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앞에 친한 지인이 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그녀를 위로할 것인가? “힘내, 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시간이 약이라잖아.”라는 영혼 없는 멘트만 날릴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겪은 더 한 고통을 이야기해주며 위로와 깨달음을 전할 것인가?
삶을 살면서 힘든 시간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일, 사랑, 관계, 돈 등으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에는 연탄불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내 가슴에 핀 시커먼 멍이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자꾸만 시련이 오는 거지?’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신은 그 사람이 딱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허락한다고 하지 않던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나서야 왜 그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나의 깨달음은 고스란히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미리 겪은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위로와 조언이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수 서태지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가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했다. 심지어 잡지에 한 장이라도 그의 얼굴이 나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구입을 해야 직성에 풀렸다. 수험생인 내게 유일한 탈출구와도 같았다. 오후에 녹화가 있어 교실에는 책가방만 놔두고 간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간이 부어도 한참 부은 짓이다.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시스템이라 점심, 저녁도 굶고 줄을 서서 기다린 탓에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진 적도 여러 번이다. 당시 서태지 공연의 핵심은 헤드뱅잉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머리를 흔들었다. 급기야 목 디스크에 걸리기까지 했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서울대는 따 놓은 당상일 듯하다.
콘서트 입장권을 구할 때에도 지금처럼 집에서 편하게 마우스 한 번으로 구매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정 은행 앞에서 선착순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은행 앞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도 있다. 가뜩이나 공부에 흥미도 없는 애가 연예인에 빠져 살았으니 공부했을 리 만무했다. 그해 수능은 보기 좋게 낙방했다.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했다. 하지만 반성의 시간도 잠시, 서태지를 향한 사랑은 재수를 준비하면서도 계속됐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재수 학원과 독서실을 등록하고도 공연이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자리를 비우고 머리를 흔들러 갔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나는 지원한 모든 학교를 낙방했다. 야간 대학교 한 곳을 제외하고…
현실이 직시되는 순간이었다. 당장의 눈앞만 보다가는 큰일 날 것만 같았다. 놀 때는 놀더라도 내 본분을 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진짜로 가고 싶은 학교를 정했다. 야간 대학교에 다니면서 삼수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을 다잡으니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실기와 면접의 비중이 높다 보니 면접에 나올 만한 질문도 뽑아 준비하고, 책도 읽으면서 수시로 글을 썼다. 오전에는 아르바이트를, 오후에는 학교 수업을, 밤에는 다시 실기와 면접 준비를 했다. 다음 해, 결국 03학번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다시 고등학교 3년으로 돌아간다면 시험 준비에 좀 더 노력을 기울일 테지만 그렇다고 그 땅을 치며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학교 성적이 남은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거나 수능을 망쳐서 엉엉 우는 학생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당장은 1~2년이 길어 보이고, 먼저 진학한 아이들보다 많이 뒤처진 듯해 보여도 멀리서 보면 겨우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나는 글을 쓸 때에도 되도록 내가 겪은 실수를 이야기한다. 이는 결코 자랑이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가슴 아픈 일을 겪는다.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거다. 내가 겪은 일은 앞서 누군가가 겪었고, 이어서 누군가가 겪을 일이다. 미리 그 길을 걸었다면 살아있는 위로와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어떤 일은 “내가 이 일로 한참을 돌아왔으니, 당신은 피해 가세요.”라며 막아줄 수도 있다.
앞서 1장에서 내가 겪은 ‘다단계’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곳이 오래 있으면 안 될 곳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내가 투자한 돈 때문에, 그리고 나로 인해 합류하게 된 친구 때문에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낸 어느 날,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만 이 상황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걱정됐던 언니는 자기 힘으로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자, 엄마한테 이야기한 것이다. 엄마는 쓰러질 듯한 목소리로 당장 집으로 오지 않으면 아빠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엄청나게 무서워한다. 지금은 자상하고 유머가 넘치는 아빠지만, 어릴 때부터 아빠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존재 자체를 무서워했다. 아빠까지 알게 되면 이곳으로 와서 나를 끌고 갈 게 안 봐도 훤했다. 순간 ‘올 때까지 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탈출을 계획했다.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 일찍 사무실로 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짐을 싸 둬야 했다. 잠들기 전에 눈치 채지 못하게 정말 꼭 가져가야 할 짐만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그곳에 두었다.
그날 밤,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스키장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온 그날로 되돌리고 싶었다. 다단계라는 것을 알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면, 제2의 피해자는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를 이곳에 데려온 친구에 대한 미움보다 내가 데려온 친구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탈출 당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5시에 기상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뒤 버스를 탔다. 하차를 하고 다들 사무실로 향하려 할 때, “나 잠깐 편의점에서 뭐 좀 사고 들어갈게요.”라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들키진 않을까 했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었다. 지하철 입구까지 10분이 넘는 거리였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나를 쫓아올까 봐 무서웠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심장이 떨린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닭똥 같은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한 철없는 결정이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 후로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나를 데려온 친구와 내가 데려간 친구 모두 그곳을 나왔다. 감사하게도 두 친구와 지금까지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서로에게 사과를 받고, 사과를 하면서도 당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과 처지를 서로가 이해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곳에서 겪은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나는 더 단단해졌다. 무엇을 결정할 때 좀 더 신중하게 되고, 한 번 더 묻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의심한 것이 아니라, 결정하기에 앞서 제대로 알아보려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많은 이들은 그것을 ‘실패’라 부른다. 그 일로 깨달은 교훈이 있다면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글을 쓸 때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하자.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지우고 싶은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담아야 한다. 실패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솔직하게 표현해야 독자도 느낄 수가 있다. 진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 과거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내가 겪은 좌절과 시련이 누군가에는 위로와 깨달음이 되기 때문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화려한 허물이 아니라, 지금 ‘말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그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