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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07. 2020

아서 아서


뚝 떨어진 곳에서 지내는 그는 아랫마을 사람을 보건지소에 갈 때면 본다. 농사일하다 보면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주변에 의료시설이 전무한 촌이다. 그곳에 간호사 한 명이 근무하는 보건지소는 병 원겸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쉼터였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감기약을 지으러 그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쳐다봤다. 그는 쏟아지는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새삼스럽지 않은 광경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타인의 관점과 감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마치, 모여있는 사람들은 투명 인간이라서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가타부타 말없이 믹스 커피를 타더니 소파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가 가끔 나타날 때마다 만들어지는 어색한 분위기로 인해 순간 잠잠해졌다.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그는 편하고  사람다. 어른을 봤으면 고개 숙이고 곰살맞게 인사해야 지만 그런 예의 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위아래 경계가 선명하고 법보다 관습을 우선시하는 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 것이, 그는 주변의 도움필요 없다. 설렁설렁 혼자서 일잘한다. 분명히 전생에도 농부였을 것이다. 오히려 포대라도 겹게 옮기고 있으 지나가던 그가 툭툭 집어던져 놓고 간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기댈 필요가 없는 사람껄끄다. 그들은 고작해야, 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놈이라고 뒤에서 구시렁대는 것뿐이다.


어색한 시간은 잠시였다. 하던 이야기가 소란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듣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듣는 게 짜증 난다는 듯 콧등을 심하게 찡그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시에 사는 딸자식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에 대한 다정한 이야기다. 이번에 집을 샀고, 자식이 뭘 갖다 주고, 취업했다는 등이다. 그는 비집고 나오려는 욕설이라도 참으려는 듯 입을 꽉 다물었다. 여기서 누구 한 사람 왜 그런 표정을 짓냐고 시비조로 나온다면, '시끄러!'라고 소리치고도 남을 못된 인간이다.


보건소장은 그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게, 13년 동안, 동갑내기인 자신과만 말을 섞고 산다. 그녀가 사람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친구 좀 사귀라고 귀에 딱지 앉도록 충고를 해줘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저 단순, 고집불통 인간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사람들로부터 더 멀어져 갔다. 가족이 서울로 올라가자, 그는 귀찮다는 듯이 집도 세간살이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 버렸다. 그리고는 언덕에 위치한 밭 안쪽 끝머리에 작은 농막을 짓고는 일부러 길도 내지 않고 밭고랑으로 다녔다. 지나가는 사람도, 기웃거리는 사람도 없다. 그의 농막이 워낙 한적한 곳에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남의 밭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기에, 저렇게도 살아갈 수가 있구나 싶은 연구대상이었다.


그녀도 그가 왜 그러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 알고 보면, 그는 무척 온화하고 음이 넘치도록 풍부한 사람이다. 러나 폭력, 학대, 차별 따위의 것들는 철벽처럼 단단해졌다. 런 야만스런 행동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 뼛속까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지역에선 그 모든 야만성흔하고  자연스웠다. 아내를 때리고, 외국 노동자를 미천한 인간으로 취급하고, 자신들보다 약해 보이면 욕설과 비아냥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마을의 이장은 과거에 아내를 팻다고 버젓이 자랑삼아 떠들었다. 그는 13년간,  야만성들을 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몸서리쳤다. 그리고는 사람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몇 년 전, 아랫마을에는 약간의 발달장애를 가진 젊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언니 또한 비슷했다. 바쁜 농번기가 되면, 읍내에서 산골로 들어와 결혼한 언니네 농사를 도와주고 조카들을 돌보며 지냈다. 그러던 중, 형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엄마에게 털어놨다. 그리고 모녀는 함께 경찰서로 가서 신고했다. 마을 사람은 동네 시끄럽고 남자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했다며 똘똘 뭉쳐 그 아이를 비난했다.


전적으로 본인의 행실이 불량해서 일어난 일이다. 대부분 친족과 사돈의 팔촌으로 연결된 외딴 마을에서 추잡한 범죄가 일어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구분이 안 된다. 옳고 그름은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누가 더 자신들과 가까운지가 유일한 기준이다. 그들이라고 부끄러움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 아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은 추악한 일을 알려서다. 피해자인 두 자매만 떠나면 죄악도 금방 잊힌다. 그럼 다시 산 좋고 물 좋은 살기 좋은 마을이 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몇 날 며칠을 뱉어내지 못하는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뜨겁고 답답한 심정으로 보냈다. 그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가슴을 꽉 채웠다. 게다가, 탈 인간화된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서툰 방법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볼 때마다 화가 솟구쳐, 차라리 없는 사람들로 만들어야 했다. 이제 그의 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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