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로는 해결되지 않는 욕구 불충족
며칠 전만 해도 포근해서 여기저기 예쁜 꽃봉오리들이 얼굴을 내밀더니 꽃 피는 것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가 왔다.
하지만 꽃나무들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추위를 견뎌내고 있으니 곧 목련, 개나리, 진달래,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식물은 추위에 속절없이 당하지 않는다. 꽃샘추위에 움츠려 들지 않고 꽃을 피우기 위해 힘을 낸다.
얼마 전 20년의 수려한 경력을 갖고 있음에도 나이와 몸값이 높다고 계약 연장이 이뤄지지 않아 무직이 되어버린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답답함을 달래려 말없이 그냥 걸었다. 이때 친구는 철망 사이로 고개를 내민 푸른 싹과 꽃봉오리를 보고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저 꽃봉오리들이 나보다 낫다"라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었다. 순간 저 힘이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비단 식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식물에게 물, 바람, 햇볕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힘을 내기 위해선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수많은 욕구 중에 충족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뿐이라면 다른 욕구의 충족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햇볕을 못 받으면 쑥쑥 자라지 못하고 물이 부족하면 식물이 시들어가는 것처럼 사람도 고루고루 욕구가 충족되어야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문명이 빠르게 진화하고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인간의 욕구도 분화하고 다원화된다. 따라서 자기 제어와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면 인간은 쉽게 욕구에 의해 지배되고 이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 또한 클 것이다. 이런 고통에 빠진 사람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잘 견디면 좋은 일이 다시 올 거예요.” 같은 말은 결코 위로가 될 수 없다.
견뎌야 하고 기다리면 다시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현기증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밥은 곧 생길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고 가버리는 얄미운 사람일 뿐이다.
경력을 쌓아가던 사람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상실이다. 40대 중반의 여성에게는 더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매슬로우 (Abraham Maslow)의 5단계 욕구를 빌어 얘기하자면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제외하고는 안전욕구, 사랑과 소속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 모두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어쩌면 기초적 욕구인 생리 욕구 (physiological needs)를 맞추는 데에도 장애를 받을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이 암담한 상황도 꽃샘추위인가? 맘이 추우니 국밥 한 그릇 나눠 먹으며 친구의 밥숟가락에 김치 하나 얹어준다. ‘너 스스로 꽃봉오리를 틔울 수 있을 때까지 힘내 친구야' 마음의 이 말을 차마 내어놓지 못하고 국밥에 김치 한 조각 얹어 주는 걸로 응원의 마음을 전해 본다.
시련이 누구에게나 닥치듯 생명력 또한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고통이 오는 곳을 알았다면 빠져나갈 곳도 본인 만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