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서천에서 맞는 첫 아침이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침상에 누워 창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빛을 받았다.
잠에 취해 몽롱했던 정신이 차츰 또렷해졌다.
윤희는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켜고 베개 위로 팔을 툭 떨어뜨렸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옆으로 몸을 돌려 눕자 창의 한쪽 귀퉁이에 버드나무 가지가 걸렸다.
바람이 부는지 하늘하늘 어른거렸다.
나무 위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명주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걷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섰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음, 안 보이네.’
까치발을 하고 몸을 창밖으로 더 내밀었다.
그 순간 한쪽 손이 창틀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기우뚱.
으아아악.
윤희가 창밖으로 떨어졌다.
둥실둥실.
‘응?’
꼭 감았던 두 눈을 살며시 뜨고 눈알을 굴려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살폈다.
풀썩.
버드나무의 가지가 윤희를 풀밭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윤희는 어안이 벙벙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천은 대체 어떤 곳이지?’
윤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꼬르륵.
‘우선 아침을 먹자. 그리고 이곳저곳 탐방을 하는 거야.’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이고는 벌떡 일어나 옷의 먼지를 털었다.
“앗, 그러고 보니 먹을 것이 있던가?”
윤희는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방 창가에 있는 식탁 위에 수련의 바구니보다 조금 작지만 같은 모양의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이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지?”
반가운 마음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뚜껑을 열어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화덕에 구운 닭다리와 절임 채소, 호박을 넣어 끓인 타락죽 그리고 매실차가 나왔다.
윤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탄했다.
‘어제저녁 만찬 때도 느꼈지만 수련은 정말 선녀가 아닐까? 요리 잘하는 선녀!’
식사 준비를 마치고 윤희는 경건한 마음으로 버드나무를 향해 외쳤다.
“수련!!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이미 식사를 끝내고 주방 정리까지 막 마친 수련은 잠시 휴식을 위해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때였다.
윤희의 명주가 날아와 수련을 향해 소리쳤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하하하!”
갑작스러운 인사에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웃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보낸 걸 바로 알았네.”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명주의 쓰임새를 알고 한 걸까?”
수련은 한쪽 턱을 괴고 혼자 중얼거렸다.
윤희는 아침 식사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 깨끗이 설거지한 그릇을 다시 바구니에 넣고 손잡이를 꽉 쥐었다.
첫 외출이다 보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윤희는 어제도 집을 찾느라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갔지만 연월과 이담이 함께이기도 했고, 집이 정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외출로 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첫 단독 외출인 것이다.
성큼성큼 버드나무 아래로 가서 목적지를 말했다.
“수련.”
보이지 않던 명주 하나가 나뭇잎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구체의 비행 물체가 둥실 거리며 윤희의 주위를 한 바퀴 빙 돌더니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날아갔다.
그러다 윤희가 뒤쳐지면 되돌아왔다가 다시 앞서 나가기를 반복했다.
수련의 집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명주가 윤희의 속도에 딱 맞춰지기 시작했다.
‘볼 수록 신기하네.’
윤희가 앞에 떠 있는 명주로 손을 뻗어 만지려고 했을 때, 명주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어? 어디 갔지?”
윤희가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미 수련의 집, 마당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서 와. 어쩐 일이야?”
윤희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수련이 먼저 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앗, 이거 돌려드리려고요.”
바구니를 건네면서도 윤희는 주위를 흘긋거렸다.
“찾는 거라도 있니?”
“그게, 명주를 따라왔는데 사라졌어요.”
“아하.”
수련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볼일이 없다면, 나와 차 한 잔 하겠어?”
“실례가 안 된다면 그럴게요.”
“실례라니, 들어와.”
윤희는 수련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참, 오늘 아침 인사는 잘 들었어.”
어쩐지 수련이 즐거워 보였다.
“아침 인사라니요?”
윤희가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수련이 장난스럽게 윤희를 따라 했다.
“어떻게 아세요? 그게 들렸어요?”
창으로 가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집에서 한 말이 들릴 만한 곳은 아니었다.
명주를 따라 족히 일각(15분)은 걸었다.
이담의 설명에 의하면 명주 없이 혼자 걸으면 이틀은 걸릴 거리라고 했다.
“어떻게?”
윤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싱글거리는 수련과 눈이 마주쳤다.
“알고 한 게 아니란 말이지.”
“무얼요?”
윤희는 머릿속에 의문만 가득했다.
“벌써 명주에 대해 깨우쳤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군.”
수련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윤희를 보았다.
“하긴, 고작 하룻밤인걸.”
수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가까이에 선 윤희에게도 들렸다.
수련은 먼저 윤희를 자리에 앉히고 차와 자두를 내왔다.
그리고 수련은 자신이 아는 명주의 쓰임새를 하나하나 차근히 설명해 주었다.
수많은 쓰임 중에 말을 전해 주는 용도가 있는데, 그것을 윤희가 저도 모르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윤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련이 알려준 쓰임새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외웠다.
그러다 문득 윤희가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아, 명주가 사라졌는데 돌아갈 땐 어떻게 가죠?”
“간단해. 네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어. 그저 명주가 사라진 저 길 끝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다야. 그럼 명주가 다시 나타나서 길을 안내해 줄 거야.”
“그렇군요.”
윤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요.”
“그러렴. 점심도 보내 놓을 테니 잘 챙겨 먹어.”
“감사합니다.”
윤희가 깍듯이 인사하자 수련이 손을 내저었다.
“어머,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
윤희는 문 앞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수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명주가 안내하는 미지의 길에 올랐다.
서천에 온 뒤로는 단 한순간도 평범하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없었다.
온통 신기한 일투성이었다.
한경, 사바에서의 일상이 모조리 사라졌다.
그것이 서천에 사는 인간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한경에 두고 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현령을 향한 무서움과 분노.
전 도령에게는 미안함이, 전 대감에게는 고마움이.
도월 나리에게는 고마움과 두려움이 공존했고, 자신을 외면했던 무정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노여움이 일기도 했지만, 그것이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윤희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서천의 꽃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만히 꽃밭 속으로 시선을 옮기던 윤희는 한없이 먼 지평선에 눈길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