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걸었지만 윤희에게 지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길은 투명하고 맑은 계곡이 나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백귀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윤희도 그를 따라 멈춰 섰다.
“서천은 사바와 구천 사이에 있는 태초의 숲이야. 산 사람은 갈 수 없는 곳이지.”
백귀가 낮은 목소리로 나긋하게 말하며 윤희의 눈을 바라봤다.
윤희의 눈에 처음에는 의문이, 다음으로는 절망이 어렸다.
‘죽을 위기에 처해 살고자 따라왔건만 가는 데가 산 사람은 못 가는 곳이라니, 결국 죽을 운명이란 말인가.’
제 사정을 들어준다기에 무턱대고 따라온 자신이 어리석었다 후회가 들었다.
잔잔하던 윤희의 기가 뒤죽박죽 날뛰다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기의 흐름을 본 백귀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데려가 달라 간절히 청하기에 서천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으리라 여기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서천에 가면 너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생령이 되고 말아. 또 다시는 이곳 사바로 돌아올 수 없단다.”
당혹감을 숨기고 설명을 마친 백귀가 윤희의 의사를 넌지시 물었다.
“그래도 나와 함께 가겠니?”
“마음을 바꾸어도 됩니까?”
윤희가 눈물을 글썽였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런데…….”
백귀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모르고 따라온 거야?”
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흘려듣긴 했지만 윤희도 그 말을 기억했다.
‘갈 수 없는 곳’이라 하기에 당연히 가는 길이 멀고 험하거나 사는 형편이 어렵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했지 생령이라니, 결국 죽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자가 알려주지 않았어?”
“그자라니요?”
“네게 노리개를 준 양반 말이야.”
“나리께선 부탁하면 데려가줄 거라고만 하셨지 어디로 데려간다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말소리가 점점 움츠러들었다.
대답하면서도 제가 얼마나 아둔했는지 여실히 느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아.”
백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이 먼 길을 따라오다니.”
“백귀님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기에.”
“네 기가 다른 인간의 기에 비해 별나긴 했지만, 이렇게 무모할 줄이야.”
백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어. 난 안에 좀 다녀와야겠어.”
계곡 너머로 턱짓을 하고 나무 아래에 윤희를 앉혔다.
“어딘지도 모르는데 저 혼자 여기서 기다리란 말씀입니까?”
윤희가 백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금방 돌아올 거야.”
“그렇지만…….”
백귀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랑을 두고 갈게. 그럼 되겠어?”
윤희는 잠시 망설이다 소맷자락을 놓았다.
“예, 그러면 마음이 조금 놓일 듯합니다.”
백귀는 어깨에 걸쳐져 졸고 있던 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영문도 모른 채 바닥에 내려진 랑은 배를 까고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 모습을 본 윤희는 픽 하고 웃었고, 백귀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따끈하고 보드라운 랑의 배를 쓰다듬으며 윤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가면 현령에게 잡혀 죽을 테고, 서천으로 가면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라니, 어찌해야 하지.’
하아.
윤희가 긴 한숨을 내쉬자 랑이 몸을 뒤척이더니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도월 나리는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말해 주지 않은 걸까?’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힘주어 쓰다듬었다.
‘아냐,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야.’
고개를 푹 숙이자 도월이 준 노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도 윤희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랑이 우렁차게 갸르릉거렸다.
“정말이네.”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누, 누구십니까.”
기척 없이 눈앞에 나타난 사내가 눈을 반짝이며 윤희와 랑을 번갈아 보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초면에 실례를 했군.”
갈색 머리의 사내는 윤희를 보며 햇살처럼 웃었다.
“연월이 질투할 만하네.”
그러자 사내 옆으로 나란히 백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질투 같은 거 안 해.”
푸핫.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 표정이 어떤지 알고 하는 말이야?”
사내가 손짓하자 백귀의 두상이 둥실 떠올랐다.
백귀의 입이 일자로 꽉 다물렸다.
