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싸울 일이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왜 그랬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고 눈물만 났다. 처음이 아니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 적이 많았다.
잘생긴 아빠 얼굴에 반해 아무것도 재지 않고 8남매의 장남과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한 우리 엄마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오래 했다. 명절에 친정 가라는 말 한 번 하지 않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울증을 크게 앓은 건 아직 못 한 말이 많은데 갑자기 할머니의 부재를 겪어서 일 것이다. 사업하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돈은 가끔씩 벌고, 동생 보증 서주다가 신용불량자 되고, 가정보다는 남의 일 챙기는 것에 더 앞장섰던 아빠에게도 엄마는 할 말을 다 못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집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 호랑이가 화나면 모두가 숨죽였다. 나는 엄마가 그 누구에게도 제때, 제대로, 할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돌아서서 끙끙 앓던 모습만 기억난다. 내뱉지 못한 말들이 몸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어느새 나는 그런 엄마를 닮은 채 살고 있었다. 친구가 내게 무례한 행동을 해도, 나쁜 말을 해도, 회사에서 억울한 상황을 당해도 내 의사를 표현할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혼잣말해 볼 뿐이었다. 그런 내가 나도 답답했지만, 말은 언제나 목구멍까지만 차오르고 끝내 나오지 못하고 눈물로 흘러내렸다. 누군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 순간에 나를 지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제때 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서 몸이 자꾸만 아팠다.
내 아이는 울지 않고 제때 자기 할 말을 제대로 하는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울지 않고 말하도록 하는 책들을 많이 읽어줬다. 그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아이가 만난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자주 했다. 무엇보다 내가 본보기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노력했다. 우선 남편에게 내 할 말을 제때 할 수 있게 되었다. 목에 걸려있던 말을 처음 내뱉던 날의 그 통쾌함과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 시작이 어렵지 하니까 또 되었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내뱉게 된 것이 마흔 넘어서라니. 괜찮다. 우리 엄마보다는 내가 빨랐다. 못한 말이 남지 않으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자기 의사를 제때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보고 자란 아이는 이제 제법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말을 하는 초등생이 되었다. 나는, 아이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제법 제때에 의사 표현을 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시 키웠다.
이제 목에 걸리는 말들은 대부분 제 때에 내뱉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 살면서 목에 걸렸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타임슬립을 해서 과거를 돌아다니면서 그 말을 일일이 다하고 돌아올 수도 없는데. 그 말들이 여전히 목에 걸려있지도 않을 텐데. 그렇다면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갑상선 수술 때 함께 나왔을까? 일부는 눈물에 섞여서 나오기도 했을까? 그 말들이 아직 몸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자꾸 글로 쓰면 그 말들이 글이 되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