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호박꽃의 미래

by 남효정 Feb 18. 2025

호박꽃의 미래


                            남효정


느긋하게 긴 잠을 잘 때

킁킁, 코끝을 간지르는 이것

달큰하게 노곤하게

온 집안을 가득 채운
구수한 냄새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는
놀라운 모습

이것이 무엇입니까

아, 이것은 말이죠

호박꽃의 미래입니다


늙은 호박을 푹 삶아서

곱게 갈아요

눈부신 황금빛 호박즙으로

반죽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밤을 자요

반죽이 꿈을 꿀 동안

고단한 그대도

함께 꿈을 꾸면 되지요


모두 자는 이른 아침

반죽을 오븐에 조용히 구워볼까요

반죽이 호박빵이 되는 동안

하나 둘 모여드는 

삐죽 뻗은 머리에 까만 눈동자


찬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려도

창밖은 이미 남의 나라

따뜻하고 고소한 오늘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

아이가 작은 손으로 빚은 접시에

수북하게 빵을 꺼내 담아요


엄마가 밭둑마다 심은 작은 호박모종은

한 여름에 하나 둘 꽃을 피웠죠

엄마에게 매달린 우리들처럼

호박꽃송이마다 작은 호박이 매달리고


작은 호박은 점점 자라서

연둣빛 애호박이 돼요

애호박은 비 오는 날 호박전이 되고

찌개가 되고 볶음이 되어

쑥쑥 크는 아이들의

소박한 밥상을 채워줍니다


따지 않은 호박은 점점 더 커져서

커다랗고 길쭉한 늙은 호박이 되지요

아버지가 차에 실어주신 커다란 호박

딸네 따뜻한 집안 창가에서 

눈 나리는 거리를 바라보더니

오늘 울퉁불퉁 호박빵이 되어

온 가족을 불러 모읍니다


호박꽃의 위대한 미래

담백한 몇 덩이의 건강한 빵

혹은 달콤한 호박죽

때로는 눈 날리는 시장통의

한 줌 호박엿


배고픈 목숨의

달디단 양식

마음 고픈 사람의

영혼의 성찬


나는 누구에게

한송이 호박꽃만큼

따뜻하고 든든한 

미래가 될 수 있는가



#호박꽃 #늙은 호박 #호박빵 #호박꽃의 미래 #남효정 #놀이와 교육 연구소





2025년에도 고요하게 성실하게 쓰고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렵니다.

출판 및 강연, 전문가 협업 제안은 댓글 및 제안하기 기능을 활용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화, 목 07:00 발행 [이제 꽃을 보고 시를 씁니다 3]

일     07:00 발행 [오늘 나는 걷는다 1]

이전 16화 함박눈과 하얀 동백꽃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