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럽고 허영에 들떠 사는
오십 대 남자

사치스럽고 허영기 가득 찬 사람

by han




아침 7시경, 핸드밀에 케냐 AA란 로스팅된 원두를 갈고 있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시에 살다 고향으로 귀농한 60대 부부가 이른 아침부터 찾아왔다. 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 이 시기에 방문하는 사람의 목적은 하나다. 분명히 트랙터로 밭 갈아 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왔다는 것을 짐작했다. 일단 들어오라고 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나의 작고 소중한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공간을 꽉 채운 부드러운 커피 향, 벽에 달린 노란 불빛조명, 길 다란 나무 소파와 아래 깔린 카펫, 바로 옆에 책꽂이, 테이블 위의 몇 권의 책들과 펼쳐진 노트북 이런 것들과 만평 가량 농사를 짓는 농부 이미지와 전혀 결합이 되지 않는지 꽤 낯선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부인은 궁금한 게 많은 사람처럼 화장실도 열어보고 싱크대 한편에 올려진 예쁜 병에 담긴 소스들과 길 다란 투명 병에 담긴 스파게티면 등도 들었다 내려놓았다. 여자들의 관심사는 어디를 가나 똑같다.


남자에게는 원두커피를 주고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왔다는 부인에게는 냉장고에서 직접 만든 걸쭉한 요구르트를 드레싱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꺼냈다. 오목한 사기그릇에 옮겨 담아 레몬즙, 발사믹 식초, 벌꿀, 소금 등을 뿌린 후 섞어서 호두와 땅콩을 듬뿍 얻어주었다. 부인은 키가 179cm나 되는 오십 대 중반의 과격하게 생긴 남자가 후다닥, 그것도 능숙하게 만들어 내놓는 요구르트 드레싱이 무척 신기하고 의외로 맛있는지 웃음을 지었다.


“남자가 요리를 잘한다고 하더니... 정말 잘하시고 예쁘게 꾸며놓고 사시네요.”


콩은 6월 중순이나 넘어야 심는데 벌써 밭을 갈아달라고 한다. 지금 갈면 그때까지 세 번을 갈아야 한다고 해도 굳이 갈아 달라고 한다. 이유는 한 가지다. 그 밭은 도로가 옆에 있다. 푸릇푸릇한 새싹 같은 잡초가 소복이 올라와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서다. 그 부부는 동네 사람들이 입으로 짓기는 등쌀에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 밭은 700평이다. 시간 반가량 트랙터를 움직이면 이십만 원이란 수입이 생긴다. 이럴 땐 무조건 돈이 먼저다. 그 부부에게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강원도 산불로 인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온 나라가 강원도 산불로 난리라고 하지만 그 동네 이야기일 뿐이다. 이 판국에 새벽부터 사방에서 밭둑 태우느라 정신없다. 강박증 걸린 사람들이라도 되는지 밭둑은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해야 한다. 심지어 밭과 붙어 있는 하천제방까지 불 지르고 제초제를 뿌린 후 이것저것 심어야 농사 잘 짓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온종일 아픈 다리 절뚝거리며 땡볕에 나가 호미로 잡초 뽑고 작물에 북을 주고 비지땀을 흘린다. 자신들 밭에는 고추 심어 놓고 밭둑과 자투리땅에는 계절에 맞춰가며 오만가지 심고 가꾸는 일로 고생스럽다. 본인들이 이렇게 극성을 떠니 남의 밭 잡초 포기 하나도 분명히 흉 거리가 될만하다.


“아, 인제 그만 좀 일해요, 나이가 몇인데... 노인네, 몸 성한 곳 한 군데도 없으면서.”


보다 못한 내가 한 소리 하면,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자식들도 나눠줘야 한다고 한다. 그 자식들은 나이 든 부모가 서운해할까 싶어 앞에서 고맙게 받고 뒤에서는 주변 사람들 주거나 내다 버린다. 근처 마트에 가기만 해도 깨끗이 손질돼서 봉투에 조금씩 담겨 있다. 굳이 쉬는 날, 이 먼 곳까지 와서 하룻밤 자고 가져가 애꿎은 냉장고 채울 일 없다. 쓰레기 처리 문제로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며느리는 은근슬쩍 인상을 찌푸리는데도 시어머니란 사람은 아량 곧 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사랑이 아니라 관습화 된 주책이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배운 것도 없이 몸이 부지런해야 돈이 됐던 시대에 살았다.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취미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땅만 보고 살았고 그것 아니면 다른 일은 할 게 없다. 게다가 습관적으로 남 보기 부지런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티 나게 몸으로 부지런하지 않은 것을 게으른 죄악으로 여긴다. 그것은 도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사회 전체가 가만히 있는 꼴은 보지 못한다. 생각할 틈도 없이 뭐라도 해야 한다. 이것 끝나면 저것 해야 하고, 저것 끝나면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해야 성실한 사람이란 평판을 듣는다. 도대체 왜들 그런지 모르겠다.


