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이 내 손에 묻히지 않기
노트에 글씨를 쓰다 보면 정성 들여서 적고 있는데 갑자기 볼펜똥이 나타날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그 부분을 지워보겠다고 혹은 가려보겠다고 무슨 짓을 하다가는 되려 일이 커지기도 한다. 살다 보면 볼펜똥 같은 일들을 만날 때가 있다. 살아 보니 그 볼펜똥 같은 일들은 주로 '관계'에서 일어났다. 엄마 사람으로 살아 보니 사회생활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볼펜똥 같은 일들을 생겼다. 어른 대 어른이 아닌 내 아이의 일이라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려운 엄마들 사이에서의 일들이었다. 몇 번 겪고 나니 처음부터 볼펜똥이 나오는 펜을 쓰지 말았어야 했거나 볼펜똥이 나왔어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도 이제 "그래서 뭐?"라고 말할 줄 안다.
나도 이제 So What?이라고 할 줄 안다 이제 So What?이라고 할 줄 안
나는 뭐든지, 누구든지 의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호의를 처음에는 고마워하다가 그다음에는 당연한 줄 알다가 나중에는 무례하기까지 한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자꾸 내가 그런 일을 겪으니까 친구가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앞으로는 3초 응시한 뒤에 말해보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 3초가 의미하는 게 뭔지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응시하는 3초는 내가 상대방을 파악하는 시간이면서 상대가 나를 함부로 볼 수 없게 하는 시간이다.
내 아이처럼 그림책 <그래서 뭐?>를 어릴 때 읽었다면 나도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을까? 누군가 나를 존중하지 않았을 때, 무례한 말과 행동을 했을 때, 내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뭔가를 했을 때 "그래서 뭐?"라고 바로 대응할 줄 알았을까?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데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러 사람이 미워해도 반드시 네가 살펴보고 판단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해도 반드시 네가 살펴보고 판단하라.
- 논어 위령공 편-
책을 읽다가 나에게 필요한 구절을 발견했다. 그동안의 나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을 나도 덩달아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면 나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서 내가 직접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알았다.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일은 지난날의 나의 실수들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리모델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