“저기.”
둘을 지켜보던 윤희가 입을 열었다.
“저 팔려 가는 건가요?”
푸하핫.
갈색 머리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윤희의 무릎에서 기분 좋게 자던 랑이 웃음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졸음 가득한 눈으로 비척비척 제 주인 곁으로 가더니 얼굴을 비볐다.
“이담, 장난은 그쯤하고 이 아이 좀 잘 살펴봐.”
“그래, 그래.”
이담이라는 사내가 얼굴에서 웃음을 싹 거두었다.
“서천이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왔다고?”
“예, 그렇습니다.”
윤희가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상하네. 왜 꽃이 한 송이뿐일까?”
이담이 턱을 괴고 중얼거리자 백귀가 말을 더했다.
“흐르는 기도 달라.”
“그렇단 말이지.”
이담은 짧은 고민을 끝내고 윤희를 향해 미소 지었다.
“가끔 명부보다 일찍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남은 생에 미련이 없지. 가혹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야.”
미간에 작은 주름이 패었다.
“하지만 명이 남은 사람은 구천에 갈 수 없어. 그들은 어떻게든 남은 생을 소모시켜야 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서천으로 데려가지.”
백귀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생을 서천에서 보내다 명부의 때가 오면 구천으로 잘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 중에 하나야.”
“그렇군요.”
윤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서천은 사바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 수 없어.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미리 꼭 알려주지. 서천에 들어가는 순간 사바와는 이별이라고. 대신 사바에 없던 평안은 얻을 수 있다고 말이야.”
이담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자, 그럼 네 이야기를 해볼까.”
윤희가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은 원래 두 송이의 꽃을 품고 태어나. 그런데 네 명문에는 꽃이 한 송이 밖에 보이지 않아.”
윤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담을 보았다.
“아마 네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그게.”
윤희가 말을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어머니도 꽃이 한 송이였습니다. 그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꽃이 보이는구나?”
이번엔 이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희를 보았다.
“예, 그렇습니다.”
“그럼 네 어머니의 꽃은 어떠했지?”
“꽃송이가 아래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 아래라.”
짧은 탄식에 윤희는 괜히 마음이 울렁였다.
“제 꽃은 어떠합니까?”
“꽃이 아주 탐스러웠겠어.”
이담이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아니란 말씀입니까?”
“애석하게도.”
“그렇군요.”
윤희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가 곧바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기운을 되찾았는지 씩씩하게 말했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니 결단을 내기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윤희가 밝게 웃었다.
“아니, 네 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나도 몰라.”
이담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이승꽃뿐이라. 그게 다 지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서, 네 남은 명이 얼마인지 가늠이 안 돼.”
이담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윤희도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 자신의 용모파기가 스쳤다.
“생각해 보니 저는 고민할 처지가 못 됩니다.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 건 슬프지만 어차피 저는 죽은 목숨이니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백귀님!”
윤희가 다시 환히 웃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워 이담과 백귀는 잠시간 말문이 막혔다.
백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윤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연월이라고 불러.”
“예?”
윤희가 얼빠진 소리로 대답했다.
“연월, 그게 내 이름이야.”
윤희는 연월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예, 연월님.”
“나는 이담이야.”
이담도 손을 내밀었다.
“예, 이담님.”
이담의 손도 맞잡았다.
“저는 윤희입니다.”
“서천에 온 걸 환영해.”
연월과 이담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그러자 순간 바람이 불고 꽃향기가 흩날렸다.
꽃밭이다.
“이럴 수가!”
윤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톡, 토독.
사방을 다 살피기도 전에 맑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역시 넌 특별한 존재인가 봐.”
이담이 윤희를 향해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비가 내리지 않는 서천에 네가 온 순간 비가 내리는 걸 보니.”
연월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희는 괜스레 흐르는 눈물을 빗물에 숨기려 턱을 치켜들고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비는 그들이 선 자리만 피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