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한 장이면 남남', 그 믿음이 깨지기까지...

3년 뒤, 전처가 들고 온 외국 판결문 한 장에 모든 것이 뒤집힐까?

by 산뜻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례의 법률적 쟁점을 바탕으로, 정보 전달과 재미를 위해 가상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몇 달 전, 리투아니아 출신의 촉망받는 미디어 아티스트 ‘알렉스’ 씨가 제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전처가 한국 법원에 새로 제출했다는 소장과 함께, 낯선 리투아니아어로 쓰인 ‘혼인 무효 판결문’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미 수년간의 지독한 소송 끝에 ‘이혼’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고 믿었던 그에게, 전처의 그림자는 마치 유령처럼 다시 그의 삶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관계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집착’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집요한 괴롭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법의 마지막 방패, ‘기판력(旣判力)’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예술과 사랑, 그 비극의 서막


알렉스 씨는 한국의 전통 미술에 매료되어 서울의 한 대학원에 유학 온 재능 있는 예술가였습니다. 그가 저명한 동아시아 역사학자 ‘박 교수’를 만난 것은 한 국제 학술 세미나에서였습니다. 한국의 미에 대한 알렉스의 깊은 이해와 열정에 반했다는 박 교수는 우아한 매너와 지적인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알렉스의 예술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그녀의 자상함에 감동한 알렉스는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과 사랑을 꿈꾸며 박 교수와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자, ‘예술의 후원자’를 자처하던 그녀의 얼굴 뒤에 숨겨진 냉혹한 통제욕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내 남편이야. 예술가랍시고 밤늦게 외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그만둬.”

“외조에 집중해. 당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바로 나를 보필하는 거야.”


박 교수는 알렉스의 작업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그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려 했습니다. 창작의 영감과 삶의 자유를 모두 잃어버린 알렉스는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달 만에 별거를 결심하고, 작은 작업실을 구해 독립했습니다.


2. ‘혼인 무효’라는 낙인: 끝나지 않는 소송의 시작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알렉스에게 박 교수는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그녀는 알렉스를 상대로 ‘혼인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녀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알렉스는 처음부터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내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한국에서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얻고,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을 뿐이다. 그가 결혼 생활 중에도 개인 작업실을 몰래 알아본 것이 그 증거다. 이것은 명백한 위장결혼이다!”


그녀는 알렉스를 ‘진정한 혼인 의사 없이 입국과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결혼을 이용한 사기꾼’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이혼’이 아닌 ‘혼인 무효’를 주장한 것은, 그와의 결혼 기록 자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그에게 법적, 도의적 책임을 모두 떠넘기려는 악의적인 의도였습니다.


기나긴 법정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1심 법원: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으나, 혼인 당시 알렉스에게 진정한 혼인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증거는 부족하다. 따라서 혼인 무효는 인정할 수 없으며, 이혼으로 관계를 정리함이 타당하다.”


2심 법원: “짧은 동거 기간과 결혼 직후의 갈등, 개인 작업실을 구한 점 등을 볼 때, 알렉스에게 처음부터 진정한 부부관계를 형성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라며 1심을 뒤집고 혼인 무효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최종심): “국제결혼에서 문화적 차이와 적응의 어려움으로 관계가 조기에 파탄 나는 경우는 흔하다. 혼인 이후의 행동만을 가지고 혼인 신고 당시의 의사가 없었다고 섣불리 추단해서는 안 된다.” 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파기환송심을 거쳐 두 사람의 관계는 ‘이혼’으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3년이 넘는 싸움 끝에 알렉스는 겨우 법적으로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3. 죽은 줄 알았던 소송의 부활: ‘기판력’이라는 최후의 방패


그러나 박 교수의 집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패소가 확정되자, 이번에는 리투아니아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알렉스 몰래 리투아니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한국에서의 소송 기록은 숨긴 채 혼인 절차상의 작은 흠을 문제 삼아 ‘혼인 무효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외국 판결문을 들고 다시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보세요! 이 결혼은 리투아니아 법에 따라 원천 무효가 되었어요. 이는 우리 결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임을 증명하는 새로운 증거입니다. 따라서 한국 법원의 기존 ‘이혼’ 판결은 잘못된 것이니, 제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이혼 기록을 삭제하고 혼인 무효로 정정해 주십시오!”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었던 알렉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준 것이 바로 ‘기판력(旣判力)’이라는 법률 원칙이었습니다.


기판력이란,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더 이상 당사자가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다툴 수 없게 하는 힘을 말합니다. 이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같은 분쟁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저는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재판장님, 이 사건의 핵심 쟁점, 즉 ‘두 사람의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했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대한민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종결되었습니다. 박 교수가 새로 들고 온 리투아니아 판결은, 이미 종결된 그 쟁점에 대한 또 다른 공격 방법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이상, 이후에 나온 외국 판결로 그 결론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이 새로운 소송은 기판력에 위배되므로 부적법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박 교수의 새로운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더 이상 심리할 가치도 없다는, 문전박대와 같은 결정이었습니다. 법의 최종 판단이 한 사람의 집요한 괴롭힘으로부터 알렉스를 지켜준 순간이었습니다.


4. 변호사가 알려주는 ‘집착형 소송’ 대응 꿀팁


알렉스 씨와 같은 고통을 겪는 분들을 위해, 변호사로서 몇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드립니다.

‘혼인 무효’와 ‘이혼’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세요. 상대방이 ‘이혼’이 아닌 ‘혼인 무효’를 주장한다면, 이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당신의 과거와 인격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배우자에게는 체류 자격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증거로 남기세요.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이메일, 메신저 대화, 함께 찍은 사진, 지인들과의 교류 내역 등은 ‘진정한 혼인 의사’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사소해 보여도 모두 보관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기판력’은 당신의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한번 소송이 확정되면, 상대방은 같은 이유로 다시 소송을 걸 수 없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외국 판결문 등 새로운 자료를 들고 와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이미 판단이 끝난 쟁점에 관한 것이라면 기판력 원칙에 따라 차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물론, 판결에 중대한 흠이 있을 때 대법원에 제기하는 ‘재심’은 별개의 절차입니다.)


알렉스 씨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법의 방패 뒤에서도 그는 여전히 전처의 그림자를 경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법원의 최종 확정판결과 기판력이라는 원칙은 그에게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회적 확인과 함께, 그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법적 권리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이 글이 부당한 소송과 집착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는 법적 지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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