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낙원 06화

06 윤희 2

by 아무




윤희에게 학당은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었다.

몸이 약해 어머니와 함께 저자에 나가는 일도 드물었던 윤희에게 집 울타리 너머는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외출하여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도 신기하고 매번 새로웠다.

그렇기에 처음 얼마간은 제가 긴 시간(윤희 기준)을 걸어서 학당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즐겁기만 해서 소녀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학당이 윤희의 기대만큼 썩 좋은 곳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당에서 가르쳐주는 글자는 이미 어머니에게 배워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훈장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졸거나 떠들고 딴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하루는 훈장의 지목으로 책을 낭독한 적이 있는데, 윤희의 낭랑한 낭독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후하게 칭찬을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윤희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날 이후부터 한 무리가 성가시게 굴기 시작했다.

치마를 들추고 약 올리거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윤희에게 물을 뿌리기도 하였다.

또 윤희의 방석에 죽은 쥐를 올려놓아 기절할 정도로 놀란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왜 그러냐고, 그러지 말라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회유했지만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윤희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장난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또래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표적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윤희는 이제 그들에게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에 혼자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어도 그들에게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그들의 괴롭힘에도 익숙해져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도 받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훈장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또 그들이 윤희에게 몰려왔다.

치마를 들추는 척 윤희의 주의를 끌어 잠시 한눈을 팔자, 소중한 책에 먹물을 끼얹는 게 아닌가.

“아앗!”

‘아버지가 고생해서 사주신 고급 종이책인데, 이를 어쩐다.’

안절부절못하던 윤희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걸 못쓰게 만들다니! 아니야, 참아야 해. 그렇지만 내가 왜 참아야 해?’

윤희는 갈등하고 있었다.

“야! 너희 엄마 진짜로 아파서 죽은 거 맞냐?”

순간 윤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절대로 반응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뒤로하고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귀먹었냐? 안 들려? 너네 엄마 진짜로 아파서 죽은 거 맞냐고? 다른 남자랑 도망간 거 아니야?”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이름난 무역상의 아들인 그 남자아이가 혼자 킥킥거렸다.

윤희는 분하기도 했지만 뜻밖의 황당한 말에 너무도 기가 막혀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윤희가 오랜만에 보인 반응에 신이 났는지 뒤따라온 아이들도 덩달아 킥킥거렸다.

‘상대하지 말자. 상대하지 마! 절대로 상대하지 않을 거야!’

윤희가 고개를 휙 돌렸다.

책상 위에 먹물로 엉망이 된 책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부아가 치밀었다.

그때, 우두머리 남자아이가 한 번 더 비수를 날렸다.

“아무 말 못 하는 거 보니 도망간 게 맞나 보네. 킥킥.”

“아니야! 그리고 그만해.”

윤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윤희의 어깨를 밀치며 비죽 웃었다.

“뭘 그만해.”

뒤로 밀려 쓰러진 윤희가 입을 앙다물고 일어나 치마를 툭툭 털었다.

남자아이는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일어선 윤희를 다시 한번 더 밀치려고 팔을 뻗었다.

윤희도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두 팔로 다가오는 그 아이의 팔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하지 마!”

그때였다.

윤희의 등 뒤에서 마치 날개가 펼쳐지듯 차가운 물줄기가 뻗어 나와 무리의 남자아이들을 향해 쏟아졌다.

“으아아악!”

물살에 밀려 넘어진 남자아이들이 괴성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물벼락에 놀란 남자아이들은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 뭐야!”

“무, 물이야?”

“어떻게 된 거야?”

놀라긴 윤희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윤희도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몇몇의 아이가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서 얼어붙어 있었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쟤 등 뒤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어!”

“말 도 안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나도 봤어! 진짜야.”

“어떻게 갑자기 물이 쏟아져? 이매도 아니고.”

“정말 이매 아니야?”

“이매거나 귀신에 씌었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어?”

“귀신에 씌었는데 물을 어떻게 쏟아내냐?”

“그건 모르지. 귀신에 씌었는데 뭔들 못하겠어.”

방 안이 술렁거렸다.

순식간에 윤희를 향한 눈빛에 가시가 돋았다.

물 맞은 남자아이들의 눈은 더욱 사납게 빛났다.

우두머리 남자아이가 축축한 겉옷을 벗어 윤희를 향해 내던졌다.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그 옷을 윤희가 망연히 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책을 보자기에 주워 담고 품에 안았다.

방 안의 모든 눈이 윤희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윤희는 그 누구와도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황급히 방을 빠져나오려던 그때, 우두머리 남자아이가 윤희의 팔을 잡아챘다.

“어딜 가?”

“이거 놔!”

“옷값은 물어주고 가야지.”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이거 놔.”

윤희가 팔을 뿌리치자 남자아이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윤희는 붙들린 팔을 필사적으로 뿌리치고 겨우 방에서 빠져나왔다.

“야!!”

뒤에서 울리는 고함 소리에 발이 주춤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한달음에 달아났다.


“그 얘기 들었어?”

말하기 좋아하는 채소 가게 주인이 생선 가게 주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무슨 얘기?”

좌판을 정리하며 생선 가게 주인이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아니, 글쎄, 오늘 저 길 건너 학당에서 희한한 일이 있었다지 않나.”

“뭔 일이 있었기에?”

