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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Mar 28. 2019

하마터면 서울대 갈 뻔했다

4장 대학이란 무엇인가

내가 꿈꾸는 대로 열아홉 인생을 살았던 나는 내신 4등급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인정하는 훌륭한 인재였다. 내 꿈을 이루며 의미있게 살았고, 꾸준히 성장해왔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고, 행복한 열아홉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모든 국내 대학에 탈락했다. SKY, 다 떨어졌다. 성균관대도 떨어졌다. 고려대만 1차 서류전형까지 통과했다.


다행히도 미국 대학에서는 합격 소식을 들었다. 시라큐스 대학교 맥스웰 행정대학(Syracuse Maxwell School)과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lbany)에 합격했다. 하버드 대학교는 대기자 명단(wait list)에 들었지만 합격 소식은 듣지 못했다. 나는 시라큐스 맥스웰이 정말 가고 싶었다. 시라큐스 대학교 맥스웰 행정대학은 공공정책/행정 부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과 견주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학비가 너무 비싸서 그나마 학비가 싼 뉴욕주립대로 진학했다.


뉴욕주립대


나도 사람인지라 처음엔 씁쓸했다. 한국 대학, 미국 대학 둘 다 잘 되길 바라는 욕심도 있었는데 선택할 것도 없이 미국으로 가게 되어 씁쓸하기도 했고, 하버드도 날 대기자 명단에 넣는데 도대체 한국 대학들은 뭔데 날 깔끔하게 떨어뜨리나 싶기도 했다. 다시 한번 남들의 시선에 사로잡힐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난 뉴욕주립대로 갔다. 그리고 더 자유롭게 내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으로 혼자 살기 위해 떠났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재밌는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뉴욕주립대 록펠러 행정대학에서 주최한 개강 파티에 갔다. 나도 공공정책 전공이었기 때문에 초대되었지만, 미국 대학 개강 파티는 소속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들이 다 초대되는 상당히 격식 있고, 큰 행사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1학년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열리는 이 행사에 가볼 용기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냥 한번 가봤다. 어차피 내 돈 내고 다니는 학교, 잃을 건 없으리.


조금 무거운 분위기에, 아는 사람도 없어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얼떨결에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곳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딱 봐도 신입생인 내가 뻘쭘하지 않도록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정말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관심 분야를 알고는 그쪽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에게 데려가서 "이 친구가 네가 연구하는 쪽에 상당히 아는 게 많은 것 같아"하며 소개해주었다. 그러자 또 소개받은 교수는 "오 그래?"하고 반가운 얼굴로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동안 정말 자연스럽게 많은 교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내가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에서 활동한 이야기, 한중일청소년국제포럼을 열었던 이야기 등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한 교수는 "내가 운영 중인 정책 연구소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원래 1학년은 학교 연구소 소속으로 일할 수 없는데, 그 교수님은 그런 부분까지 직접 행정처리를 해주며 일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렇게 입학하고 일주일이 안 되어서 학교에 일자리를 얻었다.


동아리도 들어갔다. 동아리 소개를 둘러보다 미국 민주당 동아리라는 게 있길래, 뭐 이런 정당 동아리도 있나 싶어 개강 첫 모임에 구경하러 가봤다. 그런데 그 자리에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프에서 사람이 와서(당시는 2016년 9월, 미국 대선 중이었다) 인턴을 더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고 소개했다. 때마침 나는 그때 가방에 이력서(resume)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꺼내서 가져다줬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부터 일하게 되었다.


수업도 정말 재밌었다. 첫 학기였지만 4학년 대상 수업까지 다양하게 들어보았다. 정말 빡셌다. 하지만 진짜 많이 배웠다. 그들은 단순 지식이 아닌, 각 전공 분야에서 21세기에 요구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있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도 질문하고 반론하기를 즐겨했다. 교수들은 그런 참여를 정말 좋아했고, 그 결과 첫 학기에 학교 우등생 명단(Dean's List)에 들었다(주변에선 이게 되게 대단한 거라고 했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이게 무슨 의미? 또는 도움이 되는 건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같이 사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교내 선거도 나갔다. 결국 아쉽게 떨어졌지만 좋은 의도로 준비한 선거였고, 나에게는 한반도를 벗어나 치러본 첫 선거였기도 했다. 정말 재밌었다.



