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지 못한 날
새로운 신문에는 새로운 내용이 있다
어제 책이 출간되었다. 그 책을 알리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고, 또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는 책 이야기를 하는 것도 죄송한데 내용까지 복사 붙여 넣기를 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들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곱씹어가면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게 지어주었던 미소, 혹은 줌으로 봤던 초록 초록 셔츠, 큰 눈망울 같은 것을 생각하며 카톡을 보냈다. 한 서른 명에게 보냈을까. 시간이 너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학원을 가야 하는 오후 3시 30분이 되었다.
뜨거워진 휴대폰을 잡고 마을버스를 탔다. 내려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미술학원으로 갔다. 미술학원에 애들을 보내고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50분 동안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냅다 신문을 펼쳤다. 오전에 읽었지만 읽다가 갑자기 출간 소식을 출판사를 통해 듣고 카톡을 보내느라 많이 읽지 못했다.
다시 신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봤다. 정치 이야기는 재미없지만 가끔은 재밌고 쉬운 이야기도 나온다. 직관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빠져들고 있을 무렵 갑자기 아까 보낸 카톡에 대한 답이 왔다. 오래전 수업을 가르쳤던 분에게 출간소식을 알렸더니 거기에 대한 답장이었다.
답장을 보고 배실배실 웃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며 또 열심히 홍보 카톡을 보냈다. 그러다가 보니 기사를 꼴랑 2개밖에 읽지 못했다.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에 와서 먹을 것을 차려주고 씻기고 잠시 놀고 나니 밤이었다.글로성장연구소에 관련된 일 중 하나인 수상작을 뽑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커피숍을 왔다. 토요일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기도 하고 게다가 이번주는 남편이 오후 출근이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전 2시간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느 날처럼 신문을 가방에 넣었다. 어제 전체를 다 읽지 않은 신문이 찝찝했지만 빼고 새로운 토요일 신문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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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신문을 한 번도 꺼내 읽지 못했다.
대신에 그 사이 아이들과 키즈 카페 가기, 인생 네 컷 찍기, 탕후루 사 먹기, 키링 사기, 내 트레이닝복 바지 사기 등을 함께 했다. 저녁에는 애들을 씻기고 함께 치킨을 먹었다.
11시에 퇴근한 남편이 치킨을 먹는 걸 바라보며 함께 이야기를 듣고 동조하다가 남편이 씻으러 가고 12시가 되었다.
가방을 쓱 열어보았다. 가방 안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신문이 있었다. 아마도 이 신문을 다음 날 또 읽을 거고, 월요일이 되면 주말 신문을 다 읽든 다 읽지 못했든 나는 새로운 그날의 신문을 가방에 넣을 것이다.
매일 다 읽지 못하는 신문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다 읽지 못한, 혹은 아예 읽지 못한 새 신문을 버리고 새로운 신문을 다시 가방에 넣는 일은 결코 흥미로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반복하는 걸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매일 실패하는 일상이란 익숙하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일을 좋아한다. 그중 하나, 가장 최근에 발견한 일이 바로 신문 읽기이다.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읽으며 분명히 무언가가 쌓이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내일 조금 읽지 못했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다. 다음 날 쌓으면 되니까. 그 쌓인 게 1년 , 2년 되면 분명히 과거의 자신과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늦은 밤, 아이들 옷을 개키고, 가방을 열어 신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한두 개 기사를 더 읽고 망설임 없이 읽은 신문 칸으로 넣어 정리한다. 가방 안 신문은 언제 어디서든 내게 읽을거리가 되어주고 가끔은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쓱 꺼내서 읽으면 매일 새로운 기사가 쏟아진다.
삶이 똑같다고, 무료하다고. 그 생각에 반하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 기뻐진다. 하루 읽지 않아도 괜찮다. 정말이다. 그다음 날 신문에도 어차피 거짓말처럼 새로운 글이 쏟아지니까.
신문 내용이 아름답고 세상 살기 좋다는 내용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방 안에 신문을 바꿔 넣으면서 내가 하는 생각은 하나다.
새로운 신문에 새로운 내용이 또 있을 거야.
그러니 안 읽은 날의 신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날그날 신문에 집중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