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일
내가 분명히 알게 된 한 가지는 장애인은 장애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장애인인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내가 세상의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는 왜 안 되는가.
<희망 대신 욕망> 중, 김원영
돌이켜보면 그는 나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선배다웠던 선배였다. 학점을 후하게 받을 수 있는 교양 수업을 추천해주고 과제를 어려워할 때면 본인이 쓴 리포트를 보여주었다. 학식을 잘 사주었고 공강 시간이 겹치면 교내 찻집에서 오후의 볕을 즐기며 함께 차를 마셨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나눠주던 사람이었다. 선배에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전태일평전>이었다.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 나는 선배가 꾹꾹 눌러쓴 빼곡한 편지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의 근육들을 움직여 오래도록 썼을 그 편지를 나도 아주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 선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몇 해가 흘렀을 때, 그의 손은 더는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글로 대화하는 일이 없어졌다.
선배와 함께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선배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나도 선배의 자잘한 부탁에 응하며 무언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오만 같은 게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항상 도움을 받는 것은 나였다. 내 좁은 식견에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마음이 고단해 응석을 부리면 나를 다독여주는 것은 모두 선배였다.
선배의 빈틈 많은 유머감각이, 넓은 혜안이, 숨을 들이키며 웃는 버릇이나 랩을 좋아하는 취향 같은 것들이 선배를 그 자신답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편견 어린 시선처럼 그는 결코 휠체어와 동일시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고비가 많았지만 선배는 활동보조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자립 생활을 했다. 재택근무로 일을 했고, 장애인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오렌지 빛 조명 아래에서 객석을 향해 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도 호상이야. 그치?"
윤선배와 내가 가까운 사이인걸 알기에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윤선배가 처음 병원에서 선고받았던 예상수명은 스무 살이었으니 그보다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고작 서른이 갓 넘은 청년이었다. 이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를 잃고 상심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기에 '호상'이라는 말은 너무도 성글다. 그래서 그 섣부른 위안은 어떠한 마음도 따스히 덮어주지 못했다.
나보다 더 힘들었을 선배를 생각해서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니 이겨내야지 하고 마음으로 그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살면서 누군가의 더 큰 고통이나 불행과 비교해 나의 처지를 달랬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아주 아끼는 사람은 그렇게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선배를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누구라도 마음속에서 내 용기의 디딤돌 따위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달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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