뉴욕주립대를 떠나기 전날 밤,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하지만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곳을 떠났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짐을 싸들고 서부로 갔다. 브리검영 대학교(BYU, Brigham Young University)로 전학을 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완전 '듣보잡'이겠지만 학비가 정말 저렴하고, 학부 교육 중심의 좋은 학교였다. 내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면 하지 못했을 선택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박사, 적어도 석사까지 공부를 계속해보고 싶었고, 굳이 조금이라도 더 유명한 대학을 고집하며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교들은 대부분 대학원 중심의 대학이다. 그래서 유명하진 않아도, 학비도 저렴하고 학부 중심으로 더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뉴욕주립대에서 친구들과 이별하고 꼬박 3박 4일을 버스(뉴욕~시카고)와 기차(시카고~유타)를 갈아타며 유타 주에 있는 BYU로 갔다.


미국 대륙횡단 열차. 이 안에서 2박 3일을 있었다.




기차를 타고 한 겨울에 도착한 BYU


사실, 씁쓸했다. SKY 바라보다가, Syracuse 같은 곳 쳐다보다가 BYU라니. 하지만 BYU는 정말 좋은 학교였다. 나에게 엄청난 기회들을 제공해주었고, 내 꿈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학교에 온 지 한 학기도 지나지 않은 나에게 천만 원 가까이 장학금을 주며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에 다녀올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교수들이 추천서를 써줘 영국에서 학기를 마치고 나선 바로 한국 서울대학교에 방문 학생으로 갈 수 있게 해주었다.


늘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나였기에, 한국 대학을 직접 다녀보고 그 문제점들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군대 때문에 언젠가는 한국을 가야 했는데, 시간 낭비 없이 한국 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다가 바로 입대하고 싶었다.


서울대는 나에게 오라고 했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감사히 와달라 하다니. 내가 서울대 1차에서 떨어진 사람인 줄은 아는지...


아치스 국립 공원. BYU 근처(= 3시간)에 있었다.




뉴욕주립대, BYU, 케임브릿지. 세 개의 대학을 거치고 간 서울대는 실망 그 자체였다.


수업시간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 교수가 "여러분들 이럴 거면 인강을 들으세요"하는 학교. 교수가 중요한 말을 하면 손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 치는 소리가 커지는 학교. 시험 문제에 고등학교 내신 문제에도 안 나올 빈칸 채우기 문제가 나오는 학교. 학생들이 기운 빠져 사는 학교. 해외로 교환학생이라도 가보라고 하면 그것도 학점이 좋아야 간다고 좌절하는 학교. 맨날 취업이니 대학원이니, 앞날 걱정하면서 뭔가 해볼 힘은 나지 않고, 술만 자주 마시다 시험기간 되면 시험공부만 하는 학교. 과제도 겉핥기식으로 하는 학교. 영혼 없이 왔다가 가는 학교.


"여러분 이럴 거면 인강을 들으세요"를 말한 서울대 대일 킴 교수. 하지만 그 역시 훌륭한 교수는 아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여기에 와 있을까. 단순히 시험을 잘 치는 능력이 있었고, 서울대를 왔다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서울대는 이 친구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어떤 교수도 학생의 과제를 봐주거나, 비평해주지 않았다. 학생도 교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냥 각자 따로 놀았고, 성적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대가 이 친구들에게 주는 것이라곤 각 분야에서 필요한 지식과 실력, 세상을 바르게 이끌기 위한 가치관 같은 것이 아니라, 서울대 뽕에 취해 오만함과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인생 밖에 없었다.


정말 안타깝지만, 서울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내가 서울대에 가서 좋았던 건 고등학교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것, 그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뜻을 같이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몇 명 새로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이다. 고려대라도 붙었으면, 아마 난 고려대를 갔을 거다. 내가 거친 대학들이 아무리 내 삶에 실질적으로 더 큰 도움이 되었다 해도, '남들이 보기에' 우리나라 엘리트 코스는 SKY에서 학부를 나오고 해외에서 석박사를 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한일고도 해외 대학보단 고려대를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이란 결국 나를 내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곳이어야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난 정말 좋은 대학에 갔다. 성공적이었다.



영국 케임브릿지에서 (왼쪽 : 고등학교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오른쪽 : 학교 공식 연회가 있던 날)


뉴욕주립대에서부터 쌓은 값진 경험들, 수업과 일을 통해 배운 것들, 그 과정에서 만난 정말 좋은 사람들, 케임브릿지에서 매일 꿈속에 사는 것 같았던 환상적인 경험들을 버리고, 하마터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점과 시험에만 매달리며 살 뻔했다. 그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하마터면 서울대 갈 뻔했다. 하마터면 나도 화려한 포장지만 두른 채 아무런 의미도 실력도 없이, 오만함에만 빠져 살 뻔했다.


절대 대학의 이름이 가치가 되지 않는다. 남들이 아닌,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대학을 가는 사람이 되자. 어느 대학을 가든 내게 가치 있는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4장대학이란무엇인가 #하마터면서울대갈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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