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의 미래
남효정
느긋하게 긴 잠을 잘 때
킁킁, 코끝을 간지르는 이것
달큰하게 노곤하게
온 집안을 가득 채운
구수한 냄새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는
놀라운 모습
이것이 무엇입니까
아, 이것은 말이죠
호박꽃의 미래입니다
늙은 호박을 푹 삶아서
곱게 갈아요
눈부신 황금빛 호박즙으로
반죽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밤을 자요
반죽이 꿈을 꿀 동안
고단한 그대도
함께 꿈을 꾸면 되지요
모두 자는 이른 아침
반죽을 오븐에 조용히 구워볼까요
반죽이 호박빵이 되는 동안
하나 둘 모여드는
삐죽 뻗은 머리에 까만 눈동자
찬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려도
창밖은 이미 남의 나라
따뜻하고 고소한 오늘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
아이가 작은 손으로 빚은 접시에
수북하게 빵을 꺼내 담아요
엄마가 밭둑마다 심은 작은 호박모종은
한 여름에 하나 둘 꽃을 피웠죠
엄마에게 매달린 우리들처럼
호박꽃송이마다 작은 호박이 매달리고
작은 호박은 점점 자라서
연둣빛 애호박이 돼요
애호박은 비 오는 날 호박전이 되고
찌개가 되고 볶음이 되어
쑥쑥 크는 아이들의
소박한 밥상을 채워줍니다
따지 않은 호박은 점점 더 커져서
커다랗고 길쭉한 늙은 호박이 되지요
아버지가 차에 실어주신 커다란 호박
딸네 따뜻한 집안 창가에서
눈 나리는 거리를 바라보더니
오늘 울퉁불퉁 호박빵이 되어
온 가족을 불러 모읍니다
호박꽃의 위대한 미래
담백한 몇 덩이의 건강한 빵
혹은 달콤한 호박죽
때로는 눈 날리는 시장통의
한 줌 호박엿
배고픈 목숨의
달디단 양식
마음 고픈 사람의
영혼의 성찬
나는 누구에게
한송이 호박꽃만큼
따뜻하고 든든한
미래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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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도 고요하게 성실하게 쓰고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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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07:00 발행 [이제 꽃을 보고 시를 씁니다 3]
일 07:00 발행 [오늘 나는 걷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