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 여기까지 왔음에도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남해에 계신 부모님들은 더위에 잘 지내시는지, 부산에 시어른들은 건강하신지 아들은 새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잘하고 다니는지, 딸은 공부 잘하고 지내는지도. 너무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사실은 스스로가 내 인생에 집중하고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환경에 의한 문제라기보다 내 마음의 문제가 더 컸음을 인정한다.
온전한 쉼을 위해서는 내 마음이 고요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몰입하기.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위해 차분히 루틴을 만들고 하루를 투자할 것.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가지치기할 것.(이것은 혼자 떨어져 있으니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은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가 보다. 연락들을 많이 해 온다. 특히, 남편은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은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나의 기분을 살펴주고, 그의 약속대로 소박하지만 매일 아침을 차려주었다.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기꺼이 산책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띵동.
이것은 카톡이 아닌 문자 울림. 아들이다.
'엄마 다음 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제주에 엄마 보러 가도 될까요?'
두 번째 적색경보이다. 에미가 두 번째 인생 살아보겠다고 해도 아들을 내 팽개치고 거절은 차마 못하겠다.
'그래 담주 화요일? 엄마가 공항 픽업 갈게.'
서울에 집 놔두고 온 가족이 제주로 제주로 모이고 있다.ㅠ
라라라라라라라랄랄랄~
이것은 핸드폰 전화벨이다. 딸이다.
'엄마 다음 주 목요일부터 알바 비는데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제주에 엄마 보러 가도 될까요?'
이것은 세 번째 적색경보다. 정신없다.
'그래 담주 목요일? 엄마가 공항 픽업 갈게.'
서울에 집은 텅텅 비게 생겼다.
아이들이 각자의 스케줄을 맞춰 제주에 내려와 제주집은 꽉 찼다. 떨어져 있을 때는 궁금했는데 막상 옆에 와 있으니 여기까지 따라오냐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어이가 없다. 그렇게 다시 온 가족이 제주에서 쉼을 가져보리라는 엄마를 홀로 두지 못하고 각자의 스케줄이 빈다며 제일 먼저 나를 찾아 주었다.
결혼과 육아와 가사 때문에 인생 항로가 변경되어 여기까지 왔지만, 그들이 없는 내 인생은 또 상상할 수가 없다.
싫으면서도 좋다. 이 상황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니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제주 맥주공장을 가보자에 동의를 해서 다 같이 맥주공장으로 갔다.
제주맥주공장, 한림읍 제주시
제주맥주의 제조과정을 견학하고 공장내부를 둘러보는 투어가 있었다. 다들 술 잘 마시는 유전자는 타고났네. 나를 빼고. 술이라는 게 분위기를 적절히 올려주는 특별한 온도가 있다. 오랜만의 어색함을 뭉그러뜨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한다.
'그래, 지난 시간 너희가 있어 최선을 다해 살아올 수 있었고, 나만 알던 이기심에서 남을 돌볼 수 있는 마음도 알게 되었지. 교만한 마음을 내려두고 겸손함도 배울 수 있었어.'
밤에는 애월의 숨겨진 펍이 있다길래, 나이제한도 없다길래, 술에 취해 적당한 흥이 오르면 춤도 출수 있다길래, 못 이기는 척 아이들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