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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Oct 13. 2023

나는 잘 지냅니다.

7일차

 논산에서 서울까지 우리 사이의 거리. 

 우리가 혼자였던 시간과 함께한 시간. 

 우리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로 인해 모두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매일 커져만 갔다. 그리움은 멀리 떨어진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마음이었고, 떠올릴 것이 많을수록 마음의 징검다리는 촘촘해져서, 당장이라도 그들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훈련소에서 나의 그리움은 때로는 걱정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발현되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쓸 편지의 내용들을 생각하고 다듬는 일이 그 순간에는 가장 다급한 일이었다. 


 오늘은 훈련소에 와서 처음으로 전화를 쓸 수 있는 날이었다. 훈련병들은 며칠 전 나라사랑카드(군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를 이용해 군 전용 공중전화 어플에 가입했다. 가입한 순간부터 훈련병들은 전화를 쓸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할지, 무슨 말을 할지를 고민하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했다. 나 역시 가족과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고작 일주일 되었음에도 몇 년 만에 다시 보기라도 하는듯한 아득한 그리움과 설렘이 가슴을 채웠다.


 가장 먼저 가족의 안부가 궁금했다. 군대에 오고 나서 가족과 연락할 수단이 없으니 매일 마음이 불안했다. 잠들기 전이면 항상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쉬는 법을 모르시는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시면 어떡하지. 대화를 즐기는 어머니 아들 군대 보내 놓고 헛헛한 마음에 우울해하시면 어떡하지. 늦게 공부 시작한 형, 눈치도 많이 보이고 힘들 텐데 맛있는 것 잘 챙겨 먹으면서 하고 있으려나. 할머니는 순천에서 잘 쉬고 계실까. 못 뵌 지가 오래되었네.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떠올리다 보면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훈련소에서는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의 온기를 느낄 수 없어 매일 외로웠다. 과분할 만큼 많은 걱정과 위로를 받고 온 직후라서 더욱 그다. 모든 낯선 장소가 그렇지만 훈련소는 더욱 강한 모습을 드러내야 하고, 나약한 모습들을 숨겨야 하는 장소였다. 이해받기를 바라는 나약함은 편리를 노리는 영악함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와 속깊은 대화가 그리운 나날이었다. 오늘 드디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벌여온 조용한 나의 사투를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다.


 전화 이용의 룰은 단순했다. '개인당 5분, 시간 내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을 시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쁨이 더 컸기 때문에 불만 생기지 않았다. 나는 1초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빠르게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듣고 싶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수신음만 오래도록 반복되었다. 금세 40초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안 되겠다 싶어 형에게 전화를 했으나 마찬가지로 받지 않았다. 이어서 아버지도, 마지막으로 전화 한 여자친구마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분명 각자 다른 사정이 있을 터였지만 나에게는 모두가 합심해 나의 연락을 받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느껴졌다. 야속한 마음과 함께 괜히 분한 기분도 들었다.낯선 번호로 전화가 올 수 있다고 입대 전에 분명히 말도 했었는데, 걱정하던 마음은 어디로 달아나고 그저 화가 났다.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 30초가량을 반복되는 수신음을 들으며 심호흡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써야 했다.


 처음 설명했던 대로 조교는 통화를 하지 못한 이들의 명단을 조사해서 가져갔다. 전체 순서가 한 바퀴 돌고 다시 부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오랜만에 가족과 여자 친구, 친한 친구들과 전화 한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글썽인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벅찬 마음을 나누는 동기들의 말이 죄다 자랑으로 들렸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몇몇은 다가와 나를 위로했다. 나는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사회에서 지낼 땐 부모님과 일주일 정도 연락 없이 지내는 것 정도는 흔한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된지도 한참, 이제 사회인 취급을 받는 나이면서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것일까.


 두 시간 정도 지나 드디어 통화를 못한 훈련병들을 호출하는 방송이 울렸다. 나는 다시금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친구들 번호까지 챙겨서 전화를 하러 나갔다. 이전에 했던 전화 순서의 역순으로 여자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기다 없이 바로 연결이 되었다. “미안해! 나 일하고 있는다고 전화를 못 봤어. 정오야 잘 지내지?” 너무나도 익숙하고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분명히 잘 지낸다고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목이 턱 막히고 코가 찡해져 울음 비슷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응 잘 지내.” 한마디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여자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전화를 못 받아서 자기가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일까 봐 자기를 원망했다고 했다. 나는 반쯤 울먹이느라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건너편에 있다는 것이 반가움을 넘어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 관심 가져주는 이가, 내가 그를 그리워하듯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눈물이 계속 나왔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몇 마디 안부를 더 나누었다. 2분도 안되어 금방 전화를 끊어야 했다. 여자 친구가 "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도 보고 싶어." 대답하며 첫 번째 통화가 끝났다.


 다음 전화들도 모두 잘 연결되었다. 형이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동생 전화가 왔는데 못 받았다고, 혹시 왔었냐고 물어본 듯했다. 여자 친구와의 첫 통화에서 한번 울어서인지 감정이 많이 격해지지 않아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는 여자 친구에게 보여줬던 모습보다 훨씬 의젓하게 통화를 마쳤다. 아직까지는 몸 쓰는 훈련이 없어서 편하게 보내고 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여기서 경험한 외로움, 단절감,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 등은 내가 품고 가족에게는 숨겨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다들 건강했고, 다들 나를 걱정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 보고 싶다." 하는 어머니의 말에 "저도 보고 싶어요." 하며 통화를 마쳤다.


 뭐든 다 쏟아내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직접 목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말을 삼키게 되었다. 이미 그들의 목소리에 나를 염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말했다간 괜한 걱정만 키울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을 나에게 주고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할 수 없었다. 내가 마음이 약해진 것처럼 보일까 봐, 혹시나 적응을 힘들어하나 걱정할까 봐 독립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척했다. 먼저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그에 맞추어 “나도 보고 싶어.”, “저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그렇게만 주고받아도 위로가 되었다.


 안부를 전하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안부는 때로 터져나오는 울음, 서러운 고백처럼 전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로 하여금 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하루가 벅차고 거짓으로 나를 꾸며내기 힘든 날에는 좋은 내용만 골라서 전하게 된다. 편집된 좋은 사실들이 안부가 된다. 코로나가 유행중이라 화생방도 안하고 좋아요. 날이 많이 더우면 실내에서 훈련해서 괜찮아요. 


 사실 코로나 기간동안 우리는 주에 2개씩만 보급되는 마스크에 묻은 흙먼지를 씻어가며 잠들기 직전까지 착용하고 생활해야 했다. 날이 더워서 주간훈련이 미뤄지면 야간에 늦게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일이라면 씩씩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힘든 일들은 언젠가 우리가 만나서, 술이나 한잔 기울이면서, 회포를 풀면서 충분히 나누게 될 것이다. '지금만큼은 우리 서로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자.' 하는 마음이었다. 


 안부를 듣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겠다. 내가 그러했듯, 상대 역시 나에게 안부를 전하는 동안에 다 말하지 못하고 단어의 뒤에 숨긴 슬픔이 있을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해도 나는 알아. 네가 얼마나 힘든지." 한마디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배려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가 안부 몇마디 만으로도 옆에 있는 듯 서로를 떠올리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잘 지냅니다.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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