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립군이 청와대 습격작전을 벌였다는 소식에 열도가 술렁였다. 언론들은 테러리스트들의 청와대 침투 기도를 청와대 경비대가 막아냈다고 보도했지만 열도인들은 언론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나가노가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 독립을 위해 감행한 작전이었다는 것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동네 삼척동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 되어갔다.
도쿄 경시청 이감응이 조직한 나가노 일당 체포조는 나가노가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개를 풀어 냄새로 쫓듯이 야마구치구미에 있다가 나온 옛 야쿠자 친삐라(양아치)들을 사냥개로 동원했다. 그들은 야마구치와 그 꼬붕들의 이동 경로를 탐색하며 열도 구석구석에 깔린 야쿠자와 친삐라들에게 현상금 포스터를 뿌렸다. 야마구치를 잡으면 나가노를 잡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나가노와 야마구치 일행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야간에만, 검문검색이 없는 시골 국도로만 다니며 도쿄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열도에 들끓는 독립군 응원 열기 덕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곳곳에서 독립군 돕기 운동이 펼쳐졌다.
특히 독립자금을 대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1990년대 말 한국의 외환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비밀리에 펼쳐진 독립자금 모금 행사였지만 총독부가 모를 리 없었다. 열도 전역에서 끓는 독립열기에 이감응의 명령을 받는 나가노 일당 체포조는 안달이 났다. 그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체포는 어려워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체포조와 도주자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보름째 이어지던 때였다.
사냥개 한 마리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짖어대기 시작했다. 위치는 나라현의 고찰 호류지(法隆寺).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그 사찰의 금당(金堂) 주변을 체포조원들과 그들이 풀어놓은 친삐라(양아치)들이 에워쌌다.
금당에는 그 유명한 금당벽화가 있던 곳.
고구려의 학식 있는 승려이면서 동시에 그림에 뛰어났던 승려, 그래서 학승, 화승으로 불리었던 담징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벽화다. 담징은 영양왕 때에 법정(法定) 스님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미개한 문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수한 선진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일본으로 건너가는 승려들과 귀족, 선비들은 우수한 문화를 미개한 일본 민족에게 전수했다.
담징은 오경을 가르쳤고 그림 그리는 법과 공예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종이와 먹을 만드는 법도 가르쳤다. 심지어 맷돌 만드는 방법까지 전수했으니 당시 열도의 문화가 얼마나 미개했는지 짐작이 갈 법하다.
금당 바로 근처에는 5중탑 (5층탑)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빼닮았다. 이 역시 백제인의 기술로 세워진 것이었다.
냄새를 맡은 사냥개들이 짖어대자 호류지의 금당과 5층 목탑을 에워싼 체포조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호류지 외곽과 경내 곳곳의 통행로를 차단한 채 금당 진입만을 앞두고 있었다.
"야마구치가 호류지 주지의 보호를 받으며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이제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사냥개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자, 절대 놓쳐선 안된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백억 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 것 알고들 있지? 야마구치와 나가노 모두 생포해야 돼"
이감응이 현상금 포스터를 흔들며 외쳤다.
"뭣들 해? 어서 움직여!"
사냥개들과 체포조가 동시에 금당에 뛰어든다.
다음 이야기... 당신의 선택은?
1. 체포조가 금당을 덮쳤을 때는 이미 나가노와 야마구치 일당이 호류지를 빠져나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