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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세상의 속도를 이기는 힘

산이 비워준 마음, 그리고 채워진 여유

by culturing me

현대인은 날이 갈수록 바빠진다.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진다. 그런데 바쁜 거에 비해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 시간도 쓰고, 돈도 썼다. 심지어 애도 썼다. 그런데 둘러보니 남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경우가 있다. 간혹 오해로 관계도 잃을 수 있고, 의미 없이 쓴 돈은 통장 잔고로 실망을 주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거울도 보기 싫다. 가만히 앉아 신세한탄을 하거나 먹고, 마시며 수다로 풀다 보니 운동 부족으로 뱃살과 신체의 이상신 호만 늘어간다.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니 이젠 따라잡지도 못하겠다. 마음은 급한데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으로 해결되지 않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일상.


우리 집 앞에는 응봉산이 있다. 거의 매주 응봉산에 올랐다. 처음엔 40분 거리의 팔각정에 오르는 것도 힘들더니, 몇 주가 지나니 익숙해진 길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남산으로 옮겨 갈 때마다 색다른 갈래 길로 여행을 했다. 이 또한 사람의 손이 너무 많이 타 인위적인 산이 돼버려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강도 걷고, 삼청공원도 걷다 보니 주말 아침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 걷는 재미가 쏠쏠히 붙었다. 그렇게 1년쯤 걸었을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여유도 느끼고 싶고, 밀려오는 미세 먼지 때문에 생긴 공기 갈증도 해소하고 싶어 졌다. 깊은 산의 나무 향 그득한 공기가 그리웠다. 그렇게 북한산 등반은 시작되었다.


오르는 길에 나무들을 벗 삼아 중얼중얼 얘기하게 되었다. " 너는 참 멋있다." , "너는 그 긴 세월을 잘 버티고 이렇게 장대하게 서 있구나" , " 나 너무 힘든데, 잠깐만 기대어 쉴게." , " 네 냄새 좀 맡을게" 이렇게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매주 만나다 보니 나무들과도 정이 든다.


산에 자주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산에 꿀단지를 숨겨놨니?" 하지만, 산을 오르며 몸의 에너지를 쓰니 마음이 비워지고, 그 비워진 마음을 더 크고 여유 있게 나무가 채워주고 있음이 느껴졌다. 때로는 나무가 속삭여 준다. "그깟 일? 괜찮아. 나는 태풍, 폭풍우, 비바람이 쳐도 다 맞아냈는걸" 이렇게 산에 갈 때마다 나무들이 변함없이 나를 받쳐주고 있음이 믿어지자 자신감이 더 생기게 되었다. 더 높은 산행을 감행하니 용기도 생겼다.


큰 산을 무너지지 않게 나무들이 뿌리로 지탱하고 있음이 너무 기특하고, 감동 적여 갈 때마다 울컥하기도 한다. 이렇게 멋진 녀석들이 내 친구라니. 나도 나무처럼 겸손하고 싶다. 산도 나무도 말이 없지만, 자기 몫을 해 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월의 흐름을 아무런 미동 없이 바라봐 준다. 이런 무한한 믿음과 위로를 받고서 무엇을 못하겠는가? 말 잘하는 인간과 산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가 겨룬다면 말 없는 나무가 이길 것이다.


- 세상에 사는 사람 : "저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이랬다고요!"

-산에 사는 나무 : 침묵.


나무는 내가 주절거리는 말을 다 받아준다. 그리고 대가 없이 향기도, 기운도 준다. 고마운 마음에 갖고 간 생수 한 병을 나무와 조금씩 나눠 마신다.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다. 산을 내려오며 나무에게 말한다. "또 올게 잘 있어" 나에게는, 무한히 반겨 주는 나무들과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을 산이 있다. 이 정도 클래스의 친구를 어떻게 자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세상의 속도를 따르느라 내가 텅 비어 가는 걸 몰랐다. 인간은 성숙하지 못할 때 앎으로 채우나 보다. 지식으로는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 지혜의 통로를 지나야 깨달음으로 가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니 북한산 덕에 몸도 마음도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내 사랑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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