“그 혹시 아는가? 초석로에 나무꾼?”

“알다마다.”

“그 집 딸이.”

채소 가게 주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은밀한 척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가 알게 된 이야기라면 모두가 알 게 될 이야기였는데도 말이다.

“아, 그런 일이 있었다지 않아. 이매가 아니면 뭐겠는가. 귀신이 씌었대도 이상하지 않지. 아니 그런가?”

“거, 희한하긴 하다만.”

생선 가게 주인은 매일 듣는 저자의 풍문처럼 흘려듣는 척했다.

여럿이 목격했다니 틀림없는 사실일 터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종류의 험담은 아니었다.

괜스레 마음이 쓰려왔다.

채소 가게 주인의 어조가 점차 거칠어지자 생선 가게 주인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남는 생선 있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초석로의 나무꾼 정호가 생선 가게 앞에 나타났다.

채소 가게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생선 가게 주인도 덩달아 놀랐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밌게들 하고 계셨소?”

“뭐, 별 거 아니오. 생선이야 남아 있지. 찾는 게 있소?”

생선 가게 주인이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채소 가게 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정호에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쯧.”

정호가 혀를 한 번 차고는 작은 생선 두 마리를 사 들고 저자를 빠져나갔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런데 저는 정말로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윤희가 붉게 열이 오른 얼굴을 푹 숙이고 학당에서 있었던 일을 고했다.

“그게 어디 네 잘못이냐. 못돼 먹은 그 놈들 탓이지.”

“이제 학당에는 못 가겠죠?”

윤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가지 마라. 그런 놈들을 그냥 두는 학당이라면 뻔하다.”

잔뜩 기가 죽은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려왔다.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해 그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정호는 제 어린 시절이 떠올라 덩달아 가라앉는 기분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리고 딸아이의 기분이 조금쯤은 풀리길 기대하며 저자에서 사 온 약과를 꺼내 놓았다.

“아버지, 너무 달고 맛있어요.”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윤희 얼굴은 여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후로 윤희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자신도 모르는 비상한 힘을 쓴 탓인지, 아니면 마음고생을 한 탓인지, 그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소문은 오지랖도 넓어서 마을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온마을과 저자는 물론이고 한경 도시 전체를 뒤덮을 만큼 넓게 퍼져나갔다.

때문에 아무리 신경줄이 굵은 장 씨 부인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자에 나가면 길을 못 걸을 정도로 이 놈 저 놈 입 안대는 놈이 없이 한 마디씩 걸고넘어졌다.

“어린애가 불쌍하지도 않아!!”

그날도 장 씨 부인이 역정을 내고서야 주위가 잠잠해졌다.

그런데 또 채소 가게 주인은 참지 않고 근질근질한 입을 기어이 놀렸다.

“비실비실하던 애가 제 어미 죽고 나서 팔팔해진 것도 이상하지 않소? 제 어미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거 이상한 소문 퍼뜨리지 마슈.”

장 씨 부인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채소 가게 주인이 억울하다는 듯 되려 버럭 소리쳤다.

“내가 무슨 소문을 퍼뜨렸다고 그래!”

“언젠가 그 입 때문에 큰 일 치를 거요.”

장 씨 부인이 악담을 퍼붓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망할 놈, 밥 처먹고 할 짓 없으니 맨날 입만 놀리고 앉았네.’

미처 장을 다 보지 못한 장 씨 부인은 분을 삭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채소 가게 주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비실비실하던 애가 제 어미 죽고 나서 팔팔해진 것도 이상하지 않소?’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니 그런 오해가 생길 만도 하다.

게다가 불과 며칠 만에 건강해졌으니 수상히 여기려면 한없이 수상하다.

“에이, 설마.”

장 씨 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집 마당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흙바닥에 글자를 쓰고 있는 윤희를 발견했을 때,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머니. 다녀오셨어요.”

윤희가 인기척을 느끼고 장 씨 부인을 반갑게 맞았다.

“어, 어, 그래.”

환히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자 장 씨 부인은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치가 괜한 말을 해서 나까지 엉뚱한 생각을 했잖아.’

부식거리를 평상에 내려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먹고 싶은 반찬 있냐?”

“저는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거라면 다 맛있어요.”

속상한 티도 내지 않고 밝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부인은 더욱 마음이 쓰였다.

‘에휴, 저런 걸 두고.’

“기분이다. 오늘은 이 아줌마가 아주 맛있는 걸 해주마.”

“와, 신난다. 감사합니다.”

윤희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먹지도 않고 뭘 벌써 감사하냐.”

부인은 윤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그래, 나라도 거들어 줘야지.’

그러나 부인의 다짐은 고작 며칠 만에 무너졌다.

남편 장 씨가 돌연 사망했기 때문이다.

소문은 자연히 진화되었다.

장 씨 부인이 윤희를 돌본 탓에 남편을 잃었다는 괴소문으로.

소문은 부인을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남편을 잃은 슬픔이 윤희를 향한 원망으로 바뀌기에 충분한 고통을 주었다.

장 씨 부인에겐 더 이상 윤희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윤희도 부인을 볼 낯이 없었다.

“죄송해요, 아주머니.”

울타리 너머에서 사과하는 윤희를 보고도 부인은 못 본 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도 윤희는 방문을 향해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길이 너무도 쓸쓸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05 윤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