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인디아 간디 국제공항

-여행자 거리 시리즈: 인도 델리 빠하르간지1

by 황근기

빠하르간지 1 -인도 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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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자 거리의 원조는 인도 델리의 빠하르간지다. 원래 빠하르간지는 동네의 작은 시장에 불과했다. 그러다 1982년에 델리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지금의 뉴델리 역이 생기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무렵,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유럽의 히피들이 대거 인도로 몰려들었다. 당시 서구인들에게 있어 인도는 동양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미지의 땅이었다. 그들이 교통이 편리한 뉴델리 역 앞에 있는 시장인 빠하르간지를 찾으면서부터 빠하르간지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식당, 여행사, 카페 등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빠하르간지는 메인 바자 로드가 중심인데, 메인 바자 로드 좌우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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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 겨울에 처음으로 인도 배낭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는 상식 밖의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했다. 공항 직원이 몰래 배낭을 뒤져 금품을 훔쳐 간다거나,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아 입국을 지연시킨다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항에서부터 ‘이봐, 여기는 인도야.’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겼다고나 할까.

지금도 공항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떨고 있던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까지 여러 공항을 경험해 봤지만,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만큼 긴장감이 흐르는 공항은 본 적이 없다. 처음 인도 여행을 떠날 때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나도 꽤 여행 경험이 있다고. 나름 여행 베테랑이야. 떨 거 없어.”

그런데 막상 눈 주변이 움푹 들어간 검은 피부의 인도인들이 눈알을 번득이며 먹이(여행자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주눅이 들었다.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지만, 제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도 저들의 손아귀는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2010년도에 공항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옛날 인디라 간디 공항의 살벌한 이미지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요즘은 다양한 교통편까지 생겨서 여행자들은 어렵지 않게 빠하르간지까지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01년도에는 ‘빠하르간지 입성’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빠하르간지까지 가는 길은 고되고 힘든 여정이었다.
당시에는 지하철도, 공항 철도도, 프리페이드 택시도 없었다. 리무진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후 6시 이후에는 운행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나처럼 밤에 인디라 간디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택시나 오트 릭샤를 타고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인디라 간디 공항에서 빠하르간지로 가다 사고를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밤에 혼자 택시를 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었대.”
“새벽에 빠하르간지 앞에서 강도를 만나 복대를 털렸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밤에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필연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아! 빠하르간지로 가느냐? 공항에서 노숙을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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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것도 녹녹지 않아 보였다. 어렵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버스 터미널 대기실처럼 생긴 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노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그곳이 유일해 보였다.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플라스틱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는데, 그 플라스틱 의자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불편했다. 포로가 된 군인이 고문을 받을 때 앉는 의자도 그보단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하면 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옆으로 누워 보려고 애를 써 봤지만 의자 간격이 너무 넓어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렇게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밤을 꼴딱 새워야 하는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반가운 한국어가 들려왔다. 당시에는 ‘친구 따라 인도 가기'라는 여행사의 단체 패키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는데, 이를 통해 단체 인도 배낭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10명 남짓한 단체 배낭여행자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던지 마치 군인들에게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교관처럼 보였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갈 겁니다. 나가자마자 택시 운전수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절대 말을 섞지 말고 앞만 똑바로 보고 걸으세요. 절대 절대에~~~ 대꾸를 하면 안 됩니다. 영어 못하는 척하고 제 등만 보고 따라오세요. 제가 미니버스 문을 열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올라타세요. 아시겠죠?"

옆에서 가이드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나까지 텐션이 올라갔다. ‘여긴 정말 장난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배낭여행객들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가이드를 따라 공항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들이 짊어진 배낭에는 자물쇠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물처럼 생긴 체인으로 가방을 꽁꽁 싸맨 여행자도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그 단체 배낭여행객들의 꽁무니에 묻어 공항을 빠져나갔다.

"혼자 나가는 것보다야 안전하겠지. 혹시 나도 함께 데려가 줄지 모르잖아.’

공항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매캐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어디선가 부탄가스가 새어 나오는 줄 알고 놀라서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난다. 인도의 대기 오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2015년에 버락 오바마가 델리를 이틀 동안 국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의 과학자들은 델리의 대기 오염이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을 위협한다며, 심각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틀 동안 델리에 머무른 시간 때문에 생명이 6시간 단축되었다.”

나는 미국 과학자들의 주장에 조금의 과장도 섞여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델리에 오래 머물수록 호흡기 계통 질병이나 심혈관질환 등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보다 훨씬 더 공기가 안 좋아졌다. 겨울철에는 킬 스모그 때문에 창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기계가 측정할 수 없는 ‘측정 불능 상태(미세먼지 농도 999 이상)’까지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는 날도 많다.

나는 이제 델리의 공기를 ‘공기’라고 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델리의 ‘그것’을 ‘공기’라고 부르는 건, ‘진짜 공기’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니까.

상황이 이런 대도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노 프라 부럼’을 외치며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힌두교의 ‘업’ 사상과 ‘숙명론’이 공기 질을 개선해 보려는 의지마저 꺾어 버린 것은 아닐까? 심히 걱정스럽다.

내가 살기 위해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고 있는 사이,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은 입구에 주차되어 있던 미니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쌩하고 사라져 버렸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긴, 여긴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앞이 아닌가.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간다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남을 돌볼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혹시 나도 함께 데려가 주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내가 바보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공항 안으로 후퇴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총을 든 군인 둘이 굳은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일단 한번 공항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나 뭐라나. 인도에 오면 인도의 법을 따라야 한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절로 “뭐 이런 × 같은 법이 있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밤 12시가 훨씬 지나 있었고,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출입구 앞에 서 있는 외국인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택시 운전수들은 ‘이게 웬 떡이냐!’라는 얼굴로, 군침을 흘리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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