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한 번뿐인 인생이다

by han



불행한 사람들은 비슷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젊은 날 세상을 여행하며 알게 됐다. 나도 나만의 고유의 색을 가지고 살고 싶었다. 당시에는 사업을 했지만 나이 들어선 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든 회사를 키워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작가가 되겠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고 난 내 삶을 산다. 한 번뿐인 인생이다. 꼭 그것만 하고 살라는 법은 없다.


10여 년 전, 5학년, 3학년 된 두 남매를 데리고 서울서 이곳 연고 없는 영양 산골로 왔다. 그새 아이들은 커서 군대에 가고 대학을 갔다. 그렇게 하나씩 서울로 떠나더니 어쩌다 나만 남았다. 이제 보호자인 아빠의 역할은 끝났다. 다들 보내고 혼자 남았다는 느낌, 빈껍데기에 쪼그라든 감정이 들어야 했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살다 보니 이런 기회도 오는구나 하는 마음,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꿈꾸고 준비했던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려서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니 열심히 습작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나의 버킷 리스트 첫 번째 목록에 올려놓은 것은 작가다. 일단 그것을 달성해야 차례차례 다음번 버킷 리스트로 이어져 간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면서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그냥 작가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1. 작가로 등단하여 남은 평생 글 쓰고 살기.

2. 바다가 보이는 시내 가까운 장소에 작은 단독주택 개조해서 가슴에 담은 이야기 쓰는 모임 만들기.

3. 잔 근육, 구릿빛 피부에 몸매 좋은 할아버지 되기.

4. 훤히 보이도록 왼쪽 어깨부터 목까지 타투 세기기.

5. 해변 파라솔에 앉아 선글라스에 웃통 벗고 병맥주 마시면서 수첩 꺼내 적기.

6. 저녁노을 비추는 해변 모래톱에 테이블보 깔아 놓고 그녀(?)와 와인 마시기.

7. 한 해 농사 마무리 짓고 젊은 날 사업차 방문했던 나라들 차례로 배낭 메고 여행하기 등등.


이렇듯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애 봐주고 자식들 목 빠지게 기다리는 전통적 할아버지가 가져야 할 의무감은 찾아볼 수없다. 나는 나고, 내 할 일도 천지다.



나는 매일 5시 조금 못 돼서 일어난다. 시간 강박관념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철저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시간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침대 밖은 위험해’라고 하며 이불속에서 미적거리기보다 ‘와, 또 아침이네’라는 기분이 든다. 우선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다. 층간소음과 옆집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난 외딴 산촌에 산다. 주변에 다른 집이 없다. 남들은 이른 새벽부터 밭두렁에 서서 멀거니 이슬 맞은 농작물 쳐다보고 있을 때, 커피를 내려 마시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중간중간 일어나 완력기와 아령으로 몸을 풀고 다시 앉아하던 일 계속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된 나의 모습이다.


젊어서부터 인문철학 계통은 좋아했지만, 오글거리는 감성적 문학 소설과 에세이는 거리감이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낯간지럽게 어떻게 써야 오글거리는지부터 배워야 했다. 주로 브런치를 보면서 학습했다. 새콤달콤 톡톡 튀는 글귀가 웃음을 짓게 하고 때론 한숨이 새 나올 정도로 먹먹하게 만들었다. 왜들 그렇게 잘 쓰는지, 감성을 보란 듯 되바라지게 들어낸 작가들은 샘이 날 만큼 멋져 보였다. 그들이 가장 부러웠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왕에 시작한 것, 내친김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 ‘브런치 작가’로 검색했다. 화면 아래 페이지수가 엄청났다. 욕이 나왔다. 모두 재수 삼수, 사수는 기본이고 심지어 구수도 있었다. 순간 찔끔했지만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이 년 동안 매일 시간만 나면 글을 쓰고 익명으로 인터넷에 올렸다. 수시로 다른 사람의 글과 조악한 내 글을 비교해봤다.


“형님이 글을 써요?”

“응, 내 버킷 리스트 첫 번째가 작가야.”

“버킷 리스트요?”

“왜, 나는 버킷 리스트 하면 안 돼?”

“하여간, 형님은 정말 특이해... 농부도 부족해... 이젠 하다 하다 작가라니.”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아는 동생이 물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겸손에 감추지 않는다. 작가가 못 되는 것과 자신의 꿈을 어물쩍 숨기고 말 못 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위축일 뿐이다. 무엇이 되려고 한다면 당당히 밝혀야 한다. 되고 안 되고는 그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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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저장된 글도 본다. 나는 페이스북과 블로그는 고사하고 인터넷 기사에 그 흔한 댓글도 달지 않는다. 습작으로 쓴 글들은 수정되지 않은 채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독서와 관련된 모임 같은 데서 활동하는지, 경력과 직업도 본다. 출판, 언론, 교육계 등과는 다르게 몸으로 때우는 농부다. 열심히 밭일하는 걸 보여 준다면 몰라도, 브런치 팀 심사 담당자들에게 보여 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작가의 서랍에 글을 남겨 그것으로 심사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10편 정도 됐을 때 신청하려고 했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란 글 1, 2, 3 편을 올리고 수정하는 동안 ‘ 망설이면 작가의 길만 늦춰질 뿐입니다.’라는 글귀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나를 꼭 집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애라 모르겠다. 작가 신청을 눌러버렸다. 직업 키워드 란에 ‘농부’가 없어 프리랜서로 적었다. 소중한 글 꼼꼼히 읽어 보고 5일 안에 메일로 알려 준다고 맨트 성 알림 페이지가 바로 떴다.


‘정말, 꼼꼼히 읽어 볼까?’


신청하고 이틀이 지난 화요일 오후였다. 읽어보지 않은 새로운 메일이 왔다는 ‘1’이란 숫자가 떴다. 브런치 팀에서 보내온 것 같았다. 달랑 3편 올리고 기대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메일을 클릭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합니다.]


음악을 틀어야 했다. 폰을 열어 무조건 눌렀다. 폴 킴의 너를 만나, 임재범의 사랑 등등이 쏟아져 나왔다. 애잔한 노래든 뭐든 상관없었다. 따라 부르면서 크게 춤을 췄다. 2019. 04. 23일 나는 이렇게 버킷 리스트 첫 번째를 달성했다.

브런치 팀은 고맙게도 내 글을 꼼꼼히 읽어 봤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랑 3편 올려진 글 가지고 브런치 작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잠시나마 맨트 성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이렇게 해서 난 브런치 작가가 됐다. 작가는 매일 습관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 운전하거나 밭일할 때는 머릿속으로 썼다. 생각나는 대로 썼다가 이게 아닌데 하며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날도 있고 잘 써지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짧든 길든 글이란 것은 고민하고 써야 한다. 글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내 글이 재미없고 흥미롭지 않다는 평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가벼운 생각으로 필력만 앞세워 대충 쓴 글이라는 평가는 받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없는 것이 가진 필력이 미천해서다.

앞으로 무척 고민스럽게 쓴 나의 생각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나려 한다. 이것은 내게 무척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 생각이 글로 남아 아이들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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