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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Oct 09. 2023

수료식 날 부모님 볼 수 있습니까

6일차

 훈련소의 5주 일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2주간의 정신교육과 3주간의 전투훈련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2주라 함은 물자지급과 신체검사 등을 포함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주말을 제외하면 7일 정도가 정신교육 기간이다. 내가 훈련소에 입소한 2020년 5월은 2019년 말부터 시작되어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급부상한 COVID-19, 코로나라 불리는 역병이 대한민국에서 대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 전후로 훈련소에 입소한 사람들과는 세세한 일과는 다르겠지만 큰 틀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교육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뭔가를 세뇌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일반적이고 유익하다. 주요 전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역사,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따라 변화한 국방의 개념, 대치상태인 휴전국 북한과의 관계, 우리나라의 전투력, 그리고 기본적 인권교육 등이 교육의 주된 내용이다. 마지막 날에는 지금껏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시험을 보는데 형식적인 통과의례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재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군대 오기 전에 애매하게 시간이 빈 사람이 있다면 한국사 공부를 유명한 전투 중심으로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정신교육은 학교 수업을 듣듯이 진행됐기 때문에 크게 낯설지 않았다. 훈련병들은 때마다 소대장, 중대장 등의 간부들이 진행하는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모였다. 브라운 북이라 불리는 병영생활의 모든 기본 상식을 담은 책을 보며 자습하는 시간도 주어졌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해야 하는 질문지도 작성해야 해서 어떻게든 공부를 하기는 해야 했다. 물론 정리 잘하는 친구 노트 베끼는 건 어디서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사람을 기다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훈련병들도 있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원래라면 교육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매주 토요일은 클린데이라고 해서 대청소를 하는 게 주된 일과였고 남은 시간에는 잡담을 하거나 독서를 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강의 일정이 꼬인 모양인지 소대 단위로 훈련병들이 강의실 호출다. 코로나 시국이라 대규모 인원을 두고 강의를 하는 일이 불가능해져 전체 인원을 여러 번 나누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훈련병이나 간부나 이래저래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수첩과 필기구를 챙겼다. 가서 졸면서 시간을 보내다 올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때까지는 학구열이 좀 남아 있었다. 


 모이고 나서 보니 호출의 목적은 강의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정보 정달도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소대장 주관 하에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이제 훈련소에 온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훈련병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시간이었다. 자대 배치 이후에 군생활을 조금만 하면 간부님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제 막 입소한 훈련병에게 간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소대장은 중사 계급이었고 나이는 훈련병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훈련병들은 소대장을 매우 어려워했다. 소대장은 이번 모임을 계기로 훈련병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듯했다.


 소대장은 매년 해왔을 레퍼토리로 계급을 이용한 몇 가지 농담을 했고 자기 군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는 금방 풀렸다. 생각해보면 우리야 훈련병이니 여기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직업군인인 소대장에게는 주말 출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소대장으로서 비록 훈련병이지만 자기 부대원과 소통하려는 책임감에 나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주말에 불러낸다고 불만 있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친구들도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고 참여하고 있었다. 훈련병들에게 바라는 점과 주의할 점 등을 끝으로 소대장은 해야 할 말을 마쳤고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었다.


 분위기가 많이 풀린 덕에 훈련병들은 솔직하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자유시간에 풋살이나 체육활동을 할 수 있을지. PX라 불리는 군 마트는 언제부터 이용할 수 있는 것인지. 등 생활에 한 질문이 주를 이뤘고 훈련에 대한 질문들도 있었다. 먼저 군대에 간 친구에게 뭔가 들은 모양인 한 훈련병은 코로나 이후로 화생방을 하지 않는다는데 사실인지를 물었다. 방독면 착용 등의 훈련은 하지만 실제로 가스실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대답에 우리는 다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해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뭔가 줄어들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이어서 유격은 얼마나 힘든가요, 행군은 몇 시간 하나요 등 미래를 두려워하는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너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더 힘들 거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인 대답에 절규하며 웃고 떠는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났다. 마무리할 때가 되어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는 소대장의 말에 선뜻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다. 잠깐 주저하는 침묵의 분위기 깨고 한 덩치 큰 훈련병이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수료식 날 부모님 볼 수 있습니까?”


 훈련소에 입소하 가장 기다리게 되는 날이 수료식 날이다. 훈련소의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훈련병 신분을 벗어나 이등병 약장을 달고 군번줄을 받는 날이다. 수료식은 매우 큰 규모의 행사로, 원래라면 가족들이 모두 찾아와 5주 만에 처음으로 아들 얼굴을 보게 된다. 부모님이 직접 아들 목에 군번줄을 걸어주고 약장과 태극기를 붙여주며 포옹하고 눈물 흘리는 사진을 입대 전에 본 적이 있었다. 행사 후에는 부대 바깥에 나가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올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이처럼 중요한 행사가 코로나 집단 감염의 우려 때문에 불확실한 상태가 되어 있던 때였다. 실제로 입대 당일 있었어야 했는 입소식도 취소되었던 상황이라 수료식도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질문을 한 당사자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질문할 대상도 잘못되었다. 국방부 관계자나 질병관리본부쯤 되어야 훈련병의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대장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 였고,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였다. "감사합니다."라는 훈련병의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오후 시간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저녁밥을 먹을 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굵어지지도 가늘어지지도 않고 계속되어 취침시간이 되도록 그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차분하면서도 조금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낮에 들었던 훈련병의 질문이 귀에 맴돌았다. 


“수료식 날 부모님 볼 수 있습니까?”


 그건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답을 들을지 어떤 결과가 있을지 뻔히 알지만 묻지 않으면 안 됐을 질문이었다. 마지막인 것을 알면서 ‘다시 볼 일은 없겠지?’ 혼자 묻게 되는 이별 같은 것이었다. 불안한 예감은 가장 먼저 물음표의 문장으로 찾아온다. 마침표를 찍어주기 전까지 꾸준히 몸집을 불린다. 그래서 때로는 불안에 대해 확실한 불운으로 답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는 쉽게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첩을 꺼내 짧은 시를 썼다.


그날 밤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물 웅덩이마다
부모님 볼 수 있습니까
부모님 볼 수 있습니까
뛰어가는 군홧발의 훈련병처럼
바쁜 파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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