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의 아버지 정호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저자에 나가 나무를 팔았다.
백화사라는 독사에서 짠 기름이 몹쓸 병에 좋다고 하기에 이따금 나무를 하다 뱀이 나오면 그것도 잡아다가 팔았다.
그런데 꼭 산 채로 기름을 짜야한단다.
‘너도 참 가여운 신세다.’
정호는 오늘 잡은 뱀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백화사 한 마리가 쌀 두 가마니 값이라 잡을 때는 좋다가도 약방에 팔 때면 영 거북한 기분이 드는 정호였다.
그래도 윤희 혼자 집에 두기가 꺼려져 오랜만에 산에 올랐는데, 운이 좋았다.
‘이걸로 이번 달 생활비는 다 벌었으니 며칠은 애나 보며 집에 있어도 되겠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잠시 쉬면서 목을 축였다.
“한경대로에 있는 전 대감댁을 찾아가 봐.”
“어잇, 깜짝이야.”
숲 속에서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웬 젊은 사내를 보고 정호가 깜짝 놀라 옆으로 굴렀다.
“당신 누구요!”
도끼를 손에 쥐고 소리쳤다.
“이런, 많이 놀랐나 보네.”
젊은 사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무와 뱀을 더 좋은 값에 팔 집이야. 운이 좋으면 대감이 따님의 스승이 되어 줄지도 모르지.”
“스승?”
‘내게 딸이 있는 걸 저자가 어떻게 알았지?’
정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사내를 노려보았다.
“아, 나쁜 사람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
사내가 팔을 휘젓다 멋쩍게 웃었다.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뒷말을 얼버무리며.
‘속는 셈 치고 가 봐? 스승까지 해주면 좋고 아니면 값이나 비싸게 쳐서 받으면 그만이니.’
정호는 머리를 굴리느라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전 대감 댁에 가면 이것 좀 전해 주겠어?”
사내는 천에 곱게 싸인 꽃잎 한 장을 보였다.
“이게 뭐요?”
“꽃잎이야. 그 뱀보다 이게 더 효력이 있을 거라고만 전해줘.”
“그럼 전 대감이 내 뱀을 안 사는 것 아니오?”
“나무와 뱀도 좋은 값에 사줄 테니, 그 걱정은 마.”
사내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산길을 내려갔다.
정호는 어리둥절하여 사내가 사라진 길 위를 바라보다 얼떨결에 받은 꽃잎을 도로 천에 잘 싸서 품에 넣었다.
또 뱀이 든 주머니를 툭툭 쳐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내려둔 지게를 다시 짊어진 뒤 몇 걸음 옮기다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근데 저자는 다른 고을에서 왔나? 복장이 양반 같진 않았는데, 말투도 이상하고…….”
전 대감 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지체 높은 양반의 저택인 데다 상당한 규모의 기와집이니 그 근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행랑아범이 빗장을 열고 나와 용건을 물었다.
“전 대감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만.”
“대감님을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어떤 사내가 물건을 전해달라 하였습니다.”
행랑아범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우선 정호를 문 안으로 들였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오.”
“예.”
정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따라 오시오.”
머지않아 돌아온 행랑아범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호를 향해 외쳤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기와지붕 건물 일곱 채가 넓은 부지 안에 한산히 섰다.
정호는 그저 감탄만 나왔다.
평생 이렇게 넓은 집은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짐은 여기에 내려놓으시게.”
행랑아범을 뒤따르며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던 정호는 갑자기 들리는 말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대감님.”
“들여보내라.”
행랑아범이 방문을 열었다.
정호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방 안으로 들어가 넙죽 절부터 올렸다.
“내게 줄 것이 있다고.”
“예, 대감마님.”
“그래, 무엇인지 한 번 꺼내 보게.”
“그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호는 꽃잎을 건네기 전에 먼저 자신의 용건부터 말했다.
“제가 산에서 한 사내를 만났습니다. 그 사내가 말하길 대감님 댁에 나무와 뱀이 필요할 것이다 하여 이리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뱀이 어떤 뱀인가.”
