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이베리스
남효정
일 년 내내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나라에
이베리스 여왕이
살고 있어
새하얀 옷을 입고
백두산 호랑이를 닮은
신비한 동물을 타고
순식 간에 산을 넘어 골짜기로
날렵하게 움직였다지
밥을 굶는 백성은 없는가
하고픈 한마디 말 맘속에 꾹 담고 사는 사람
그 푸른 얼굴에 그림자를 거두어주리
환복을 하고 백성들 사이를 거닐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베리스
하염없이 내리는 눈도
나의 덕(德)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눈이 흐려져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한다면
나는 당장 맨발로 바닥으로 내려오리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냄새
낮은 담장을 넘어갈 때
고단한 몸으로 돌아온 여왕은
백성들이 먹는 소박한 찬으로 식사를 하고
그들이 마시는 시큼한 술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새 눈은 그치고
밝은 달이 휘영청 밝아올 때
어느 집에서 보았던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 먹는 가족이야기
그들의 낡은 옷과 차가운 집안
턱없이 부족한 음식과
또래만큼 배우지 못한 아이의 사연을
시로 짓는다
눈꽃 여왕 이베리스의
시 항아리는 하루 한 편
백성들의 삶을 담은 시로
차오른다
나랏일 하는 사람 모두 모여
여왕의 시를 읽는 아침
새하얀 곡선의 우아한 시 항아리에
햇살이 비칠 때
시에서 들려오는 백성의 추상(秋霜) 같은
목소리를 그대들은 들었는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
이제 그만 내려오라
맨발로 내려오라
지금 똑바로 걸어가고 있는가
뒤 돌아보라
또렷하게 눈 위에 찍힌 너의 발자국
가난해도 정직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넘어진 이웃을 함께 일으켜 세우는
역사의 발자국을 기억하라
그 향긋하고 우아한 걸음새를
#눈의 여왕 #이베리스 #시 항아리 #남효정 놀이와 교육 연구소
2025년에도 고요하게 성실하게 쓰고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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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07:00 발행 [오늘 나는 걷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