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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Oct 19. 2021

유치원 친구 30대까지 간다.

시골 아이들의 우정 연대기

  "김잠아, 너 어떡해? 너 정말 어떡해......"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친구 미야였다. 내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뭘 어떡하긴 어떡해. 나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내가 멍해있는 사이 미야는 벌써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은 날이었다.




  나는 강원도의 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별로 유명할 것도 없는 산골 동네라 누군가 출신지를 물으면 그냥 으레 '강원도요.'하고 뭉뚱그려 대답하고 마는 그런 곳이었다. 동네는 작았고, 학교는 더 작았다. 그래서 적은 수의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똑같은 유치원과 초중고를 다녔다. 초중고는 각각 하나뿐이라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어느 학교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은 다른 세계의 얘기였고, 우리는 그 작은 사회에서의 매일이 지겹지도 않았는지 복작복작대며 함께 커갔다.



  아직도 나는 미야의 첫 모습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낯선 교실, 수줍음이 많던 나는 새 공간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고슴도치 같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던 내게 유난히 눈동자가 까만 한 아이가 거침없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랑 놀자."

  그렇게 미야는 내가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맺은 유의미한 관계가 되었고, 우리는 7살부터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을 함께해온 단짝 친구가 되었다.


  조심성이 많던 나와 달리 미야는 유쾌하고 활동적인 아이였다. 성격은 달랐지만 유머 코드가 잘 맞았고, 혈액형도, 곱슬머리라는 외형적 특성도 같았기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유치원이 끝나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폴로나 젤리 아이스크림 같은 불량식품을 사 먹고, 미야의 집에 가서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비디오를 봤다. 학교 운동장의 놀이기구에 매달려 온 오후를 보냈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미미 인형과 만화책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우리는 유치원과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고, 자연스레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생활을 거치며 결이 비슷한 친구 몇몇이 더 모이게 되었고, 다들 먹고 사느라 멀리 흩어져 있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마음으로 가깝다. 내가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또 사이가 멀어지지 않도록 구심점 역할을 해준 것은 항상 미야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리만큼 선량한 아이들이었다. 누가 좀 더 잘 살건, 누가 공부를 잘 하건 경쟁과 질투라고는 찾기 어려웠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로의 단점을 포용할 줄 알았다. 한 번은 시계를 잘못 본 내가 약속시간에 1시간 가까이를 늦었는데, 그 누구도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아휴, 저 칠칠이.' 그게 다였다.




  그렇기에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후, 나는 전혀 다른 인간관계의 생리에 늘상 당황하곤 했다. 내가 살던 좁은 사회 안에서는 매번 친구를 새로 사귈 필요도 없었고, 한번 친구가 되면 웬만하면 그 관계가 변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유기체와도 같아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미 사회화가 끝나버린 늦은 나이에 새롭게 배워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좀처럼 내게 체화되지 않았고, 나와 친했던 사람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일이 때론 견딜 수 없이 서운했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복잡한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에 익숙해지듯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이곳에선 약속시간에 1시간이나 늦어도 나를 기다려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되뇌어가며 꼼꼼하고 단정한 사회인의 틀에 나를 집어넣는 일이기도 했다.



  솔직히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 속에 친구들을 잊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일상의 틈틈이 MSN과 싸이월드 속에, SNS 댓글과 카톡 단톡방 속에 알게 모르게 친구들의 안부 인사가 스며있었다.

  "밥은 먹었어? 일이 바빠도 밥은 먹어야지."

  자주 잊고,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그 말은 때때로, 그리고 불현듯 나를 다독여주었다.




  고향 동네에 차려진 아빠의 장례식장에 미야가 도착했다. 아직 실감이 안 나서 슬픈지도 잘 모르겠다는 내 말에 미야는 나보다 더 많이 울었다. 너무도 익숙한 그 얼굴을 보며 어딘가 고장 난 내 마음속에서 '아, 이게 울 일이구나.'라는 실감이 비로소 들었다.

  누구에게도 아빠의 부고를 알린 일이 없는데, 친구들이 귀신같이 알고 나를 찾아왔다.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다는 투정도 없이, 그렇다고 유난스러운 위로의 말이나 유달리 나를 측은해하는 기색도 없이 '밥은 먹었어?'라고 묻는 게 다였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에 꽤나 서툴고,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여전히 엉망이다. 하지만 20대 시절과 달리 그 점을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은 나의 뿌리 어딘가에 알 굵은 감자처럼 영글어 있는 미야와 친구들의 얼굴이 있기 때문임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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