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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24. 2020

사람들 사이를 춤추며
가볍게 스쳐간다


수술실은 정말이지 수술실처럼 생겼다. 그가 수술대에 누웠다. 둥글고 번쩍이는 커다란 조명 두 개가 바싹 다가와 비췄다. 간호사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슴에 심전도 측정기를 붙이고, 왼편 팔뚝에는 혈압계, 손가락에는 집게 그리고 혈관에는 링거를 꽂았다. 머리 뒤에 있는 모니터에선 띡.. 띡 하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에 맞추어 들렸다. 생사와 관련된 수술이라도 받는 느낌과 더불어 이런 것도 해본다는 흥미로움이 뒤섞여 올라왔다. 누워있던 그는 간호사를 올려다보며, 모니터에서 띡-하고 길게 울리는 경우도 있냐고 물었다. 왜, 드라마에서 보면 생과 사의 경계를 나누는 엄숙한 소리다. 그러면 수술실은 짖은 허탈감에 휩싸이고 숙연해진다. 그녀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환자의 엉뚱한 질문에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는 정형외과 중에서도 절단 봉합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라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렇듯 살면서 중간중간 벼움으로 무거움을 밀어냈다. 그의 새로운 친구 중에 48살 된 예쁜 계집애가 있다. 미국 영주권자이고 아이와 남편은 그곳에 남겨두고 본인은 한국에서 혼자 지낸다. 그녀는 그를 형이라 부르고 볼 때마다 깔깔거리면서 끌어안고 장난치려고 한다. 그는 경박스러운 그 계집애가 얼마나 무거운 슬픔에 차 있는지 듣지 않았어도 알고 있었다. 웃는 모습으로 분장한 어릿광대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버티고 살아야 한다. 웃음은 슬픔에 반비례한다.



잠시 후, 그의 어깨부터 오른팔 전체에 감각이 사라졌다. 의사가 집도를 시작했다. 좀 전에 장난스러운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눈을 감고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술대에서 생사를 결정지었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취로 인해 상망에 빠져들었겠지. '상망'은 의학적 용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심각한 부상 입은 사람이 마취로 인해서 잠시 겪어야 하는 허상을 말한다. 치매와 다른 점이라면, 현실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이라면 한 번은 겪어야 할 그때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떠오르지만 달리 남길 말은 그다지 없을 것 같았다. 평소에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 말해줬고 온 힘을 다해 사랑했기 때문이다. 소망한다면, 창가에 놓인 침대에서 누워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다가 힘없이 손이 툭 떨어지는 순간에 마치고 싶다. 미쳐 완성되지 못한 글은 그녀만이 알 것이다. 만약, 허약해진 육체로 인해 허상이 보인다면 상망보단 상몽을 하고 싶다.



별이 뜨고 바람 부는 바닷가에 앉아있다. 혼자가 아니다, 옆에는 어려서부터 항상 함께해온 상상 속의 그녀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도 나이 들어갔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얼굴은 주름졌다. 언제나처럼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말한다. 당신은 어쩌다 무책임하게 태어났지만, 책임을 다했고, 자신만의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둘은 이따금 밤하늘을 쳐다본다. 현실에서 잊혀버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드디어 수많은 그들이 나타나 밤하늘을 밝히며 가로지른다. 그토록 기다리던 여행을 떠날 시간이 됐다. 둘은 반짝이는 작은 조각들로 부서져 내린다. 잠시 밤바다 위를 너울거리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바람은 반짝이는 조각들을 별똥별 무리로 이끈다. 그들만의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아무도 둘이 한때 세상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가 유치한 동화를 꿈꾸고 있을 때, 차가운 손끝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수술이 끝나자 간호사가 측정기를 떼어내는 것이다. 그는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왔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꾼 것일까, 그의 표정은 한층 밝았고 눈은 맑았다. 그가 병실로 돌아오자 아내와 아이들이 왔다. 1층 로비에서 만나고 서둘러 돌려보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난리인데 복잡한 병원이 더 위험할까 싶어서다. 밤 열 시나 됐을까, 딸아이(22)에게서 전화가 왔다.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2인실을 함께 쓰는 맞은편 환자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하라고 짧게 말했다. 오른팔은 마취에서 풀리지 않아 덜렁거렸고 손은 꽁꽁 감겨있었다. 왼팔은 열매 매달리듯 주렁주렁 링거가 달린 막대 걸이와 복잡한 호수로 연결되어있다. 전화받기도 힘든 왼손으로 링거 걸이를 밀고 로비로 갔다. 다시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곱창을 배달시켰는데 오빠(24)가 많이 먹고 자신은 한 젓가락밖에 못 먹었다고 투덜거렸다. 오전에 수술받은 아빠한테 고자질하는 것이다. 그는, 아빠가 빨리 퇴원해서 오빠 야단치겠다고 어르고 달래서 통화를 억지로 끝냈다. 황당하게도, 겨우 스물두 살밖에 안된 딸아이는 평소처럼 어리광 피우는 가벼운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물론 곱창은 아들보다 딸아이가 더 많이 먹었다.



자신이 격은 한없는 무거움에 대한 반항심이었을까. 그는 이렇듯 가벼움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나 거리도, 카페도, 마트 등 세상 어디를 가나 무겁고 엄근진 하다. 저러고 있으면 대단해 보이기라도 한가보다. 말 한마디 붙이기도 힘들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칸트가 환생해도 저보단 나을 듯싶다. 어쩌다 대화가 오가면, 독립투사 같은 비장한 겉모습과 달리 자동차, 부동산, 주식 이야기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가 없다. 표정이야 생긴 모습 그대로 보여서 그렇다지만 말투가 너무 끈적하고 무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고 보면 무거운 것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다. 세상에는 가벼운 것들이 많다. 햇살, 바람, 나무, 별 등 사람이 만들어 내지 않은 태생적인 것들이다.



그가 퇴원할 때가 됐다. 간호사 대기실로 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구리 살을 집어 보이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뭘 얼마나 주입했기에 살이 이렇게 찌고, 잠든 사이에 본인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링거 바늘 꽂고 갔냐고 말이다. 그의 계속되는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가 퇴원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집에서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호텔 1층에 자리한 카페다. 지난 입원 기간에 생각했던 것을 쓰려고 해서다. 그는 단골손님이다. 산골에 가지 않을 때면 서점 아니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거의 전용화 돼버린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아저씨! 하고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몇 달 만에 보는 얼굴이다. 영화 홍보 일을 하는 그녀(32)는 같은 동네에 산다. 둘은 무슨 모임 같은 데서 만난 사이가 아니다. 동네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다가 만났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됐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친구와 카페에 온 듯했다. 둘은 마주 앉아 각자 일을 하면서도 간혹 대화도 나눴다. 누가 보면 아빠와 딸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이 상황은 그가 가볍고 편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둘은 카톡을 하고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나는 관계도 아니다. 가끔 마주치는 것뿐이다. 가벼움 앞에는 성별과 세대도 무의미하다.



그는 높고 낮고 깊고 얕음을 가리지 않고, 바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춤추며 가볍게 스쳐간다. 머무르려고도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벼워야 한다, 무거우면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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