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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Sep 17. 2024

3.서울에서 피아노를 만났다

아빠는 강원도 춘천 어느 산골 마을,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타고난 부지런과 생활력으로 평생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지만, 그 시절이 다 그렇듯,

부지런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농사밖에 모르는 촌부가 가난으로부터 흔쾌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과 발이 부르트도록 논일과 밭일과 남의 집 일을 해가며 아빠를 비롯한 4남매를 키우셨다.

전쟁 직후 베이비 붐 세대로 태어난 아빠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과 남자형제를 모두 잃은 외할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태어나고 몇 달은 외할머니가 아빠를 바닥에 내려놓지도 않고 내내 안고 계셨단다.

어린시절, 할머니로부터 아빠에게 이어진 지독한 피부질환에 아빠가 괴로워하니, 어디 맑고 용하다는 개울물에 데려가 온몸을 정성스레 씻겨 주신 것도 아빠의 외할머니였단다.

그런 외할머니가 겨우 환갑에 해수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빠는 외가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아빠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춘천에 살던 일가족이 화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아빠만은 춘천 외가에 남아 외할머니와 한방에 지내며 중학교를 마쳤다.

그 시절, 밤새 해수병으로 괴로워하시던 외할머니 기침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고 했다.


그렇게 춘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화천으로 들어온 열일곱의 아빠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다.

중학교도 겨우 보내야 했던 집안 형편에 고등학교는 언감생심이었다.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던 아침 시간, 열일곱의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논일을 하러 나갔다.

학교가는 친구들의 그 뒷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다.

고등학교를 보내달라고 조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에야, 일년이라도 돈을 모아 늦게라도 가려고 해보지.. 더 나이들기 전에 검정고시라도 봐 놓지... 싶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턱밑까지 차올랐던 험한 시절, 꿈꾸는 일 마저 능력이 필요했다.

십대의 아빠는 줄곧 서울을 상상했다.

사방을 둘러싼 매서운 산골짜기 너머 어딘가, 서울이 있다는데...

그 곳에 내 꿈이 있을까. 그 곳에 가면 꿈이 이루어질까

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배기 꼭대기에 올라가 서울방향으로 몸을 틀어 한참을 바라보다 내려오곤 했다.


그 무렵, 친구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들이 즐거웠고 마음에 꿈을 심어주었다.

스무살을 앞두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기숙사가 있는 신학대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어영부영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방학이 되면 고향집에 돌아와 농삿일을 도왔다.

돈 버는 방법은 애초에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엄마를 만났다.

나이는 아빠보다 두어살 많고, 피아노를 잘 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다,

대화를 한번 시작하면 아빠는 절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논리에 밝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법 없어도 살만한 고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결혼을 한다고 하니,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름 마련하신 몫돈을 내어주어 쌍문동에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다니던 신학대도 무사히 마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워 함께 학원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빠 이름 중 한 글자를 따서 피아노 학원 이름을 지어 자랑스럽게 간판에 내어 걸었다.

서울이라고 해도 시골이나 다름없던 쌍문동 바닥에서 꽤나 잘나가는 학원 원장님이 되었다.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돈이 벌렸다.

그 당시 꽤나 명성을 날렸던 황모 성우의 딸도 우리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학원 규모가 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창 잘나가던 신혼 때, 엄마를 쌍문동에 홀로 남겨두고 군대에 끌려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시간은 살같이 흘러 어느덧 군대를 제대하고, 내가 태어났다.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울음소리가 우렁차고, 아빠를 쏙 빼닮은 나에게, 아빠는 세상에 좋은 것은 다 안겨다 주고 싶었다.

공주처럼 키우고 싶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엄마와 피아노는 아빠의 인생에 꽃길을 깔아 주는 듯 했다.




엄마가 조금씩 이상해진다는 것을 할머니는 눈치 채고 있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할머니에게

"아버님이 저희 동네까지 오시고는 저희 집은 들르지도 않고 그냥 가셨어요"라고 말을 하더란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

"너희 시아버지는 촌사람이라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고, 거기까지 갔으면 너희집에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네가 잘 못 본거다"

라고 재차 말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부렸단다.

또 군대 간 아빠 면회를 갔다가 할머니 집에서 자던 어느 날에는 방에 귀신이 있어서 무서워 못 자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엄마의 병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엄마를 덮쳤다기보다는, 본인도 모르게 주변사람도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고 서늘하게 엄마를 삼키고 있었다.


아빠의 천국은 이미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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