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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Oct 24. 2021

좋은 사람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일

  다독가는 못 되지만 최근 읽었던 책 중에서는 <희망 대신 욕망>이 가장 좋았다. 장애인인 저자의 성장기와 대학시절의 일화를 통해 장애에 대한 문제의식을 세심하고 단단하게 다룬 글이었다.


내가 분명히 알게 된 한 가지는 장애인은 장애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장애인인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내가 세상의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는 왜 안 되는가.

<희망 대신 욕망> 중, 김원영




  책의 매 페이지마다 나는 윤선배를 떠올렸다.


  대학시절 윤선배와 나는 같은 과반의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휠체어에 앉아 과방을 가득 채운 신입생들을 귀엽게 바라보던 선배의 하얀 얼굴이 기억난다.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희귀한 질환을 가지고 있던 윤선배는 벽을 잡고 설 수 있었던 두세 살 무렵 이후부터 휠체어와 오랜 기간 동행해왔다고 했다.

  같은 과반의 수많은 사람들 중 윤선배와 내가 친해진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윤선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동기들 틈바구니에서 그냥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시끄럽게 조잘대는 나를 선배도 지지 않고 놀려대며 우리는 서로의 비슷한 구석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나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선배다웠던 선배였다. 학점을 후하게 받을 수 있는 교양 수업을 추천해주고 과제를 어려워할 때면 본인이 쓴 리포트를 보여주었다. 학식을 잘 사주었고 공강 시간이 겹치면 교내 찻집에서 오후의 볕을 즐기며 함께 차를 마셨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나눠주던 사람이었다. 선배에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전태일평전>이었다.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 나는 선배가 꾹꾹 눌러쓴 빼곡한 편지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의 근육들을 움직여 오래도록 썼을 그 편지를 나도 아주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 선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몇 해가 흘렀을 때, 그의 손은 더는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글로 대화하는 일이 없어졌다.



  선배와 함께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선배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나도 선배의 자잘한 부탁에 응하며 무언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오만 같은 게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항상 도움을 받는 것은 나였다. 내 좁은 식견에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마음이 고단해 응석을 부리면 나를 다독여주는 것은 모두 선배였다.

  그래서 그를 향한 편견들을 마주할 때면 더욱 당혹스러웠다. 선배와 함께 밥을 먹으러 식당을 찾으면 우리 일행을 거부하는 식당들이 꽤 있었고, 지하철 안에서 안쓰럽다며 선배의 손을 여러 번 쓰다듬었다는 한 할머니의 일화는 도저히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선배의 빈틈 많은 유머감각이, 넓은 혜안이, 숨을 들이키며 웃는 버릇이나 랩을 좋아하는 취향 같은 것들이 선배를 그 자신답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편견 어린 시선처럼 그는 결코 휠체어와 동일시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고비가 많았지만 선배는 활동보조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자립 생활을 했다. 재택근무로 일을 했고, 장애인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오렌지 빛 조명 아래에서 객석을 향해 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지인들 몇몇과 함께 선배의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웃고 떠들었던 밤이 지난 며칠 후 갑작스러운 선배의 입원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처음에는 열이 올라 병원에 간 것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얘기를 듣자 덜컥 겁이 났다. 선배의 병원을 찾아 중환자실 앞에 섰을 때 나는 선배에게 꼭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하지만 막상 수많은 기계에 둘러싸인 선배의 침대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겹겹이 들리는 기계음들 사이에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가만히 선배를 바라보는 내 눈을 그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돌아서 나오는데, 밤이 유난히 춥고 어두웠다.



  다음날, 결국 그의 부고를 받았다.

  떠들썩한 장례식장에 앉아 국을 몇 술 뜨다가 병원 앞에 나와 섰다. 함박눈이 소리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까만 아스팔트 바닥이 제게 닿는 눈을 녹여내는데도 기어코 눈이 내리고 내려 하얗게 쌓이는 풍경을 멍하니 보았다.


  그때 대학시절 지인이 곁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래도 호상이야. 그치?"

  윤선배와 내가 가까운 사이인걸 알기에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윤선배가 처음 병원에서 선고받았던 예상수명은 스무 살이었으니 그보다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고작 서른이 갓 넘은 청년이었다. 이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를 잃고 상심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기에 '호상'이라는 말은 너무도 성글다. 그래서 그 섣부른 위안은 어떠한 마음도 따스히 덮어주지 못했다.




  나는 삶이 예기치 않게 고단할 때면 윤선배를 생각한다. 그가 누워서 오래 보았을 천장과 유쾌한 표정 너머로 삼켰을 단어들을 가만히 헤아려보는 날들이 있다.

  나보다 더 힘들었을 선배를 생각해서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니 이겨내야지 하고 마음으로 그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살면서 누군가의 더 큰 고통이나 불행과 비교해 나의 처지를 달랬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아주 아끼는 사람은 그렇게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선배를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누구라도 마음속에서 내 용기의 디딤돌 따위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달아가고 있다.


  그저 내가 아는 내 또래의 가장 현명한 사람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내 물음에 오지 않을 답을 받은 것처럼 아릿하고도 뭉근한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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