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간척도의 잘못된 활용과 비교의 오류
우리는 다양한 숫자와 지표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등수가 매겨지고 회사에서 고과등급으로 평가받고 집값으로 계층이 구분 지어지며 연애상대로 몇 점인지 점수화되는 등 숫자와 지표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의 많은 것들이 숫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비교가 더 쉬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숫자로 세상을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가늠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지표들은 실제 그대로를 반영하진 않는다. 많은 지표들과 점수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대상을 측정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임의로 수치화한 것일 때가 많다. 절대적인 가치나 순위라기보다는 어떤 기준으로, 어떤 관점에서 수치화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못할 때, 우리는 숫자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숫자화된 지표들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가격이나 등급을 비교하듯 서열을 매기고 차이를 셈하는 사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믿음을 배반하고, 실제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특히, 등간척도에서 그 함정은 명확히 드러난다. 등간척도는 임의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그 기준점에서의 상대적인 높고 낮음을 측정할 수 있게 설계된 척도인데, 차이를 비교함에 있어 실제 대상의 가치를 왜곡하여 해석할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IQ 140인 사람이 IQ 70인 사람보다 두 배 더 똑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IQ 점수는 상대적인 지표일 뿐, 절대적인 지능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숫자의 차이만큼 더 똑똑하다고 해석하는 건 오류가 있다. 온도 역시 20도가 10도에 비해 10배 더 뜨겁다는 주장도 옳지 않고, 수학능력시험에서 90점을 받은 학생이 10점을 받은 학생보다 9배 더 수학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아가, 0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평소 우리는 0이란 숫자를 듣고 "없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모든 0의 절대적 의미가 "없다"인 것은 아니다. 온도 0은 온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이 상온에서 어는점을 의미하는, 단지 기준점으로 설정된 임의의 점일 뿐이다. 또한 수학 시험에서 0점을 받은 학생도 수학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수치를 맥락을 배제하고 절대적인 숫자 그 자체로만 해석한다면 온전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이렇듯, 등간척도는 숫자의 편의성으로 인해 그대로 사용될 때가 많지만 비교하여 사용함에 주의해야 한다. 기업 채용에서 흔히 요구하는 GPA(평점)도 마찬가지다. GPA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의미하며, 기업은 이를 통해 지원자의 학업 성취 능력 뿐 아니라 성실함, 업무 이해력 등을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GPA 점수가 4.0인 학생과 3.0인 학생을 단순 숫자 차이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두 학생이 수강한 수업의 난이도나 수업에 대한 이해도, 과제의 질 또는 교수의 채점 기준 등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요소들을 무시하고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고, 따라서 오늘날 기업 채용에 있어서도 학점은 선발 평가지표의 하나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진 않는다.
개인의 삶에서도 숫자 비교의 오류를 쉽게 저지른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숫자화해 상호 위치를 가늠하려는 습관이 있다. 특히 돈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퓨리서치센터, 2021, 삶의 가치 요인) 소위 몸값이라 불리는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그런 잣대로 연봉 1억 원을 받는 사람과, 연봉 5천만 원을 받는 사람을 비교한다면, 두 사람의 가치 차이를 두 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의 업무 환경과 경력, 흥미와 사회적 가치 등을 고려하지 않은 불완전한 해석이다. 역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숫자가 주어지면 자연스레 비교심리가 작동하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처럼 숫자는 비교에 굉장히 편리하지만 해석에 대해서는 유의해야 한다. 단순, 직관적 이해가 아닌 맥락적 이해를 필요로 하며, 특히 임의로 설계된 지표를 해석할 때는 그 배경과 의미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잘못된 잣대로 평가하고 불필요한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느끼며, 잘못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채용 시즌을 맞이해 한번 더 상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