“백화사라는 독사입니다.”
“그래, 그게 몹쓸 병에 좋다 하여 구하고 있었네만.”
“예,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또 산 채로 잡아와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약방에서도 그리 말했다고 하더군. 근데 내게 줄 것이 그것뿐인가?”
전 대감은 마치 알고 있는 듯이 물었다.
정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대감님, 제가 가져온 나무와 뱀을 사겠다 약조해 주시겠습니까?”
“그리하지. 계속 말해 보게.”
정호는 품에서 천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 사내가 뱀보다 이게 더 효력이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대감이 접힌 천을 펼치고 안에 든 꽃잎을 확인했다.
“이 꽃잎이 말인가?”
“예,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그렇구먼.”
지그시 꽃잎을 바라보던 전 대감이 정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알겠네. 그럼 이만 나가보도록 하게. 값은…….”
“대감님! 저기, 그게…….”
정호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는가?”
정호가 다시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제게 딸이 하나 있습니다.”
“고용살이 일자리가 필요한가?”
“그것이 아니고, 딸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계속 말해 보게.”
“제 딸아이에게 글을 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아비인 제가 신분이 미천하여 글을 잘 모릅니다.”
“학당이나 글방도 많지 않나?”
정호가 우물쭈물 망설이자 대감이 어르듯 말했다.
“사정을 말해보게.”
“실은 학당에서 쫓겨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쫓겨났단 말인가.”
“스승이 되어준다 약조해 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뒷방에서 심심하던 차였는데 잘 되었네. 아이를 보내게. 내 공부를 가르쳐주겠네. 대신 내 말동무가 되어 달라는 조건을 걸지.”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감사합니다.”
정호가 머리를 바닥에 닿을 듯이 숙이고 인사했다.
대감은 윤희가 학당에서 쫓겨난 사정을 다 들은 뒤에도 약조를 어기지 않았고, 정호를 그 댁 나무꾼으로 고용하는 덕을 베풀어 주었다.
윤희의 귀갓길이 걱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을에 험한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순수한 아이의 간과 쓸개는 양매창에, 뼈는 몹쓸 병에 좋다는 미신때문이란다.
“병이 뭐고 효가 뭔지.”
대감의 눈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노쇠한 자신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측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정호는 이야기를 하느라 다른 날보다 귀가가 많이 늦어졌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필 험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어 갑자기 애가 타기 시작했다.
대감은 그런 정호의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내일 아침부터 아이를 데려오게.”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그럼 저는 서둘러 돌아가봐야겠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시게.”
대감이 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정호는 빈 지게를 메고 집으로 달려왔다.
“오셨어요, 아버지.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윤희가 밝게 웃으며 아버지를 맞았다.
정호는 급히 숨을 골랐다.
“볼 일이 있어 조금 늦었다.”
“밥은 제가 해 놓았어요.”
“고맙다. 나머지는 내가 하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분주히 움직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윤희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디 다른 곳에 다녀오셨어요?”
정호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인다.
“저녁부터 먹자. 먹고 얘기해 주마.”
정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윤희는 희미하지만 아버지의 미소를 보자 그간 울적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일부터는 너도 나랑 같이 나가자꾸나. 한경대로에 사는 전 대감님이 네 스승이 되어주시기로 했다.”
“스승이요?”
“그래,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같이 가서 오후에 데리러 갈 때까지 그 댁에서 글도 배우고 대감님 말동무나 해 드리고 있으면 된다.”
정호는 달가워하지 않는 윤희의 모습이 의아했다.
“왜, 싫으냐?”
“싫은 것이 아니고, 제 소문을 못 들으셨다면…….”
“괜찮다. 다 말씀드렸는데도 너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정말요?”
윤희는 그제야 기뻐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정호는 아직 잠든 윤희를 지게에 태우고 전 대감 댁으로 갔다.
“윤희야, 윤희야.”
