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서른여섯 (1)
변덕
왜 갑자기 개를 기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혼자 잘 사는 고양이는 싫었다. 작은 개도 싫었다. 크고 용맹해 보이는 개가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자주 가던 양평의 막국수 가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조심스레 나의 의사를 밝혔다. 엄마와 누이는 결사반대를 외쳤다.
"개 한번 안 길러본 너가 어떻게?"
"집에 있는 장미(개)도 이뻐해주지 않는 녀석이 갑자기 무슨 소리냐?"
엄마와 누이의 말은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꽤나 날카로웠다. 함께 산 시간에서 우러나는 진실이랄까. 다만 진실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채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부정하는 습관까지 갖춘 나였다.
"왜 내가 못 기를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한번 마음먹으면 잘해. 내 물건 봐봐. 어디 허투루 사거나 막 쓰거나 잃어버린 적 있어?"
그동안의 사실만을 말한 엄마와 누이의 말에 겨우 저항할 꺼리가 생겼다.
"나는 내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소중히 다루고 책임감이 생겨. 다들 봐와서 잘 알잖아"
지금 생각해봐도 살아있는 동물을 돈으로 사고 버리고 먼지투성이 방구석에 쑤셔놔도 되는 물건과 비교했으니 궁색한 변명이었다.
"하긴 그건 그래. 네 것은 잘 간수하고 오래 쓰지"
"그래서 어떻게 데려올 건데? 뭘로?"
엄마와 누이의 급격한 태세전환으로 나는 적잖이 놀랐다. 사실 그들이 말려주길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었다. 그들이 강력하게 반대한다면 변덕스럽고 갑작스런 마음을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3주 전부터 지켜본 유기동물 사이트를 소개하며 언제든 원하는 개를 데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결국 개의 이름을 짓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차창 밖을 보던 엄마가 갑작스레 '하늘이'라고 부르자고 말했다. 실체도 없는 나의 개는 이름을 가짐으로서 윤곽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늘이와 함께 자고 서로를 바라보며 산책하고 같이 앉아 쉬는 나의 모습이 어설프게 그려졌다. 엄마와 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은 안돼. 내가 누굴 기르겠어'
하늘이는 없었다. 엄마와 누이의 대화 이후로도 탐닉하듯 유기동물 사이트를 둘러봤다. 돈 안 들이고 가져올 생각에 쇼핑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늘이라는 이름에 맞는 개를 찾아 입양기관에 전화하면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대답이나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기다리란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이때까지도 개를 데려오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왜 그리도 나 이외의 살아있는 것에 집착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그저 데려와야 하는 이유를 하루하루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시기였다. 51대 49. 사람 마음을 수치로 나타내는 건 말도 안되지만 사이트에서 지켜보던 개가 안락사로 표시된 그날 새벽, 나는 결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초조하게 유기동물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급하게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개가 아직까지 보호소에 있는지, 오늘 데리러 가도 되는지를 물어봤다. 무미건조한 건너편 목소리는 점심시간 이후로 시간 맞춰 오라고 했다. 나는 덜컥 무서워졌다. 전화까지 해놓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갑을 챙겨들고 다이소로 갔다. 밥그릇도, 물그릇도, 사료도, 목줄도 사야했다. 나는 개를 위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유기견센터에 도착하자 내가 말했던 개를 데리고 나왔다. 길러야 한다는 무서움보다 개의 생김새에 한번 흠칫했다. 다른 색의 두 눈과 예리한 얼굴, 큰 몸으로 센터 직원의 손에 끌려 나온 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익숙한 척 개에게 다가가 살갑게 대해야 보호소 직원이 나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척하며 얼마간 마음을 진정해야 했다. 이름, 주민번호, 사는 곳, 휴대전화 번호를 종이에 적으니 개는 나의 것이 되었다. 종이 한 장에 생과 사가 결정되는 것은 인간이나 개나 마찬가지였다. 어설픈 목줄로 개를 끌고 나와 차에 태웠다. 몇 달동안 씻기지 않은 탓인지 참기 싫은 냄새가 났지만 개가 생겼다는 기쁨에 냄새는 창문 너머로 흘려보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름을 ‘바람이’라고 부르겠다고 결정했다. 자유로운 바람처럼 달리고 뛰어놀라고.
밥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배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도착한 바람이와 나는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다. 낯선 곳에 대한 경계와 호기심 사이에서 머뭇하는 바람이와 대책 없는 인간의 어색한 만남. 도움이 될까 싶어 내가 어떻게 컸는지 생각해보았지만 아무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이 되기까지 젖을 언제, 얼마나 먹었는지가 궁금해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봐야한다고 가르친게 언제인지, 내가 어떻게 그 말을 이해했는지 기억날리 없었다. 사람이든 개든 먹고 자는건 거스를 수 없으니 밥통, 물그릇 놓는 곳부터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