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화려한 의상을 입고 30여 명의 광대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모두들 화장을 하고 제각기 다른 표정이다.
마냥 유쾌한 듯 웃고 있지만 지쳐 보이기도 하고, 환한 것 같은데 애잔하기도 하다. 다 같이 모여 있지만 또 제각각 외로워 보인다. 광대들은 하나하나의 고독한 섬처럼 흩어져 있어 다채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중에 가장 나와 닮은 듯한 광대 옆에서 같은 포즈로 앉아 셀카를 찍었다. 제목은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면서.
비가 오는 날은 제주 바다를 가기도 오름을 등반하기도 애매하다. 마침 서귀포 포도뮤지엄에서 전시회가 있어 별 기대 없이 들렀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라는 전시회 제목이 나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전시회 주제는 ‘디아스포라’,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집단 또는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떠나는 사람들은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다양성이 주는 혼돈 속에서 서로 배척하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가 되는 경험도 한다. 디아스포라 속에서 생기는 소수자가 처한 소외와 어려움에 공감해 보고자 하는 전시회의 의도가 마음에 와닿았다.
문득 제주에 정착한 친구와의 며칠 전 만남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제주에 온 지 십여 년 세월이 말해 주듯 친구는 피부도 태닝을 한 것처럼 예전보다 건강해 보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예뻐졌다는 둥, 날씬해졌다는 둥 여고생들처럼 수다스럽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 얘기까지 하고 나니 이제 먹고사는 이야기 차례다. 잘 지내는 줄만 알았는데 힘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친구는 괜찮은 카페를 해 보겠다고 그렇게 서울을 떠났었다. 제주의 자연도 좋고, 다 좋은데…….
말끝을 흐리는 친구에게서 그간의 사연이 길었구나 싶다.
친구는 바다 근처 시골 마을에 카페를 차리면서 주변 주민들과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친구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생활 민원 문제도 더 오래 걸리는 듯했고, ‘육지 것’이 와서 설친다는 말에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 같은 묘한 거절감과 외로움도 느꼈단다.
지형적인 탓에 가난했던 제주는 100년 200년 전에는 먹고살기 힘든 곳이었으며 자기들끼리 뭉치는 문화가 만연했다고 한다. 이렇게 지역, 혈연으로 서로 묶이는 것을 제주말로 ‘괸당’이라고 한다. 살기 위하여 가족 간 마을 간으로 서로 연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괸당이 생겨난 것이다.
괸당의 영향으로 지연과 혈연에 중복이 생기면서 모두가 친척이 되고 마을 내에 매놈(완전한 남)이 없다. 마을에서는 동네 어른이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삼촌’으로 부른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 둘 상권을 잡다 보니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제주 섬사람들이 서로 뭉쳐 상권을 지키려는 것은 당연한 연대이다. 외지인이 이러한 제주 괸당문화에 스며들어 정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제주 시내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친구가 정착한 곳은 서귀포에서도 외진 곳이라 괸당문화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괸당문화가 어디 제주 뿐이겠는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낯선 범주 안으로 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게도 백인사회에서 겪은 유색인종으로서의 차별 경험은 힘들었었다. 학교에서도 새 학기가 되면 왕따가 생기고, 요즘 우리 사회 속에서는 다문화 가정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딜 가도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이러한 ‘괸당’을 경험하며 산다. 정치색이 달라서, 출신 지역, 학교, 종교, 혈연관계에 따라 우리는 살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다수자도 소수자도 될 수 있다. 세상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선 또한 더 포용적이며 관대해져야 하지 않을까.
전시회 마지막 방에는 하얀색의 텅 빈 적막한 공간과 빈 보트가 놓여 있었다. 관객이 직접 파란색 물감으로 그림이나 글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관객들이 참여할수록, 수많은 파란 글과 메시지들이 하나의 바다를 이루고, 보트는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풍경이 된다. 관객들이 삶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어떻게든 더 넓고 푸른 바다로 함께 나아가 보자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소외를 경험한 누구든지 또는 누구에게든지 작은 위로의 글과 이야기를 흔적으로 남기는 것은 의미 있어 보였다. 이러한 흔적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을 듯했다.
내 친구도 이 바다에서 잘 어우러져 위로받고 그녀만의 섬을 잘 지켜가기를 바라며 뱃머리에 이렇게 적어본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알프레도 & 이자벨 아퀼리잔, <주소>
다양한 개인물품으로 이루어진 <주소>는 택배상자 140개를 쌓아 올려 만든 대형작품
좌: <아메리칸드림 620> 전시장 바닥에 아이들의 목욕 놀이용 오리 인형들이 길 안내를 하듯 줄지어 서 있다. 미국 애리조나의 관세국경보호청에 따르면 미국 멕시코 국경에 있는 사막에서 매년 수많은 러버덕이 발견된다고 한다. 길이가 무려 620km에 달하는 '죽음의 사막'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이 뒤이어 오는 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러버덕과 같은 밝은 물건들을 이정표로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위:사탕수수농장 우아래:사진신부
20세기초 7천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이주. 사진 신부는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만 손에 들고 태평양을 건넌 조선의 젊은 여성들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