지나가다 동네 정자에 모여 있는 그들을 만나면, 누가 게으르다 흉이라도 볼 성싶은지 ‘밭둑에 제초제도 쳐야 하고 나물 씨도 부어야 하고’ 밭일이 천지인데 시간이 모자란 것처럼 서로들 앞서 말한다. 그러니 집안은 문 닫고 밭으로 뛰쳐나가기 바쁘다. 환기가 안 돼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입구부터 시작해 들어가는 내내 여기저기 널려있는 용도가 불분명한 물건들, 겨우내 신문지에 쌓아 보관한 배추와 무는 썩어가고 뽑아 놓은 파는 누렇게 시들었다. 난리도 그런 난리도 없다. 보이지 않는 집안보다 훤히 보이는 밭이 깨끗해야 한다. 밭둑에 손톱만 한 잡초 싹이라도 보이면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얼른 제초제 통을 짊어지고 뿌린다. 혹여 그 집을 방문이라도 하면 ‘바빠서 치우질 못해서’라고 한다. 도시에 사는 손주들이 정말로 오고 싶지 않을 만하다.


그래도 도시에 사는 자식들 집이라도 방문하는 날이면, 그 볼썽사납게 절뚝거리며 사방팔방 콩, 깨, 수수 등을 심어 장에 내다 판돈으로 대학 다니는 손주들에게 몇십만 원씩 용돈도 주고 인상 찌푸리던 며느리에게는 살림에 보태라고 두둑한 봉투도 준다. 그들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하며 살아간다. 자식에게 절대 손 벌리지 않고 오히려 보태준다. 그런 걸 보면 쓸데없이 부지런한 티 내고 남의 일에 생각 없이 짓기는 게 밉살스럽기는 해도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4월, 그렇게 그들은 바쁘게 보내고 나는 이 집 저 집 트랙터로 밭 갈아주면서 한가하게 보낸다.


그렇다고 내가 땀을 멀리하는 사람은 아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흘려야 된다. 단지 쓸데없이 흘리는 땀은 의미도 없고 바쁘기만 하고 몸만 축난다. 나는 대두 콩을 만평 가령 심다. 적지 않은 농사다. 그러다 한 번은, 천 평당 투입하는 나의 노동 시간을 계산하여 다시 날짜로 환산하여 세어봤다.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여유롭게 잡아 일 년에 채 100일이 되지 않았다. 현실과는 달리 마음만 일 년 내내 바빴다. 그때부터 모든 일을 편한 마음으로 설렁설렁 정확히 하기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한다면야 70일도 걸리지 않겠지만, 몸은 고사하고 소득 증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뭐든 생각을 많이 한 후, 계획을 세우고 몸은 적게 움직여야 한다. 같은 일을 두 번 하는 것은 낭비다. 남들의 입바른 소리와 눈총은 무자비할 정도로 관심 밖이다. 그들이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고 아프면 병원비 보태 줄 것도 아니다. 꼭 필요한 일만 한다. 밭둑에 아무것도 심지 않고 집 앞 텃밭도 만들지 않는다. 내가 먹을 채소도 심지 않는다. 혼자 쌓아두고 먹을 일도 없다. 마트에서 조금씩 그때그때 사서 먹는다. 직장생활이라면 눈치 때문이라도 부지런해 보여야 한다지만 자기 일을 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지 않고 몸만 부지런한 것은 자신 스스로 신체를 혹사하는 것이다. 누구나 본인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나부터 존중하고 아껴야 남도 존중하고 아낄 수 있다.


난 이렇게 단순하고 자유로운 생활이 좋다. 단순한 생활 방식은 시간의 여유를 만들어 준다. 그 소중한 시간,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했던 것을 실천하고 즐기기로 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요리도 한다. 글을 쓰면서 막히거나 하면 습관적으로 완력기와 아령을 하고 허벅지 운동인 스쿼트도 한다. 가끔은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포항으로 가서 바다도 보고, 소박한 허영심을 채우려고 작은 쇼핑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난 무척 사치스럽고 허영기 가득 찬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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