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인류의 미래를 위한 철학적 제언」에서 러셀은 자유를 인류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 중 하나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절대적인 선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법의 틀 안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자유가 완전히 무제한이라면,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고 결국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러셀은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살인자에게 자유를 줄 필요가 없다’는 예를 든다. 사람을 죽이는 자유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유이며, 그런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선에 기여한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유가 곧바로 선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며, 자유는 반드시 법과 윤리, 책임이라는 장치 속에서 제한되고 조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러셀의 사상은 개인의 삶을 넘어, 국제 사회의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그는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국가 간 관계를 규율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법의 부재라고 진단한다. 오늘날 국제 사회는 여전히 힘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으며, 강대국의 이익이 곧 정의로 포장되는 현실 속에서 수많은 약소국과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러셀은 국제법의 실질적 효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을 강제할 수 있는 글로벌 차원의 중립적 군사력, 즉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단일 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단일 군대는 특정 국가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는 지방 경찰이 시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존재이듯, 국제적인 군대 역시 세계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이 군대는 반드시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통제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권력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러셀은 현실적인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한다. 자유는 법 안에서 가장 빛나며, 법은 힘에 의해 지켜질 때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그 힘 또한 통제되어야 하며, 오직 공정하고 중립적인 규칙 아래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러셀의 이 철학은 오늘날의 국제 정세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울림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세계를 꿈꾸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자유를 선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선은 아니다. 우리는 살인자에게 자유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일삼는 자유를 억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자유는 법으로 제한해야 하며, 자유의 가장 가치 있는 형태는 법의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제 관계를 규제하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법이다.
이러한 법을 만드는 첫 번째이자 가장 어려운 단계는 적절한 제재를 마련하는 것이며, 이는 전 세계를 통제하는 단일 군대를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군대는 지방 경찰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법으로 통치하는 사회 체제를 갖추기 위한 수단이며, 여기서 힘은 개인이나 국가의 특권이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립적인 권위에 의해서만 행사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번 세기 안에 개별적 힘이 아닌 법률이 국가 관계를 지배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만약 이 희망이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는 큰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이 희망이 실현된다면 세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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