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온 사람들이라는 정체성
3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나는 주변에서 다양한 반응을 얻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진로를 모색해보고 싶다는 나에게 '너 돈 많으냐?'라고 직설적으로 묻던 임원 분이 있었다. 차장님은 퇴사하는 날까지 나에게 그냥 회사를 다니라고 회유하기도 했고, 대부분은 복에 겨워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왜 나가냐는 비난(?)을 선사했다.
그때 팀장님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조직에는 회사원 같지 않은 너 같은 사람도 필요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기어이 퇴사를 하고 백수의 험난한 길로 들어섰지만, 그 말은 어쩐지 내게 위안이 되었다. 회사생활 내내 나는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키워가고 있었다. 성취와 인정과 성공이라는 조직 구성원 전체의 목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나는 그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느리고 생각이 많은 나의 기질이 능력 없음으로 비춰질까 항상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그렇게 회사에 꼭 들어맞지 않는 나 자신을 속으로 자책하던 순간에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려 노력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퇴사 이후에 내가 주눅 들지 않고 어디서건 나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에는 저 말 한마디의 몫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인지 더더욱 평소 애청하는 프로그램인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현한 예술가 니키리의 말에 마음이 갔다.
'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정체성은 계속 변화한다.'
나 역시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들과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제법 낙천적이고 꽤나 게으른 나라는 사람의 모습을 나 혼자 만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책을 리뷰하듯이, 영화광들이 영화를 리뷰하듯이 내게 어떤 모습이든 유의미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차곡차곡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이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준비운동이 되리라 기대하면서.
달과 같은 나의 마음이라는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 내 우주의 모양을 함께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하여. 소소하고도 위안이 되는 기억들을 꺼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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