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로 끌려간 윤희는 곧바로 옥에 갇혔다.
“나리!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어찌 이러십니까?”
윤희가 목놓아 외쳤다.
“너에게 잘못이 있고 없고는 내가 판단한다.”
“…….”
“내 아비가 널 손녀처럼 여겼다 하여 나 역시 너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 생각 마라.”
내리깐 희상의 눈이 한없이 차갑다.
“널 손녀처럼 아낀 대감을 해한 죄, 인간의 탈을 쓰고 잔악무도한 죄를 지은 너에게 내가 벌을 내릴 것이다.”
“아, 아닙니다, 나리. 저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래, 너는 그런 적이 없겠지. 하나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윤희는 희상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살려둘까 생각도 해보았다만 역시 그냥 두면 또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겠지. 해서 너는 곧 장형에 처해진다.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겠으나 내가 너를 살려두지 않을 작정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리.”
윤희가 납작 엎드려 울며 빌었다.
“세령이와 밀통한 것을 알고 있다. 어린 세령이를 꼬드겨 빼간 정보가 유용하더냐?”
“예?”
윤희가 얼빠진 표정으로 희상을 올려보았다.
“그래서 백귀는 찾았고?”
희상의 미소에 윤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게, 그러니까…….”
머릿속이 새하얘져 해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푸줏간에서 사라졌어야 하는데, 네가 결국 내 손에 피를 묻히는구나.”
희상이 비죽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께서 내가 누나와 어울리는 걸 아시는 눈치야.’
세령의 음성만 귓가에 맴돌았다.
윤희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어느새 어둑해졌다.
‘아버지께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어쩌지. 누가 알려줬을까, 아니면 벌써 소문이 났을까?’
“아버지……, 흑.”
다시 울음을 터졌다.
울다 지친 윤희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윤희야! 윤희야!”
“으…….”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자, 흐린 시야 속으로 익숙한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왔다.
“아버지!”
윤희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아버지 정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제가, 제가 전 대감님을……죽였대요. 현령님이 저를 장형에 처할 거라고 하셨어요.”
전날 다 흘려 더 이상 흐르지 않을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펑펑 쏟아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네가 대감님을 죽이다니…….”
“저도 모르겠어요.”
“내가 현령님께 부탁해 보마. 그래도 얼굴은 익혔으니 도와주시지 않겠냐?”
“도와주시지 않을 거예요.”
윤희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사실은 제가 대감님이 사라지고 난 뒤에 그 댁 손자인 세령이와 백귀를 찾아다녔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세령이는 현령의 아들이니까 정보를 수집하기가 좋을 것 같아서 제가 몰래 같이 찾자고 했어요.”
정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어머니 일도 있고, 대감님도 보름에 사라지셔서…….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백귀는 어머니의 행방을 알까 하고. 그런데 도저히 손에 잡히지가 않아서……, 너무 거기에만 골몰했나 봐요.”
“그래서 찾기는 찾았어?”
“아니요, 찾기 전에 이렇게 되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이제 막 동이 트는지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라. 내가 방법을 찾아 보마.”
“아니에요. 그러다 아버지도 위험해져요.”
“미안하다 이 아비가 너를 잘 돌봤어야 하는데…….”
“그런 말 마세요.”
그때 뒤에서 군졸이 다가왔다.
“이봐, 이제 시간이 다 되었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호가 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몰래 건넸다.
“큼,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조금만 일세. 곧 현령님이 오실 시간이니 서둘러야 해.”
“감사합니다.”
군졸이 주변을 살피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버지…….”
“윤희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짧은 면회 시간은 벌었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윤희가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아버지, 도월 나리를 아세요?”
“도월 나리라면 고리대금을 하는 그 양반 말이냐?”
“네. 그 나리를 찾아가서 제 이야기를 하면 도움을 줄지도 몰라요.”
“네가 그 나리는 어떻게 아는 게냐?”
정호의 얼굴에 강한 의구심이 드러났다.
“두 번 뵈었는데, 한 번은 그분이 저를 위험에서 구해주셨고, 또 한 번은 제게 부탁이 있다 찾아오셨어요. 그 부탁에 대한 답을 사흘 뒤에 하기로 했는데, 지금은 한시가 급하니 아버지께서 나리를 찾아가 대신 답을 해주세요.”
“그 양반이 너에게 부탁을?”
“백귀를 만나 물건을 전해달라 했습니다.”
“백귀라니!”
“아버지, 저는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죽은 목숨이에요. 현령님이 그러겠다고 했어요.”
“현령님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시기에…….”
“사람 잡아먹는 이매라고 소문이 났으니, 이런 저와 현령의 아들이 어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쪽도 곤란해지겠지요.”
윤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백귀는 안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마. 윤희야.”
정호는 딸의 손을 더 꼭 붙잡았다.
“아버지, 다른 방법이 없어요. 현령님의 손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은 이 고을에 도월 나리뿐이에요. 도월 나리도 백귀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어요. 어머니도 그러셨잖아요. 믿어 봐요, 우리.”
“내가 대신 벌을 받으마. 벌 받고 여기를 떠난다고 하자. 그러면 용서는 못 받아도 추방 당해 살 수는 있을 거다.”
“아버지…….”
“그러자, 윤희야.”
“싫어요. 그러면 아버지도 죽고 저도 죽어요.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야 해요.”
“정녕 그 방법뿐이냐?”
“네, 아버지. 그 방법뿐이에요.”
윤희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생겼다.
