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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세요?

by culturing me

“역시 맘에 안들어”

얼마 전부터 내 눈동자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울 앞을 지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동자로 시선이 옮겨지게 되었다.


뭔가 좀 달라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눈썹을 정리해 봤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메이크업 도구를 화장대 위에 펼쳐놓고 본격적으로 눈 화장을 시작했다. 눈 두 덩이에 섀도로 컬러를 입히고, 아이라인을 정성들여 그리고 눈을 위로 치켜뜨며 마스카라까지 발라봤다. 이전 같으면 흡족해하고도 남을 정도의 ‘변장술’이었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흠... 화장으로 감춰질 게 아니지" 곧 정성 들여했던 눈 화장을 다시 지워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눈 화장을 잘 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을까? 내 눈이 나를 거슬리게 한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남이 찍은 내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타인의 시각으로 나를 본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SNS가 일상화되면서 사진 문화도 바뀌었다. 허락 없이도 핸드폰 카메라를 상대방 얼굴에 불쑥불쑥 들이대는 가 하면 그 사진이 나도 모르게 남의 SNS에 올라가 있는 어이없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사진 속에 있는 나 자신이 낯설게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잠깐만, 저게 나란 말이야?”


거울을 통해 내가 짓는 표정은 온화하고 착한 표정이었는데, 남의 시선으로 포착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허와 가식이 공존하는 낯선 표정이었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하고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게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낯선 표정의 그 사람이 내 본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니 지난날들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 졌다.


“언제부터 이런 표정이 나오게 된 거지?"

“나를 지키며 사는 게 저렇게 힘들었나?"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여 40년 전부터 찍어온 사진들을 모아 온 앨범들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사진 속의 내 표정과 눈동자를 유심히 관찰해 봤다. 어릴 때의 순수하고 해맑았던 표정이 언제부터 표독스러움과 가식이 스며들게 되었을까?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걸고 살아온 인생에 나도 모르게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 표독스러움과 가식이란 불청객의 원인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꾸미지 않은 표정은 나이만 못 속이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심리상태까지도 확연히 드러낸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눈동자이다. 지나온 세월을 담아낸 40년간의 사진을 훑다 보니 가장 화려하고 활발하게 일하던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사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시기의 나는 온갖 브랜드의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고, 우아한 머리 스타일과 세련된 화장으로 예뻐 보였다. 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척' 하는 모습을. 그것은 내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멋있는 척, 예쁜 척, 잘날 척, 뭐 좀 하는 척. 그야말로 봐줄 수가 없을 정도의 가식이 사진 속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던 취향의 것이 아닌 세상이 좋다는 것들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휘감은 여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앨범을 덮어 버리고 다시 거울을 봤다.

“너는 어딨니? 도대체 누가 되고 싶었던 거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가볼만하다는 곳을 여행하고 좋다는 것을 찾아다니며 바쁘게 지내온 세월이었고 그 경험을 먹고 오늘의 내가 형성된 것은 맞지만, 내면에 쌓이는 깊은 그 무엇은 바쁨과 채움으로써 가 아니라 쉬어감과 여백을 통해서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경험한 것에 대해, 노력을 통해 이룬 것에 대해, 어느 날 선물같이 다가온 행운에 대해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들을 오히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로 간직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웠더라면 내 눈동자는 공허하고 표독스럽게 힘주는 눈동자가 아니라 받아주고 담아주는 넉넉함의 눈동자였으리라.


아무리 자랑을 해도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으니 그토록 힘을 주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로는 아닌 척 겸손한 척해도 감춰지지 않는 눈동자는 화장이 아니라 변장을 해도 소용이 없다.


자신만의 진실과 여백을 마음에 담아둘 줄 알면 구태여 그 여백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실과 여백이 있는 사람의 눈동자에서는 아름다운 빛이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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