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Oct 05. 2020

죽음보다 깊고 삶보다 치열한 꿈



어느 날, 그가 아들에게 말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야... 꿈을 버리는 게 아니라 더 멋진 꿈을 꾸는 것이야."



사람들은 꿈꾸지 않는다. 한가하게 꿈 타령하면서 아파할 틈도 없다. 당장 오늘 사는 것도 버겁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내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쩌다 꿈 이야기를 하면, 일단 돈부터 벌고 자리 잡고 나서 하라고 한다. 한때 꿈을 담았던 따뜻한 가슴은 주변의 차가운 말투에 녹아내리고, 고약한 현실로 인해 덧칠해진다. 꿈은 이렇게 세상에서 숨어버린다. 심지어 모 유명인은 꿈이나 희망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대가 해괴하여 도저히 권유할 수 없다는 속뜻의 반어법이다. 대부분, 그 유명 인사의 말을 희망 고문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그는 비겁하다 여겼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슬쩍 피해 가는 회피형 어법이다. 꿈꾸지 않는 게 아니라 못 꾼다고 따지기라도 한다면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다.



그러면 우리는 뭐로 살까, 살아 있되 죽어지내란 소리인가. 어떤 역사도 암울하고 통곡할 만큼 억울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전쟁, 질병, 착취, 지배로 인해 작은 희망의 빛조차 사라진 시대에도 사람들은 꿈을 꿨다. 꿈은 인류 그 자체다. 그래서 암흑시대에서 밝음의 시대로 한 발짝 다가왔다. 인류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꿈은 죽음보다 깊고 삶보다 치열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초라한 꿈 하나로 아이는 너끈히 버텨왔다.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변변치 않고 나약한 자신을 포근히 감싸 안고 지켜주었다. 그렇기에 64년생인 그는 지금도 꿈을 꾼다.



꿈이란 참 묘하다. 각자 외형적으로 똑같은 것을 원해도 어떤 이에게는 꿈이 되고 다른 이에게는 욕망이 된다. 그것은 내면의 차이에서 온다. 지난번, 그가 병원에 있을 때였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자 맞은편 젊은 환자가 퇴원했다. 오전 11시경, 7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관절 수술 대기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뒤이어 부인과 간병인 그리고 자식들이 줄줄이 띠라 들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점잖고 완고해 보였다. 눈동자는 약간 붉었다.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살면서 점차 가느다란 붉은 실핏줄이 드러나서였다. 그는 그 사람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어쩌면, 저 사람은 오늘 전부를 잃지 않을까 했다. 휠체어를 탄 그 사람은 침대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그의 무심한 눈빛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는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가족에게 둘러싸여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크고 굵고 느린 근엄한 목소리와 남존여비에 길든 부인의 고상하고 기품 있는 말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그는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시끄러운 인간들이라 여겼다. 공무원을 했고, 얼마 전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꾸미고, 사위의 직업은 뭐고, 유학 간 손주에 대한 내용이다. 방금 고용한 연변 출신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본인들이 이런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어쩌면 그도 들으란 소리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수술 전에 일이었다. 오후에 수술을 마치자 다른 사람이 됐다. 그날 저녁부터 헛소리하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는 나이 든 사람이 수술 후 잠시 겪는 상망이라고 했다. 주로, 본인이 꿈꿔왔던, 얼마 전에 지은 전원주택과 촌 동네 사람 모아 놓고 자신을 과시하는 소리였다. 어떨 때는 평당 얼마에 땅을 산 내용까지 말했다. 상망 치고는 꽤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치매가 왔다. 대소변도 못 가리고 수시로 허벅지와 팔에 꽂힌 호수를 뽑아대며 몸부림쳤다. 침대와 주변은 피와 대소변으로 흥건했다.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침대에 옴짝달싹 할 수 없이 묶었다. 누가 봐도 며칠 전에 근엄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낡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중심축의 역할은 끝났다. 냉정한 가족들은 공기 맑고 풍광 좋은 전원주택이 아니라 그저 그런 치매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다.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이룬 것들이 허물어지는데, 불과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그가 처음, 그 사람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읽은 것은 불안이었다.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날아갈까 하는 극도의 불안은 공포를 불러왔고, 공포는 순식간에 정신을 허물어뜨렸다. 그 사람은 꿈을 이룬 것이 아니다. 사회와 매스컴에서 만든 행복한 전원생활이라는 화려한 제목과 소박한 이미지로 만든 거짓 광고를 돈 주고 산 것이다. 어디 그 사람뿐일까, 대부분이 그렇다. 은퇴 후, 행복한 전원생활, 부부 여행을 꿈꾸지만 허상이다. 그때 가서 자식들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온다 한들 즐겁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게다가 광고 자체가 가부장적 남성 편의주의다. 부인은 지겨워서 졸혼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젠 시골 가서 농사짓고 살잔다. 여자는 꿈도 없이, 남자가 하자고 하면 따라가는 존재인가 보다.



이런 꿈들의 밑바탕은 물질과 육체 그리고 타인으로 이루어졌다. 꿈이란 원래 개별적이다. 누구와도 함께 꿀 수 없다. 본인이 꾼다고 옆에 누워 자는 아내가 똑같은 꿈을 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 꿈에라도 나타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타인은 지지자일 뿐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나간 수많은 오늘을 희생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허상이 됐다. 그 사람은 꿈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고 했다. 때가 오면 조용히 내려놓고 스스로 낮추는 꿈을 꿨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떠나가는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회가 바겐 세일하듯 팔고 있는 욕망을 사는 것도 문제지만 꿈꾸지 않는 것은 최악이다. 꿈은 내일의 기대치가 아니라 오늘의 만족감이다. 현재를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값비싼 미래는 없다. 꿈은 오늘의 가치 있는 행위로 인해 겹겹이 쌓여 커져가는 나무테와 같다. 그의 꿈도 다르지 않다. 물처럼 흘렀다. '행복한 아이'에서 '좋은 아빠'로 바뀌었고 또다시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어' 했고 작가가 됐다. 그는 삶이 아닌 꿈에 살았다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꿨다. 틀에 박힌 자본주의적 시각을 가진 인색한 이들 눈에, 그는 돈, 명예, 지위 따위와 관계없는 별 볼 일 없는 꿈만 꿨다. 한심한 착각이다, 꿈은 무게도, 높고 낮음도 없다. 게다가 세상에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말고도 수많은 종류의 꿈이 있다. 일부가 그런 꿈을 꾼다. 그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내일이 아닌 매번 다가오는 오늘을 행복해한다. 작가가 되고 나서는, 100년 후에도 읽히는 단편 소설과 에세이를 쓰려고 한다. 엄청나게 허황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일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바람둥이 오스카 와일드가 '행복한 왕자'를 쓰고, 프로방스의 야만인 고흐가 죽고 나서 유명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혹시, 생전에 그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좋아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매번 앉았던 테이블에 그의 이름이 새겨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집착하는 것도 죽기로 쓰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저 멀리 있는 멋진 꿈에 한 발짝 다가서는 오늘을 즐길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