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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Oct 13. 2021

사람을 리뷰해도 될까요?

내가 만나온 사람들이라는 정체성

프롤로그

  3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나는 주변에서 다양한 반응을 얻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진로를 모색해보고 싶다는 나에게 '너 돈 많으냐?'라고 직설적으로 묻던 임원 분이 있었다. 차장님은 퇴사하는 날까지 나에게 그냥 회사를 다니라고 회유하기도 했고, 대부분은 복에 겨워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왜 나가냐는 비난(?)을 선사했다.


  그때 팀장님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조직에는 회사원 같지 않은 너 같은 사람도 필요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기어이 퇴사를 하고 백수의 험난한 길로 들어섰지만, 그 말은 어쩐지 내게 위안이 되었다. 회사생활 내내 나는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키워가고 있었다. 성취와 인정과 성공이라는 조직 구성원 전체의 목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나는 그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느리고 생각이 많은 나의 기질이 능력 없음으로 비춰질까 항상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그렇게 회사에 꼭 들어맞지 않는 나 자신을 속으로 자책하던 순간에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려 노력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퇴사 이후에 내가 주눅 들지 않고 어디서건 나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에는 저 말 한마디의 몫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인지 더더욱 평소 애청하는 프로그램인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현한 예술가 니키리의 말에 마음이 갔다.

  '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정체성은 계속 변화한다.'

  나 역시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들과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제법 낙천적이고 꽤나 게으른 나라는 사람의 모습을 나 혼자 만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책을 리뷰하듯이, 영화광들이 영화를 리뷰하듯이 내게 어떤 모습이든 유의미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차곡차곡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이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준비운동이 되리라 기대하면서.




  달과 같은 나의 마음이라는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 내 우주의 모양을 함께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하여. 소소하고도 위안이 되는 기억들을 꺼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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