행랑아범이 안내해 준 문간방에 윤희를 눕히고 정호가 윤희를 깨웠다.
“으으, 아버지…….”
비몽사몽 대답하자 정호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산에 다녀올 테니 예서 공부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예에, 아버지.”
윤희는 다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 낯선 방에서 눈을 뜬 윤희는 이불을 꼭 붙잡고 눈알을 굴리다 잠결에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가자 마침 그 앞을 지나는 행랑아범이 보였다.
“저, 대감님을 뵈어야 하는데요.”
인기척을 느끼고 행랑아범이 다가왔다.
“따라오너라.”
윤희는 행랑아범의 뒤를 졸졸 따랐다.
“대감님,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들일까요?”
“오냐.”
윤희가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네가 윤희로구나.”
“예, 대감님.”
윤희가 넙죽 절부터 올렸다.
“편히 앉거라. 이제 일어났으니 아직 아침 전이지?”
“괜찮습니다. 저는 배가 하나도 안 고픕니다.”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윤희가 손을 내저었다.
“저런, 내 너와 함께 먹으려고 여태 기다렸건만, 그 말이 참말이냐?”
대감이 인자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꼬르륵.
윤희의 입 대신 배가 대답했다.
“허허, 그 녀석 참.”
호탕하게 웃는 대감을 보고 윤희의 굳은 몸이 아주 조금 풀어졌다.
“아침 상을 내오너라. 아이의 것도 같이.”
행랑아범이 나가고 대감이 낮게 속삭였다.
“네가 비상한 재주를 부린다고 하던데, 맞느냐?”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란 윤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게…….”
다시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윤희를 보고 이번엔 대감이 손을 내저었다.
“겁먹지 말거라. 내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네게 신묘한 재주가 있다기에. 내 어리석었다. 사과하마.”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치지만 말아 주십시오.”
“그 일로 내칠 거였으면 애초에 널 부르지도 않았다.”
“정말입니까?”
“그 이야기는 아침부터 들고 나서 하자꾸나.”
때마침 상을 들고 일꾼이 들어왔다.
“많이 먹거라. 공부도 힘이 있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대감님.”
“할아버지라 부르거라. 내 아직 손녀가 없다. 너를 내 손녀라 여겨도 되겠느냐?”
윤희는 입 안 가득 쑤셔 넣은 밥을 꿀꺽 삼켰다.
“그럼요. 하, 할아버지. 저도 마침 할아버지가 없었거든요.”
대감은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윤희와 대감은 뒤뜰 정자에서 글을 배우고 가르쳤다.
다과를 먹으며 대감과 담소를 나누었고, 대감이 보고 싶다던 재주도 보여주었다.
재주이라고 해봐야 아직은 약한 바람 정도였다.
학당 사건 이후로 집에서 몰래 연습해 보았지만 그날처럼 물이 쏟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네 재주가 참으로 신통하나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잘 숨겨야겠구나.”
대감이 윤희를 다독였다.
“그렇지만 학당에서는 제가 그러고 싶어 그런 게 아니었어요.”
윤희가 입을 비쭉 내밀고 답했다.
“서 씨가 왔습니다.”
행랑아범이 다가와 알렸다.
“네 아비가 왔나 보다. 오늘은 이만 가야겠구나.”
세 사람이 앞마당으로 나왔다.
정호가 벌써 지게를 비우고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윤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전 대감을 발견하고 정호가 꾸벅 인사했다.
“아버지!”
“얼른 돌아가자꾸나.”
정호가 윤희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이보게.”
대감이 정호를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리면 찬거리 좀 싸 주겠네.”
“아닙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닐세. 받아가게.”
넘치게 베푸는 할아버지의 온정에 윤희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말했다.
“아버지,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 같아요.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할아버지?”
“네, 대감님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랬어요.”
“그러냐. 하루 만에 많이도 가까워졌구나.”
“네, 진짜 스승님을 찾은 것 같아요.”
윤희는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두 손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