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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Oct 18. 2021

아빠와 스팸 통조림

내가 언젠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아빠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부턴가 스팸 통조림에 얽힌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수많은 추억을 제쳐두고 희한하게도 내 마음은 아주 오래된 기억의 단편부터 끄집어 올리곤 한다.




  내가 7살 무렵, 어느 여름의 휴일이었다. 엄마와 언니는 부재중이었고 나는 아빠와 둘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엄마가 아닌 아빠 하고만 집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나는 그 상황이 꽤 생경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다 아빠가 당신의 친구를 만나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나섰고, 우리는 동네 슈퍼마켓에 먼저 들렀다. 과자 진열대 앞에 선 나에게 아빠는 선뜻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라고 말했다.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늘 살림에 쪼들려하던 만삭의 엄마에게서도, 찡그린 미간을 자주 내보이던 아빠 당신에게서도. 금기를 넘는 설렘과 두려움의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가 조심스럽게 원하는 과자들을 손가락질로 가리키자 아빠는 흔쾌히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 소비의 즐거움으로 마음이 부풀대로 부푼 내 눈에 스팸 통조림이 들어왔다.

  스팸을 이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자나 버섯 같은 다른 재료들과 얇게 채를 썬 상태로 뒤섞인 적은 양의 스팸은 늘 나를 감질나게 했고, 그마저도 언니와의 반찬 다툼에서 양껏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TV 광고 속 모델이 두툼하게 베어 물던 것처럼 스팸을 우적우적 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통조림 캔이 작은 크기에 비해 콩나물이나 두부 같은 재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비싸다는 것쯤은 7살짜리도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스팸 통조림이었다. 오늘이라면, 어쩌면 오늘의 아빠라면 나에게 그것을 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나 저것도......"

  아마도 내 손가락은 조금 떨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간식거리 쇼핑에 어울리지 않는 구성에 약간 의아해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스팸 통조림은 우리의 장바구니에 무사히 안착했다.



  아빠와 아빠 친구분을 따라 도착한 곳은 사람 하나 없는 한낮의 강가였다. 당시 아빠의 취미는 족대로 민물고기를 잡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날도 친구 분과 물고기를 잡을 요량으로 그곳을 찾은 것이었다. 아빠는 강가 바로 앞에 과자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나에게 여기에서 놀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족대와 물고기를 담을 통을 챙겨 강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햇살을 가득 받은 아빠의 등. 유희의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채 물가 수풀 속으로 금세 사라져 버린 뒷모습이.


  나는 여름의 땡볕 아래 모래 바닥에 앉아 아빠가 미리 따놓고 간 스팸 통조림을 앞니로 긁어먹었다. 그 짜고 강한 맛을 독차지하는 일이 처음에는 꽤 즐거웠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통조림 한 캔을 다 먹을 수 없었고 곧바로 목이 말라왔다.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오래오래 목말라하며 강물 앞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별 것 아닌 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유독 선명하게, 자주 떠오르는 것은 이 일이 아빠가 나를 사랑해온 방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엄마였다면 짜디 짠 인스턴트식품인 데다 날카로운 캔에 담겨 위험한 스팸을 어린 나에게 사줄 리 없었다. 나를 위해 보리차나 물을 반드시 챙겼을 것이고, 나무 그늘이 좋은 곳을 찾아 돗자리를 펴고 나를 앉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꽤나 깊었던 그 강물 앞에 나를 혼자 두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7살짜리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우선했던 태도가, 아이가 원하는 먹을거리를 쥐어주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꼈던 무심함이 사는 동안 나를 목마르게 했다.


  아빠는 내가 당신을 이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가진 후, 가장으로서 밥벌이의 무게를 짊어진 아빠를 헤아리려고 할 때마다 아빠는 오히려 입을 닫았다. 어린 시절의 꿈이나 결혼을 결심한 이유처럼 아빠에 대해 알아가려는 질문을 할 때면 아빠는 돌연 화를 냈다. 그러므로 아빠는 나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이해는 없고 사랑만 있는 관계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웠다.




  3년 전 봄, 아빠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환갑도 안 돼 돌아가신 아빠의 영정사진은 아직 젊었고 그것이 나를 슬프게도, 화나게도 했다. 내 마음에 얽혀있는 아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무겁게 안고만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해 심리상담센터를 찾았고 상담전문가와의 대화에서 한 가지 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빠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내가 부정하고 있었던 아빠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면서, 아빠의 웃는 얼굴이 떠오를 때는 그리운 그대로 엉엉 울어버리기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관계는 계속된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빠, 당신과 화해해가는 중이다. 자기 연민이나 분노, 무력감이나 양가감정 같은 것들을 넘어서 우리 부녀간의 사랑에 언젠가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함께 놓이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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