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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Aug 11. 2024

나를 깨는 사람들

[효율] 뇌의 효율기제-고정관념

일상이라는 챗바퀴를 돌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시야가 좁아지고 사고의 반경이 줄어든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뇌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쓰기 위해 뉴런과 신경을 가지치기한다. 기존 환경에 적응하면 편안해지는 것도 에너지효율 모드에 도달해 뇌가 더 이상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뇌가 고정관념(범주화, 추상화시키는)을 만들어내는 것도 생존에 더 중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고정관념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뇌가 취하는 자연스러운 효율기제이며 모든 고정관념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해가 되는(어떤 고정관념으로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하는 등) 고정관념을 판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뇌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처리할 정보들을 더 이상 투입하지 않거나 기존 방식대로 자동화해 처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많은 정보들이 우리 시야에서 보이지 않고 많은 판단들이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물고기가 평소 물속에 사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 모국어를 쓰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미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렇게 일상을 살다가 문득 물 밖으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면 내가 이제까지 있던 곳과 아닌 곳의 경계를 인지하게 된다. 어디가 더 좋고 나쁜지는 당장 알 수 없지만(대개는 좋고 나쁨보다 나에게 더 맞는 것이 있을 뿐)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력, 여기가 정답이 아닐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 아하모먼트라는 빅뱅과 함께 나의 세계가 확장된다.


경계를 확인하는 모먼트, 인지 영역이 확장되는 경험,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음식과 사람을 만나는 건 즐거움이란 정서와 함께 내가 사는 곳 이외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시야가 확장되었을 때 도파민이 훅 분출되며 상기되는 기분, 몸속 세포들이 리프레쉬되고 새롭게 갈아치워 지는 느낌을 받을 때면 여행의 효용가치를 느낀다. 여행 자체보다는 거기서 얻는 새로움과 즐거움, 놀라움이 여행의 가치를 결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인지 국내여행인지보다는 여행의 콘텐츠와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주하는 나의 감정들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꼭 어디로 떠나지 않아도, 새로운 관점을 나눠주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확장감을 느끼곤 한다. 얼마 전, IT 쪽 친구들과 대화할 자리가 있었다. 찐 문과의 길을 걸어온 1인으로서 대화 내내 소소한 각성을 했다. 편리한 기술이 나오고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과거 방식을 고수했던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이게 편해"라고 방어해 왔던 마음의 내막을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았다. 새로움을 배우는 것이 귀찮아서 해보지 않고 정신승리하려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수의 변화를 이해해보려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지 문득 생각해 보았다.


"너 지금 이거 안 쓰지, 그럼 5년 후에도 이러고 있을걸?"


친구가 던진 이 말의 타격이 크게 왔다. 단순히 하나의 기술을 쓰지 않는 것이니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5년 후 지금 내 방식을 고수하면 기술 양극화에서 못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있을 뿐 아니라 변화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각자가 다니는 회사의 조직문화와 Z세대 구성원에 대한 관점들을 들으면서도 각성을 했다. 산업군마다, 직무마다 공유하는 상식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신입사원들이 발령받은 첫 주에는 팀원들과 점심을 같이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첫 주는 조직생활의 매너이기 때문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과, 근무시간만 잘 참여하면 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별거 아닌 주제였지만 HR적으로 이슈가 되는 세대 갈등 사례이기도 했기에 흥미로웠다.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란 과거에 기반한 상식이고, 지금 조직에 들어온 이들과는 상당 부분 공유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 조직의 문화 속에서 비슷한 이야기만 듣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겠구나라는 당연한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또한 요즘 어떤 취미 활동들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책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본다기에 이과생이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찾아본 단어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도 정확하게 모르는 단어들이 많구나', '우리가 매번 쓰는 단어들만 쓰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가 확장되기 어려울 수 있겠구나'라는 반성을 했다.


예를 들면 '경제적 해자를 구축하다'라는 문장에서 해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찾아볼 생각을 안 하고 맥락상 그런거겠지 하고 넘어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과 친구는 처음 안 단어라고 찾아본 사전 뜻을 우리에게 공유를 해주었다. 해자(垓字)란 단어는 내가 예상했던 뜻과 달랐고 나 역시 이 친구를 통해서 정확한 단어를 알게 되었다. 문과생이라고 이과생보다 언어를 더 잘한다는 생각은 오만이고 착각이다.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단어들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과 정확히 모르면 찾아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시간 반 정도의 짧은 대화시간이었지만 나와 완전 다른 분야와 다른 성향의 친구들과 나눈 대화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마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내 세계의 경계를 두드리고, 나의 세계를 확장해 주는 사람들과 경험들로 내 인생을 재밌게 살아가고 싶다. 과거의 그들과 앞으로의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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