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잘 하고 있어.
언제부터였을까.
임신을 하고부터였나?
보이지도 않는 뱃속의 아이를 먼저 걱정해 주던
사람들.
그 걱정들에 질새라,
나는 청개구리처럼 굴었다.
참 희한하게도,
아직도 그 패턴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감기 들라, 애기 옷 입혀라.”
“넘어질라, 안아라.”
“영어를 시켜라, 학원을 보내라.”
…등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먼저 걱정하고,
참견하고,
자기 말이 맞다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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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도 넘어지고, 아파야 큰다고 믿었다.
그래야 부모도 단단해진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내가 기도해온 말은 늘 같았다.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아프고 나서 더 단단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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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나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했다.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이들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아. 아픈 걸 알았으니 고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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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안이는
경주에서 ‘화랑대기’라는 큰 대회를 치르고 있다.
스코어만 보고
걱정 가득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좋아지고 있어요.
결과는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결과만 보지 않아요.”
“배운 걸 잘 써먹고 있는지,
실수를 줄여가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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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는
내가 어떤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언제 그만둬도 후회 없을 만큼
노력하고, 즐기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 역시
부모로서 — 최초의 투자자로서 —
후회 없이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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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걱정하거나 염려하기보단,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