“네 뜻이 그렇다면 도월 나리를 한 번 만나 보마.”
“고맙고 죄송해요.”
“내가 부족해 네가 이리 고생하는 것 같구나. 미안하다.”
“그런 말 마세요.”
“아니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말랐던 눈물이 다시 차오른다.
정호가 눈물을 닦고 뒤를 한 번 살피자 군졸이 고갯짓 했다.
정호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고 온 주머니를 윤희에게 넣어 주었다.
“이거 먹을 거다. 숨겼다가 몰래 먹어라. 내일 또 오마.”
“아버지…….”
정호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옮겼다.
다음 날, 정호는 해가 저문 뒤에야 관아로 갔다.
이미 말을 해두었는지 정호가 도월의 이름을 대자 뒷돈도 받지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윤희가 갇힌 옥 앞에 먼저 와 서 있는 도월을 보고 정호가 걸음을 서둘렀다.
“나리, 제가 늦었나 봅니다.”
“아닐세. 자네의 여식과 할 말이 있어 내가 일찍 왔을 뿐이네.”
“아버지!”
소리죽인 목소리에 반가움이 서렸다.
핼쑥해진 윤희의 얼굴이 어제보다는 밝아 보였다.
“윤희야.”
밤사이 수척해진 정호가 애처롭게 딸을 불렀다.
“우선 내 거처로 가지.”
“제 딸아이는 어쩌고…….”
“그 걱정은 말게. 자네의 여식이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여 같이 가는 것이니.”
정호는 내심 거절하길 바랐지만 윤희의 뜻은 완강했고, 그 외의 다른 방법 또한 찾을 수가 없었다.
“끝내 그리 하기로 했구나.”
정호가 주억거렸다.
도월은 곧장 옥문에 걸린 자물쇠를 손도 대지 않고 풀었다.
그 장면을 목도한 정호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리도 이능이……!’
윤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도월은 두 사람의 반응을 예상한 듯 희미한 미소를 띠고 옥문을 열였다.
곧장 문 밖으로 나온 윤희는 도월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도월은 말없이 윤희에게 장옷을 건넸다.
장옷을 뒤집어쓰고 윤희는 아버지와 나란히 도월의 뒤를 따라 걸었다.
도월의 집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성대했다.
“세상에!”
윤희의 눈은 휘둥그레 해졌고, 정호도 입을 떡 벌렸다.
도월은 그들을 객당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게.”
“감사합니다, 나리.”
“준비가 되면 욕당으로 안내할 사람이 올 것이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옥에서 이틀이나 뒹굴고 안 씻을 셈이냐. 네가 안 씻으면 내 집도 더러워지니 그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염치없지만 욕당 좀 쓰겠습니다.”
“그래.”
도월이 나가고 정호와 윤희는 잠시간 멍하니 서서 문만 쳐다보았다.
“윤희야, 너 진짜 괜찮으냐?”
“그럼요, 아버지. 현령의 손에서 운 좋게 살아 남아도 죽은 듯이 살아야 하잖아요. 그건 싫어요. 뭐라도 해볼래요.”
“그래, 그게 네가 선택한 길이구나.”
“너무 걱정 마세요.”
윤희가 정호를 꼭 안았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욕당으로 가시지요.”
“네.”
윤희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욕당으로 갔다.
정호는 힘없이 창가로 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둥글다.
보름이 바로 내일이다.
정호는 윤희와의 이별을 앞두고 제 운명이 원망스러웠다.
제가 욕심을 부려 부인과 딸이 한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죄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 윤희가 선택한 길을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
믿어야만 했다.
윤희가 나가고 얼마 후,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나갑니다.”
정호가 문을 열자 큰 상이 하나 들어왔다.
상 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나리의 명으로 준비된 상입니다.”
“이렇게나 많이요?”
“많이 들게.”
도월이 다시 방을 찾았다.
“나리, 이렇게나 많이 필요 없습니다.”
“크게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나. 풍족히 먹고 마시면 마음이 좀 풀릴 걸세.”
그때, 윤희가 돌아왔다.
“이게 다 뭡니까, 나리.”
꾀죄죄하던 윤희가 깨끗이 씻고 고운 옷을 입으니 제법 여인 태가 났다.
“떠나기 전에 네 아비와 즐길 만찬이다. 나는 갈 테니 편히 즐기거라.”
“감사합니다, 나리.”
윤희가 인사하자 정호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다시 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도월 나리도 어찌 보면 좋은 분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정호가 억지로 미소 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왕창 먹어요, 아버지. 우리가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리겠어요.”
“그래, 그러자.”
이번엔 정호도 환히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 윤희는 더 환히 웃었다.
다음 날, 윤희는 또 욕당으로 갔다.
“어젯밤에 씻었으니 오늘은 세수만 하면 됩니다.”
“백귀가 아무리 달빛을 쬐러 나다녀야 하는 애송이 신이라도 신은 신이다. 목욕재계하고 기다리거라.”
도월의 말에 윤희는 온몸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또 도월이 준비한 새 옷을 입고 지난밤 머물렀던 방에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그를 기다렸다.
정호는 고운 윤희의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건 내가 해줬어야 하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혹시 할 수 있거든 연통하거라. 도월 나리께 부탁을 해서라도 답장 보내마.”
윤희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를 꼭 안았다.
정호는 품 안의 딸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도월은 때를 정확히 맞추어 문을 두드렸다.
“시간이 되었네. 가세.”
“예, 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