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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헌 Sep 11. 2024

마음 속 숨어있던 감정을 내려놓자, 그들도 나를 놓았다

내 마음 속의 수많은 쓰레기들

   모든 사람들에겐 트라우마와 감정의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리고 보통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과거를 찬찬히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대다수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삶을 하나하나 분해해보면서 나만의 특별한 삶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의 인생 곳곳에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고, 여전히 엄청난 감정 쓰레기들이 쌓여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삶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마음 속에 있던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집안이 가난하거나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적 없는 삶을 살았음에도 내 삶에는 수많은 굴곡들이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과거의 어두운 면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세상을 상대하기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미국에 일하시러 떠나서 안계셨고, 얼굴도 몰랐다. 어머니는 누나와 나를 키우기 위해 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셨다.


  나는 외할머니가 봐주시거나 홀로 집에 남겨지는 때가 많았다. 유치원에 입학도 하기 전인 5살 무렵이었다. 집에 혼자 남겨져 있으면, 대낮이어도 엄청 무서웠다. 그래서 항상 만화영화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았다. 어린 세대는 모를 수도 있지만, 카세트테이프는 앞면과 뒷면이 있었다. 앞면이 끝나면 테이프를 빼서 뒷면으로 돌려 끼고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 시간에는 당연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가 이어진다. 바로 그때가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시간이었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침묵이 나는 너무 무서웠다. 만화영화 테이프는 당시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루 종일 틀어놓았고,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도 들어서 카세트테이프가 끊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 엄마 손을 잡고 다시 똑같은 만화영화 테이프를 사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그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등하원을 혼자서 했다. 물론 그때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그렇게 다니는 아이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세상은 두려운 것 투성이었다. 5~6살 어린 아이의 두려움은 어느새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1학년 때는 책 읽기가 너무 두려운 시간이었다. 일어나 책을 읽으면 목소리가 떨렸고, 아이들이 웃었다. 분단별로 책 읽기를 시켰는데, 내 차례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그것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알지 못했다. 내 스스로 견뎌내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 두려움을 조금씩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어느덧 더 이상 떨지 않게 되었지만 완전히 이겨낸 것은 아니어서, 나는 말을 더듬거렸다. 심지어 압박이 심한 상황이 되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글도 또래에 비해 늦게 읽었다. 심리적으로 무언가 나를 계속 짓눌렀다.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조바심과 콤플렉스가 생겼다. 그 어린 나에게 필요한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혼자 노력해야 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인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고충이 있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당시 나는 상도 많이 받았으며, 총명하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고, 운동도 잘했다. 겉으로는 밝은 모범학생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트라우마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도 치열했다.


  그리고 결국 고등학교 때 모든 것이 터져버렸다. 중학교에서 상위3%의 우등상을 받고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았다. 세상이 싫었고, 교육제도가 싫었고,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둠의 자식처럼 모든 것이 비관적이었고, 학교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첫 시험에서 5등이었던 성적은 매번 급격히 떨어졌다. 그것이 어떤 트라우마가 발현된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당시의 내 감정 상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감정들은 집요하게 나를 공략했다.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고등학교 시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무서운 부산 남자였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매우 다혈질이었으며, 아버지도 어느 정도 그 성격을 물려받았다. 할아버지 시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을 테니 트라우마의 강도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는 대학교에 갈 때까지 아버지와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겪으며 많은 트라우마들이 쌓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격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당신께서 가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이 뭔지도 몰랐고, 화를 내는 아버지가 싫었다.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는 큰 사람이었고, 화를 낸다는 건 큰 공포였다.


  내가 아버지와 친해진 것은 아버지의 약해진 뒷모습을 보면서부터였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부쩍 아버지의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군대에 갈 때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모습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하지만 사랑의 강도는 그 누구 못지않았던 이 시대의 아버지 그 모습이었다. 대학교 이후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도 어려움도 없어졌고, 친구가 되었다.


  그제서야 내 인생이 다시 열렸다


  표면상의 느낌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것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미 아버지와 거리낌 없이 지낸지 십여 년이 흘렀을 때였다. 그런데 과거의 힘들었던 일상들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갑자기 마구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의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봇물 터지듯 마음속에 맺혀 있던 말들을 뱉어냈다. 아버지와의 상상의 대화를 하던 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10대에 받았던 상처는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소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해소되어야 해결 된다는 것을 몸소 느낀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진정으로 아버지를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도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나의 어깨를 놓았다.


  그리고 나는 어렸을 적 나도 만나러 갔다. 두 번째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세상에 맞서느라 고생했는지, 위로해 주고 꼭 안아줬다. 그때도 펑펑 울었다. 


  아이는 상처투성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그 아이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 아이도 내 발목을 놓았다.


  나는 그 감정들이 아직까지 깊은 곳에 봉인되어 살아있는 줄 전혀 몰랐다. 20대 이후에 울었던 건 이 두 번이 전부였다. 그만큼 평소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감정의 상처를 스스로 막고 있었을 뿐, 그 에너지는 나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정확히 감정의 근원을 타깃으로 감정을 쏟아내자, 나의 감정은 진정으로 봉인을 해제하고 풀어지듯 사라졌다.     


  그제서야 내 인생이 다시 열렸다. 짜증나던 것들이 더 이상 짜증스럽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내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 항상 냉정하고 목석이란 얘기까지 듣던 내가, 나의 어두운 부분도 거리낌 없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의 날카로운 성격도 귀찮아하던 습관도 대폭 제거되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나는 보호 시스템에 의해 지금의 이야기를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나를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운전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대로 속도를 높이며,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나의 감정은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다.



  자, 이제는 여러분들 차례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경험을 통한 다양한 감정의 쓰레기가 쌓여있다. 감정의 쓰레기는 어른 된 지금 보기에 매우 사소한 것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생긴다. 누구나 예외는 없다. 그것을 찾아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두 찾아라. 원인과 대화하고 그것을 해소해라. 이것은 오래 묵은 쓰레기다.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감정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해라. 그리고 내가 놓으면 감정도 나를 놓을 것이다. 지금 당장 보듬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어릴 적 자신을 만나러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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