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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Jul 10. 2021

따로 또 같이 프로방스를 걷다

22편

                                                         17

                                        5월 24니스

  

  “숙! 미셸이랑 어떻게 된 거야?” 

  

  쥬디가 짐을 챙기는 화숙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화숙이 그를 거절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녀의 표정이 심란하다. 

  쥬디는 화숙이 유일하게 속을 털어놓는 친구다. 딸, 미양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남편 이야기를 쥬디는 눈물을 글썽이며 들어주었고, 진심으로 화숙을 위로해주었다. 아마 이번 일도 쥬디가 화숙을 위해서 꾸몄던 것 같다. 미셸이 화숙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고, 파티를 핑계로 두 사람을 연결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 사람이 좋아. 미셸은 나를 황홀한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이야. 그는 어쩌면 프로방스가 내게 보내준 선물일지도 몰라.”


  그런데 왜? 쥬디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화숙을 바라본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기는 화숙도 마찬가지다. 


  “선물을 왜 안 받아? 미셸처럼 귀하고 멋진 선물을 왜 거절하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를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면 겁내지 말고 받아.”


  화숙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얼굴로 미셸이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숨이 막히도록 황홀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평생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든 남편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와 연애하고 사랑을 즐기고 싶었다. 그녀가 아직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쥬디가 화숙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미셸을 거절한 이유가 뭐야? 뭔가 클리어한 이유가 있어야…”


  화숙이 마지막 남은 미련을 모질게 떼어내듯 어렵게 입을 열었다. 


  “쥬디. 나는, 아직 남편을… 정리하지 못했어.”

  “오 마이 갓!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구나?” 


  쥬디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화숙을 끌어안았다. 자신이 괜히 일을 만들어서 화숙을 힘들게 했다며 용서까지 구한다. 

  참 여리고 착한 친구다. 쥬디의 품이 그녀의 마음만큼 따뜻하다. 화숙은 미양이의 품도 이렇게 따뜻할까 생각한다. 그럴 거다. 화숙은 미양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 짓는다. 

     

  미셸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미양 때문이었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려고 미셸을 밀어냈다. 딸은 이미 자라서 엄마 품을 떠났다. 빈 둥지만 남았으나 화숙은 자신의 둥지를 고결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래야 딸이 둥지를 찾아올 때마다 넉넉한 가슴으로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오늘의 결정을 한탄할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화숙은 엄마의 명예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싶다.      




  니스 기차역에 도착한 화숙은 엑상프로방스로 가는 제일 빠른 기차를 알아본다. 

  오후 2시 15분 테제베를 타면 6시 전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티켓을 산 화숙은 편안한 얼굴로 기차역을 둘러본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여행의 설렘을 안고 기차역으로 들어선다. 그들이 뿜어내는 행복한 기운이 그녀를 들뜨게 한다. 

  화숙은 니스 역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샤갈 미술관에서 산 그림엽서들을 꺼내 든다.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엽서에 차곡차곡 그녀의 마음을 담는다.      

  딸에게 엽서를 보낼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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