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착한별 Oct 25. 2024

시어머니 아들과 장인어른의 딸

raw data 분석이 필요해


저 집으로 갈래요.


아이는 하늘에서 엄마 아빠를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이 갈 집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 아이가 벌써 아홉 살이다. 아직도 매일 봐도 매일 신기하다. 결혼 2년 차 38세, 산부인과 나이로 이미 노산인데 자궁내막증 수술까지 했다. 수술 후의 자궁 나이가 사십 대 초반이니 자연 임신은 힘들 거라는 의사의 말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난임 병원 다닐 마음을 먹고 그전에 쉬자고 떠난 7월 베트남 여행에서 아이는 우리와 함께 돌아왔다. 뜻밖의 기쁨으로 찾아온 아이라서 더 소중했다. 피고임이 심해서 13주까지는 집에 누워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사람은 옆에 누군가 있어도 외로운 법인데 뱃속에 나와 연결된 아이가 있다는 건 마음이 꽉 찬 느낌이었다. 내 몸의 온도를 1℃ 올려놓은 아이 덕분에 난생처음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다. 노산이니 당연히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을 거라는 지인들의 추측을 깨고 난 용감하게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해서 낳았다. 덕분에 세상에 처음 나온 아기는 놀라지도 울지도 않고 ‘잉’ 정도의 소리 정도만 냈고 엄마 품에 안기니 바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나 리모델링’을 도와줄 내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원래 한 사람에게만 집중한다. 출산 후 그 대상은 당연히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빈정대듯이 말하고 짜증도 자주 내는 남편이 눈에 보였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말을 할 줄 알던 ‘그 오빠’는, 곰처럼 푸근해서 '곰남편'이라고 부르던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나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 장남이지만 누나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로 충분한 관심을 못 받고 자란 내면 아이가 남편 안에 있었다. 연애 시절과 신혼 기간에는 나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아서 한없이 유해졌던 사람이 내가 아들만 챙기는 상황이 오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낯설게 느껴지는 남편의 말투와 행동은 40년 동안 친가에서 습득한 것들이었다. 남편은 ‘시어머니 아들’이었다. 시어머니가 40년 가까이 키우다가 나에게 인수인계한 사람이었다.  ‘내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시어머니 아들’ 분석부터 필요했다. 남편 역시 남의 말을 의심 없이 잘 믿고 뭐든 다 퍼주고 남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맞다. 나는 ‘장인어른의 딸’이었던 것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내가 된 것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나는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아이는 독립적인 인격체지만 함께 사는 동안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배운다. 옷장에서 오래 지낸 이불의 냄새처럼 한 사람에게서는 그 가족의 문화가 배어난다. 나는 양가 부모의 양육 환경 영향을 받은 남편과 나를 분석해서 내 아이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난 그걸 ‘Raw Data 분석’이라고 불렀다. 내가 바라는 것은 (WIW:What I Want) 우리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아빠와 엄마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이 엄마 아빠에게 오길 잘했어.


여섯 살 즈음, 아이가 이 말을 처음 했던 날에는 마치 오랜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