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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15. 2020

별을 바라보는 프랑켄슈타인




몇 주 전, 그는 차량 점검을 하다 벨트에 손이 끼었다. 놀라서 급하게 장갑을 벗어 확인해봤다.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이 짧아 보였다. 한마디가 사라졌다. 서둘러 장갑의 손가락 부위를 주물럭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뜯겨나간 마디는 그 안에 있었다. 의외로 아프지 않았다. 순간 생각했다. 64년생이고 아이들은 다 컸다, 네 번째 손가락은 기능적으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농사짓고 사람을 만나는 데는 지장 없다. 실손보험과 상해 보상보험도 들어놨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만에 하나 병원에서 접합이 안 된다 해도 그만이다. 단순함을 선호하는 그는 쉽고 간단한 덧셈 뺄 셈만으로 결론을 냈다. 다음 차례는 호기심이었다. 그는 짓이겨 뜯겨나간 손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그때 차량 뒤에 있던 K가 다가와 얼마나 다쳤냐고 물어봤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보여주며,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라고 했다. 다친 사람은 느긋한데 정작 상대방이 질렸다. 징그럽고 소름 끼쳐 쳐다볼 수 없었는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K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좀 전의 사고를 돌이켜 보았다.


'타인으로 인해 아파하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벨트에 손가락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찰나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고 나도 사람이다. 게다가 작가는 그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 사고는 그 사람 때문에 난 것이 아니라 나의 부주의였다. 엄한 사람 탓할 필요 없다.'


한결 더 가벼워진 그는 옆의 K를 보았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지 운전에 집중했다. K의 빠른 심장 박동과 답답한 숨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그는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고 왼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날은 어두워졌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는 이렇듯 지독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십 대 초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했다. 말은 어눌하고, 자존감 없고, 주변에 잘 보이려는 한심한 바보였다. 양보하고 손해 보고 순응하는 그의 겉모습은 착했으나 속은 원망과 증오로 똘똘 뭉쳐 있었다. 삐딱 주의자 눈에는 모든 것이 틀어지고 기울어져 보인다. 성장기에 폭력, 차별, 복종 등 학대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지금의 잘린 손가락은 육체의 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그땐 그의 영혼 전부가 찢기고 베여서 속살이 드러난 상태였다. 낯선 사람이 살짝 스쳐지나 만 가도 쓰리고 아팠다. 그가 고심 끝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영문도 모르고 태어난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선량한 사람들은 병을 고쳐주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해자일 뿐이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변하는 편이 훨씬 났다고 생각했다. 미숙한 손놀림으로, 그것도 아주 느릿느릿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부위에 소독제를 바르고 괴사 한 부위를 도려내고 떨어진 부위를 붙이기 시작했다. 소독제 바를 때는 몸서리쳤고, 바늘이 들어갈 때는 이를 악다물었고, 도려낼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통곡했다.



치료의 시간은 길었고 중간중간 난제에 봉착했다. 육체의 모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어도 영혼의 원형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어디를 잘라내고 붙이고 도려내야 할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바보라 불리는 것은 남들과 생각과 행동이 달라서다. 그는 바보였다. 상상 속에서, 본인과 정반대의 영혼을 가진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닮으려 했다. 그 인물은 자존감으로 무장하고 거절할 줄 알고 때로는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훗날 돌이켜보면, 그것은 바보에서 이방인으로 그리고 둥지에서 하늘로 날려는 균형의 날갯짓이었다.



삶에 있어서 균형은 중요하다. 학대받고 자라면 본인이 그 위치에 섰을 때 똑같이 행동한다. 남녀관계도 그렇다. 남자에게 상처 받은 여자는 모든 남자는 같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문을 닫거나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한 그대로 상대에게 휘두르려 한다. 삭히지 못한 분노와 증오가 클수록 복수심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 남자는 공허한 섹스 파트너 아니면 물질을 제공해주는 존재 이거나 아이의 아버지일 뿐이다. 이런 경우에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 없고 강해 보이려 한다. 전투에 임하는 전사와 다름없다. 보호 본능은 육중한 갑옷이 되고 심연의 복수심은 손에 들고 있는 양날의 칼이다. 갑옷을 벗고 칼을 내려놓는 순간 다시 고통받는다는 경험에서 나온 강한 믿음에서다. 그러면서 갑옷의 무게에 점차 짓눌리고 양날의 칼에 자신만 베인다. 그 반대인 남자의 경우 또한 다르지 않다. 아픈 경험이 균형의 상실을 초래한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지배하려 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살면서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모두 분노와 증오가 균형을 방해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도 그것으로 인해 수시로 멈추고 흔들렸다.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에게 용서와 화해를 바랐다. 그래야 천국에 가고 이승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고 한다. 철저히 가해자 논리일 뿐이고 벌어진 상처에 소금 뿌려대는 격이다. 가해자는 늙어 죽어도 반성하지 않고 혹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용서와 화해를 할까 싶다. 사람인 그는 신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용서하지도, 강제로 미움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냥 마음 흘러가는 데로 놔두기로 했다. 히려 마음이 평온해지고 삶의 균형이 잡혀갔다.



지금의 그는 많이 변했다. 백색도 흑색도 아닌 회색의 이방인이었다. 사람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다채롭다. 어떤 이는 괴팍하다 하고, 어떤 이는 온화하다 하고, 또 어떤 이는 매우 수줍다 하고, 다른 어떤 이는 활달하다 한다. 그 밖에도 말이 없고 거칠다는 소리와 조분 거리고 부드럽다는 소리도 듣는다. 미숙하고 서툰 솜씨로 뚝딱거리며 자신의 영혼에 필요한 것은 붙여 놓고 불필요한 것은 도려내서다. 만약 누군가 그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마치 짜깁기 해놓은 프랑켄슈타인처럼 흉측할 것이다. 본인도 사람들의 천국은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믿음이 넘치는 선량한 가해자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에는 가고 싶지도 않다. 천국에 갈 수 없는 흉측한 프랑켄슈타인의 영혼을 가진 그는,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 오늘도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본다.




ps.

그는 편안하게 한마디 정도는 없어도 된다고 했다. 의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열심히 그의 손가락을 붙여줬다. 일부 괴사가 되면 긁어내고 살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듬어야 한단다. 손가락 마디 하나로 1차, 2차, 3차 수술을 해야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얼굴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상처도 참 많다. 사람의 외모는 분명히 마음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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