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Jun 15. 2020

헐렁한 사람

그 자신도 이토록 흥미롭고 화려한 날이 올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십삼 년 전, 그는 어린 남매를 데리고 산골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꽁꽁 싸매고 살았던지. 풀어헤쳐 놓고 보니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과의 관계였다. 당연히 기존의 인맥은 묽어지다 못해 흔적도 없이 씻겨졌다.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이 맞다. 정치인도 사업가도 아닌 농부에게 인맥이 뭐가 필요할까. 게다가 투명한 세상을 말하면서 연줄을 따지는 것도 뭐하다. 오죽이나 초라하면 이름 꽤나 알려진 자들을 내세울까 싶다. 그러면서 그의 과거 또한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가볍게 지워졌다. 어쩌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인간일 수도 있다. 사람부터 비웠으니 말이다.



그동안의 삶은 단순했다. 하루하루를 밭일 아니면 아이들과 노는 것으로 보냈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제는 사업을 한답시고 멋들어진 해외 유명 호텔을 들락거리고 거래처 사장들과 밤새워 포커판을 벌리던 사람이 아니다. 머릿속을 숫자로 채우고 살던 시절은 끝났다. 손발은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표정은 밭고랑처럼 투박해지고, 말투는 자신의 아이들을 닮아 유치해졌다. 바람 푹 빠져버린 가죽 부대처럼 질기고 헐렁한 사람, 지금의 모습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모습이기도 하다.



그가 연고 없는 산골로 들어간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기도 했다. 아빠로서 주변과 세상으로부터 어린 남매를 지키고 웃음을 주기 위해서다. 그는 참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순간순간,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지 않고 경험했다. 추억에는 애잔함이 끼어들고 미화되기 쉽다. 그의 경험상, 어른들의 날카로운 말과 무분별한 행동이 아이들에게 응어리를 남기고 미래를 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두 아이 앞에서 언제나 웃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기를 바랐고 '아니오'라고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모인 자신에게조차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말 잘 듣는 착한 자식보다 자기 생각을 당당히 밝히는 못된 자식이 더 났다고 여겨서다.



그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랐다. 본인이야, 유년 시절을 홀로 견디어 냈익숙하게 살 수 있다지만 두 아이를 계속 산골에서 지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선택권의 침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가 되자 청주에 있는 대안학교에 보냈다. 많은 것을 보고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친구를 사귀어 봤으면 해서다. 그래서 두 아이는 친구가 많다. 산골로 들어올 때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던 남매는 어느새 커서 서울로 돌아갔다. 두 아이는 아빠인 그를 걱정했다. 일가친척뿐 아니라 친구도 없는 아빠가 혼자 남겨진다는 생각에서다. 하나, 그것은 애정 어린 기우에 불과했다.



그도 다시 세상에 나갔다. 지금은 서울과 산골을 왕래하면서 지낸다. 그의 주변에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의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친구들이다. 그들은 그를 형, 삼촌, 아저씨라 부른다. 모두가 헐렁한 사람이 되고서 일어난 일이다. 그는 나이와 성별의 경계를 은근슬쩍 넘어갔다. 과거의 껌 꽤나 씹고 다리 좀 떨던 아이, 그를 형이라 부르며 아무데서나 끌어안으려는 48세 된 예쁜 계집애, 자폐아, 전직 항공사 승무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는 그들과 마주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순댓국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헐렁한 사람은 관습과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색 바랜 머리카락처럼 회색이었다. 그들은 그를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대신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그런 헐렁한 인사법은 그가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모두가 어색해하더니 지금은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싫어하고 깍듯한 존댓말도 거북해한다. 사람은 서로가 편안해야 섞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떠나가는 아이도 깊숙이 들어오는 아이도 있다. 너무 헐렁해졌나, 누군가 들어왔다 나가도 그런가 보다 한다. 워낙 빈 공간이 많아서 들락거려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은 가죽이 당겨지고 팽팽해진다. 흡사 북처럼, 누군가 마음을 두들기면 쇠 북 울리듯 공명을 한다. 그들의 대단치 않은 시시콜콜한 지루한 삶의 이야기는 그 어떤 문학보다 위대하다. 그는 작가이기도 하다. 감히, 부족한 글재주로 그들을 쓰고 싶어 한다. 글이란 보잘것없는 그저 그런 자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미 유명해져 버린 자들에 대한 글은 편승일 뿐이다.



그 자신도 록 흥미롭고 려한  올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던 지루한 날들을 버텨 냈기에 찾아왔다. 그의 육체는 노동을 기억하고, 눈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가슴으로는 사람을 쓴다. 그의 친구 중에, 젊은 날의 그를 닮은 27살 된 아이가 있다. 하루는 그 아이가 "형님은 무척 행복해 보여요."라고 했다. 이제야, 그는 사람이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