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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Nov 23. 2019

만족감은 많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출하지만 넓고 풍요롭게 산다.



내가 아끼는 가방이 있다. 20년 전, 그 서류 가방을 비스듬히 둘러매고 세상을 여행했다. 작년에 짐 정리를 하면서 창고에서 찾아냈다. 가방 속에는 호텔 회원권,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 전기 충전 면도기, 나라별 전화카드와 칩을 교환해서 쓰는 국제 폰 1대가 들어있었다. 아마, 당시에는 미련이 남았던 것 같다. 하지만 모두 지나간 일이다.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서다. 정작 신경 쓰인 것은 가방의 상태였다. 가죽 재질이다 보니 딱딱하게 굳어있고 먼지가 타 있었다. 딸아이가 쓰다 남긴 철 지난 선크림으로 열심히 닦았더니 다시 부드럽게 됐다. 이젠 노트북 가방으로 쓴다.


날이 추워졌다. 가방에 가볍게 들어가는 보온 텀블러를 하나 샀으면 싶었다. L 마트를 둘러보고 있었다. 눈에 띄는 상품이 보였다. 공유가 선전하는 커피 한 박스를 사면 딸려오는 사은품이다. 그래도 사긴 산 것이다. 목적은 커피가 아니라 텀블러였으니 말이다. 가방과 점퍼 주머니에 쏙 들어갈 크기에 상당히 예쁘다. 이제 커피를 타서 가방에 넣고 이리저리 즐겁게 산책하면 된다. 이렇게 난 오래된 가방과 사은품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을 잔뜩 사들이는 사람은 아니다. 일 년 중, 소모품을 제외하고는 사는 일은 거의 없다. 무엇이든 쌓이면 불편해진다.


내 생활은 전망 좋은 호텔 비즈니스 룸 방문자 같다. 젊은 날, 해외를 다니며 묵었던 곳은 주로 전 세계 체인점 있는 M 호텔이다. 하다못해 총탄이 오가는 분쟁 지역에도 있다. 멤버십이 가능하고 안전해서다. 깔끔한 룸에는 싱글 침대와 욕실 그리고 협탁과 옷장이 전부다. 창밖으론 바다가 보였고 사막이 보였고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젊은 혈기 하나로 살던 시절이었다. 그 나이 때, 대부분 사람은 더 높은 경제적 상승을 꿈꾼다. 난 그렇지 않았다. 고작 생각한다는 게, 나이가 든다면, 이처럼 전망 좋고 아담한 룸에 주방 딸린 작은 공간에 살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지 않는다.


음식도 단출한 것을 선호한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반찬은 항상 2~3개가 전부다. 김치찌개를 하는 날에는 그마저도 없다. 달랑 김치찌개와 밥이다. 그러다 약간의 불편함이 생겼다. 피자, 치킨, 만두, 라면 등 이스턴트 식품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간혹 먹고 싶을 때도 있다. 밤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출출할 때다. 도시에선 문만 열고 나가면 편의점이 있지만, 산골에선 그럴 수 없다. 한 번에 사와 냉동실에 넣어둔다. 문제는 피클이다. 김치는 라면 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병에 담긴 오이 피클을 사 먹어 봤지만 맛이 영 아니었다.

약간의 고심을 끝에, 배추와 무로 직접 만능 피클을 담그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늘과 생강 그리고 레몬이다. 마늘은 크게 1/3 정도로 썰어야 식감이 좋고, 생강은 마늘보다 더 크게 슬라이스로 쓸어야 골라내기 쉽다. 내가 레몬을 언급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한 번은 레몬 3개를 4 등분해서 넣었고 또 한 번은 레몬즙 한 통을 모두 부었다. 생과일보다 레몬즙을 넣은 것이 훨씬 맛이 좋았다. 흡사, 동치미와 피클을 섞어 놓은 듯 환상적이고 오묘한 맛이 났다.

그 후로는, 김치와 국이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국물 있고 씹으면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배추&무 피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밥을 먹을 때도 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는 것이 간편하고 좋았다. 고기 요리뿐 아니라 서양식, 동양식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만능 반찬이 됐다. 그래서 난 언제나 피클만 먹는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을 땐 밖에서 사 먹어야 했다. 찌게의 주 재료인 김치가 사라져서다. 




겉보기에, 이런 나의 생활은 무척 단출하고 썰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은 그렇지 않다. 단출한 것은 맞지만 썰렁하지는 않다. 오히려 넓고 풍요롭다.

농막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국내 삼대 장원이라는 서석지가 있다. 과거에 어떤 양반네의 서재였다. 조선 선조 때 사람인 그가 ‘이리 오너라’하고 살았던 것은 관심 밖이다. 당시에는 권세가인 그 사람 소유였지만 지금은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똑같다. 세월이 가면 나도 없는데 내 것이 남아 있을까 한다. 재산은커녕, 이름도 없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역사의 단체명으로 남을 것이다.

그곳은 오가는 관람객보다 관리 사무소 인원이 더 많다. 평일은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난 항상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 대청마루에서 글을 쓴다. 사실 폼만 잡았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냥 내 것처럼 팔베개하고 누워서 만끽하는 것뿐이다.

난 이렇게 살면서 밤에는 별을 보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휙 하니 차를 몰고 달려간다. 아름다운 정원도, 반짝이는 별도, 거친 바다도 모두 내 것처럼 누리며 산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많이 알고, 갈채받고, 거느린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데렐라가 되고 백마 탄 왕자처럼 조명받기를 꿈꾸지만, 그것은 동화다. 현실이 어디 그럴까. 실제 역사 속에서, 황제를 사랑한 황후는 없다. 황후는 배불뚝이에 품격 높은 황제보다 매일 볼 수 있는 멋진 근위병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이런 것을 가지고 ‘마음 따로 몸 따로’라 한다.

우리는 외롭다고 사람을 찾지만. 사람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학벌, 재력, 지위 등을 수학 공식 대입하듯 한다고 만날 수 없다. 건물주 막내딸을 만난다 한들 유지하기도 힘겹다. 이때, 흔히들 하는 변명이 있다, 바로 '성격차이'다. 내가 즐겨먹는 피클처럼, '성격차이'라는 무책임한 말이 만능이 돼서 사람들 사이를 부유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같은 언어를 쓴다고 착각한다. 그러면서도 왜, 소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상대와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이다. 한쪽은 감성의 언어로 말하고, 한쪽은 사물과 관습의 언어로 말한다. 분명히 다른 언어다. 

지적으로 고상한 자들은 더 심각하다. 대화가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지식의 경연장을 만든다. 감성도 아니고 이성도 아닌 것이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와 어려운 말만 넘쳐난다. 그들의 우아한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부간에도 다르지 않다. 입에서 뱉어내는 이해 못할 언어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다가오고, 침묵은 폭력이 된다. 결국, 품격 높은 황제와 황후처럼 서로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따로 살아간다. 여기서도 흔히들 하는 무책임한 말이 또 있다. 부부가 혹은 사는 게 '다 그렇지'란 말이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친구든 연인이든 진정한 만남은 기다려서라도 자신과 같은 족속과 만나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인 것들은 함께 있을 수는 있어도 절대 섞일 수 없다. 난 외롭다고 사람을 찾지 않는다. 별을 보고 바다를 보면서, 우월한 족속이자 같은 이방인 친구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러기 위해, 난 그들을 담을 마음의 공간을 비워두었다.


언젠가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애가 딸려있어도 잡아라, 아빠는 웃으며 받아들이마.”


맞지 않는 사람과 마음 따로 몸 따로 사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같은 족속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게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다. 눈치 볼 것 없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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