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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n 09. 2022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전남 목포  |  목포 근대역사관 1관, 2관

 도착한 목포에는 우산을 쓰기도, 접기도 애매한 비가 내리고 있다. 첫 방문지는 목초 근대역사관으로 정했다. 목포에서는 풍성한 밑반찬을 내어주는 맛깔난 식사와 갓바위를 다녀온 기억만 있었는데 이곳이 요즘 목포의 필수 여행 코스라고 한다. 드라마 촬영지는 더욱이 관심이 없는데 이 근대역사관이 드라마 촬영지가 되어 더 방문객이 많아졌나 보다. 방문 목적이 다르더라도 역사관, 박물관에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목포에서의 첫 일정을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정말 좋아한다. 역사. 문화재. 고미술.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역사 소설, 고전 문학을 읽었고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바이블처럼 끼고 살았다. 박물관 견학은 어찌나 좋아했는지. 역사, 문화재, 고미술품은 언제나 심장을 뛰게 한다. 아마 여건이 됐다면 학예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이 모든 게 눈만 돌리면 있는 지역이 있다. 서울 종로. 서울 중구. 광화문 일대. 광화문 주변이 너무 좋아 광화문 근처로 이사도 왔을 정도다. 그런데 가려는 여행지에 박물관이 있다? 그럼 다른 조건을 따지지 않고 가는 게 맞다.

 근대역사관은 1관, 2관 두 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인접해있었다. 1관이나 2관 중 한 곳에서 입장료 2,000원을 결제하면 다른 곳은 결제하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통합입장권의 개념으로 운영하는 듯 보였다. 뚜벅이에게는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1관 계단 끝에 서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 궂은날이 아니어서 벤치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날이 좋았다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맞은편 붉은 벽돌집을, 언덕 아래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있었을 게 눈에 선하다.

 역사관을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방공호를 들어가 본다. 많은 곳을 다니지만 일부러 가지 않는 곳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서대문 형무소이고 다른 하나는 강제성을 띠는 인권 유린 현장이다. 서대문 형무소는 다녀온 뒤 긴 시간 동안 악몽에 시달려 가지 않는다. 내겐 방공호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사람 형상의 모형을 보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게다가 공기마저 서늘하고 날이 서 있는 날카로운 분위기. 마음먹고 들어간 곳이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곳이다.   


 여행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온다. 서둘러 빠져나가 미리 봐 둔 벤치로 향한다. 벤치는 내리는 비로 젖어 있었지만 몸이라도 가벼워지면 나를 휘감은 무거운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 개의치 않고 배낭을 내려놓는다. 돌이 들어앉은 듯 무거워진 마음의 무게를 비우기 위해 퍽 애를 썼다. 

 어둡고 음습한 이날의 날씨와 분위기에 대비가 되어서인지 '빛'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첫 번째는 올려다본 천장을 밝혀주는 '빛'을 간직한 샹들리에였는데 짙은 녹색의 나무 천장에 흰 빛은 고풍스러웠고 청초했다. 나팔꽃 모양의 축음기 바늘을 옮겨 '사의 찬미'가 흘러나오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그 시절에 입었을 의상, 모자, 시대 상황 등을 그리며 카메라에 '빛'을 담아본다. 


 두 번째는 어떠한 '공간'이었다. 별도로 삼면이 거울로 이루어진 별도로 마련된 작은 방이었다. 민족 투쟁의 정신이 깃든 글귀를 거울에 적어 글귀를 보는 대상에게 '민족의 후손인 너에게 하는 말'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한 공간에, 우리의 내일은 밝게 빛나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는 듯한 '밝은 조명'으로 희망을 채우던 그 공간이 참 기억에 남는다. 특히 거울방의 글귀를 읽던 중 다른 여행자가 한 말이 감정을 더 배가시켰다. "왜 이걸 보는데 찡하고 뭉클하냐." 마침 나도 같은 감정을 느꼈던 터였다. 

  세 번째는 '빛'나는 그네들. 화려한 기법으로 만든 영상도, 미사여구로 가득 찬 문구를 적은 전시물도 아니었다. 독립 운동가의 죄목, 독립운동 때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적혀 있는 모니터 속의 글자에 눈앞머리는 따뜻하게 젖어가고 있었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알고 싶어졌다. 더 자세히, 더 선명히,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졌다. 아래 사진에 남겨진 '김옥남'이라는 독립 운동가의 공적을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다. 

 1921. 11. 14 전남(全南) 목포(木浦) 사립영흥학교(私立永興學校) 재학중에 동교 및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학생들, 기타 청년들과 함께 워싱톤회의를 기회로 독립을 위해 태극기를 제작, 독립만세를 부르며 활동하다 피체(被逮)*되어 징역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이끌리듯 찾아본 판결문(국가기록원 판결문 원본 바로가기 클릭)은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었던 시대에 맞선 '빛'나는 그들의 '빛'나는 결심과 용기가 여행길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창가를 두드리는 억센 태양'빛'을 가려주는 하얀 블라인드에는 그들의 '빛'나는 정신을 '빛'나게 기리고 있었다.   

 이 역사관은 건물 자체가 의미 있는 곳이다. 수능을 봤던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 지점 건물이 목포 근대역사관 2관 건물이다. 2관 주변엔 여전히 적산가옥이 있다. 천천히 전시간과 그 인근을 둘러보니 포항 구룡포에서도, 군산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뜨거움이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보통 보던 박물관, 전시를 보는 마음가짐으로 둘러보고 올 줄 알았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애국심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가슴속을 부유하고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잘 꾸며진 가옥 뒤로 보이는 1관은 유난히 멀고 외로워 보였지만 1관과 2관 모두 외롭지 않다, 새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역할을 하는 이곳에는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분들을 잊지 않고 뜻을 기리고, 뜻을 이어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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