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에서 80년대,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알 텐데,
지하철 3호선 신사역 근처에 극장들이 좀 있었다.
'브로드웨이'라는 극장. 지금 롯데시네마가 인수해서, 이름이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가 되었고,
그 유명했던 '씨네하우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신사역 근처 건물에 이런저런 극장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지금은 영화를 보려면, 어플로 예매해서, 영화 시작 시간 되면 바로 상영관에 들어가는 시스템이지만,
그 옛날 우리 10대 시절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들 앞에 줄을 섰다.
'씨네하우스'에서 <인디아나 존스>를 보려고, 얼마나 긴 줄을 섰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 티켓 하나 사겠다고 그 긴 시간과 정성을 들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종로에 있는 극장 '단성사'에서 <서편제>와 <장군의 아들>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섰던 기억도 나고,
<마지막 황제>를 보기 위해 충무로 '대한극장'에 딱 도착했더니 끝도 없는 줄이 늘어져있어 놀랐지만,
그래도 감수하고 줄을 서서 영화를 봤었다.
그땐 도대체 무슨 정성으로 그랬나 모르겠다.
지금은 음식점 들어가려고 줄 서는 것도 딱 싫고,
대부분의 식당에서 대기하는 사람에게 순서 되면 카카오톡으로 연락해주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니 줄을 서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런 디지털 시스템 전혀 없던 그때, 우린 아날로그 하게도,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줄을 참 오래 섰었다.
이제는 무엇을 사든, 보든 간에, 줄을 서는 인내력과 의지보다 ‘손가락의 빠른 움직임’이 티켓팅과 무엇을 볼수 있나 없나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줄 서는 거라면, 모두가 질색하고, 줄을 선다는 건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 뒤에 무언가를 바라고 따른다는 뜻을 가진, 다른 느낌의 언어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옛날에 줄을 섰을 때를 회상해보면 지루했지만, 그래도 화기애애하게 기다렸던 거 같다.
엄마와 영화 보려고 줄을 설 때도 있었고, 동네 친구들과 줄 서기도 했는데,
영화를 볼 거라는 그 마음 하나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음료수도 마시며 그 시간을 힘들어하지 않았었다.
우린 이제 무언가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걸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빨리 안되면 항의하고 조급해하고, 나 역시, 뭔가 빨리 진행이 안되면 힘들어한다.
하지만,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을 때, 기다렸던 무언가를 만나면 더 기쁘니까,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것을 줄 서며 기다렸던 그 마음으로,
내가 앞으로 만날 모든 것을 잘 기다리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