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올해로 결혼한 지 11년 차다. 맏며느리로 고생하며 산 엄마를 보며 맏며느리로 시집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도 맏며느리가 되었다. '이 사람이 내 짝이다.'라고 결정했을 때 그 남자가 장남이었던 걸 어쩌겠나. 뭔가 대단한 시집살이를 한 건 아니지만 맏며느리라는 위치가 주는 부담감은 늘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리고 남들은 명절 스트레스만 받지만 나는 명절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항상 설과 추석이 있는 달에 제사도 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은 시어머니가 연로하셔서 미리 가서 음식을 만들거나 내가 집에서 만들어가던 것이 위령 기도(?)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당일에 참석해야 하고 식사도 하니 부담은 여전하다. 가기 싫은 마음에 며칠 전부터 자꾸 툴툴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결혼 1년 차까지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했다. 중소기업에서 일할 때는 정규직이었는데 대기업에서 일하면서부터 계약직 (파견직 /직계약직)으로 일했다. 회사 규정상 통역사라는 직군이 따로 없다는 이유였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통역사가 업무의 메인이 아니라 보조 역할이라서 그렇게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계약직이라는 형태로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급여, 상여 및 기타 혜택은 거의 동일하다. 눈에 보이는 차별은 사원증의 색에 있다. 파견직을 구별하기 위한 색이다. 계약직이라도 회사와 직접 계약한 경우에는 정직원과 사원증 색이 같다. 내가 일할 적에는 계열사마다 규정이 조금씩 달라서 사원증 색이 다른 경험도 해보고 정직원과 같은 색인 경험도 해보았다. 그런데 내가 차별을 느꼈던 순간은 사원증 색 때문이 아니었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선을 긋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였다. 국내외 유명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정규직이 되었든 지방대를 나와서 정규직이 되었든, 결과적으로 자신이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정규직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 꼭 있었다. "왜 계약직으로 여기서 일해요?"라고 화장실에서 내게 묻던 사람도 있었고 "계약직이어서 그 일만 해서 편하겠어요."라고 지나가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계시는 동안 대기업 체험을 해보세요."라고 배려하듯 무시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일부다. 존경할만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6년 정도 일했던 경험으로 인해 나는 '계약직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 후 나는 며느리도 처음 시작은 계약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사람도 아닌 나는 낯선 시월드에서 계약직의 기분을 다시 느꼈다. 회사에서처럼 너는 정직원이 아니잖아라고 내게 텃세를 부리던 누군가도 있었고 계약직이면 이렇게 일하는 거야라고 당연히 여기던 누군가도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억울하기도 했지만 며느리만 계약직인가, 사위도 처음 시작은 계약직이었기에 위안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10년쯤 시댁생활을 겪다 보니, 서로 부딪히고 오해/이해하는 시간을 겪어야 모난 돌이 둥글어지듯이 편안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은 계약직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지만 계약직이어서 편하기도 했던 회사 생활도 있었던 것처럼 며느리도 마찬가지니 괜찮다.
오늘은 제사가 있는 날이다. 꽃 한 다발을 사고 학원 끝난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먼저 가 있어야 한다. 남편은 퇴근해서 바로 온다. 나의 숨소리마저 알아채는 아들에게 억지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마인드컨트롤을 해본다. 앞으로 정규직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은 11년 차 계약직인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