었는데 여기서 보는 밤하늘이 그렇게 맑고 깨끗하다고 해서 내내 벼르고 있었다.
밤이 오면 세상의 빛이 제주의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제주에도 어둠의 시간이 온다.
1100 고지 휴게소까지 버스가 운행되나 일찍 끊겨서 자동차로 운전해서 가야만 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었다. 한라산의 나무들은 한 무리가 되어 어두운 밤에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바람이 불어 흔들릴 때는 살아서 숨 쉬는 또 다른 파도 같았다. 제각각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늘고 긴 가지들은 춤을 추는 것도 같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같기도 하고,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숲 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을 노루며, 멧새며 동물들이 별을 보겠다는 사람들의 집념 때문에 그들의 밤까지 방해받는 게 아닌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1100 고지에서 늦은 밤, 북두칠성과 어린 시절 보았던 별자리들이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밤하늘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린시절의 나와도 재회를 하였다. 지금은 비록 별자리앱을 켜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짚어가며 페가수스와 처녀자리를 보고 있지만 엄마가 일러주신 모든 별자리들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지구를 지켜보며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1100고지 탐방로 노루상
엄마는 사람은 죽으면 모두 별이 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이모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 밤하늘에 떠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또 별이 되겠지. 나는 별 하나하나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할 것이고.
아름답지만 때로 위험한 밤바다에서 옛날 뱃사람들은 나침반이 없어 별자리를 보고 이동하였다고 한다. 그들에게 북극성은 그 기준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으레 북극성의 찬란한 반짝임을 통해 바닷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북극성은 실은 아주 밝은 별이 아니라고 한다. 북극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본점이 되는 두 별자리인 국자모양의 북두칠성, 그리고 W자 모양의 카시오페아를 먼저 찾아야 한다. 마침 그들의 모양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국자 모양에 또 알파벹이니 어린아이도 쉬이 찾을 수 있다.
지혜로웠던 옛날 항해사들은 이렇게 다른 별자리의 도움을 받고, 바람과 물결의 움직임을 살피며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자연환경과 지혜롭게 조화를 이루어 항로를 개척해 나갔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드넓은 인생의 바다에서 홀로 전진하며 살아나갈 수 없다. 나 홀로 전진하기보다 주변의 조화와 공존의 힘으로 우리만의 북극성을 찾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나 홀로 무엇이든 잘 헤쳐 나갈 듯 열심만 부렸다면 이제는 주변을 먼저 살핀다. 그만큼의 경험이 쌓이고 나혼자 잘되는 것의 덧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주변을 아우르며 세상을 보게 되는 지혜가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어두운 밤바다에서 항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북극성을 잘 찾고 그들의 바다에 불어오는 바람을 잘 맞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