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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Oct 14. 2023

two four six O one

8일차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대학생이 되기까지 나는 여가생활도 없이 공부를 했다. 방과 후 집에서 학교 숙제를 하고, 과외를 받고, 과외 숙제를 하고, 남은 개인 공부를 마치면 하루가 갔다. 교육을 위해 무리하게 서울로 올라온 우리 가족은 자식들이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명으로 살았었다. 타의와 상황에 의한 동기로 시작한 수험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특별히 잘하는 것 없는 학생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부터는 공부가 유일한 나의 특기가 되어서 나는 더욱 공부에 매달렸다. 덕분에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아쉬운 점이 많다.


 공부 이외에 그나마 흥미와 재능이 있었던 것은 독서와 글쓰기, 영화감상이었다. 약사이자 시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어머니는 내가 글에 재능이 있는 것은 좋아하셨지만 역설적이게도 책에 몰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직은 공부가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청소년 도서부터 시작해서 후에는 나이에 맞지 않는 책들까지 빌려 읽다가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이라 하더라도 경제, 종교 등을 다룬 책이었다면 덜 혼났을 것 같은데, 내가 읽는 책의 80% 이상은 소설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고 인간이 겪는 다양한 상황과 심리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 역시 같은 맥락으로 좋아하고 즐겼다. 영화는 책 보다 더욱 비밀스럽게 즐겼던 취미인데,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부모님이 잠드시면 느지막이 노트북으로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X맨 시리즈를 가장 좋아했다. 그리고 시리즈 대부분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모든 영화 주인공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 상처가 나면 금새 회복하며 잘 늙지도 않는 신체로 몇백 년의 세월을 경험치로 가진, 염세적이지만 깊은 곳에 사랑의 감정이 있는 야수 캐릭터에 나는 매료됐다. 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 휴 잭맨은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 최고의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고3 때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레미제라블>(2012)에 휴 잭맨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도 명작 기반의 영화가 끌리셨는지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매년 찾아보는 영화인 <레미제라블>에서 휴 잭맨은 주인공 장발장 역을 연기했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장발장과 자베르가 대치하는 장면이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죄로 5년의 형을 선고받고, 2번의 탈옥 시도로 인해 감옥에서 총 19년의 형을 산다. 장발장은 석방된 후에도 그가 죄인이었다는 증명서를 평생 들고 다녀야 했다. 범죄자 꼬리표를 달고 받는 차별과 천대에 분노한 장발장은 몰래 자기 신분을 버리고 일하여 시장이 될 정도로 성공한다. 시장으로서 사람들을 도우며 과거를 잊은 채 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새로 부임한 경찰이 인사를 오는데 그가 자베르였다. 자베르는 장발장이 19년간 복역을 할 때 교도관으로 있었던 사람으로 경찰이 되었지만 사라진 장발장을 여전히 쫓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발장은 교도소에 있을 때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다. 24601로, 외우지 않으려 해도 영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Two Four Six O One이라는 대사를 듣다 보면 외워진다. 유달리 힘이 셌던 죄수 24601은 자베르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처음에 자베르는 시장이 된 장발장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장발장이 마차에 깔린 사람을 돕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장발장의 정체는 들통나고, 계속된 추격 끝에 둘은 어두운 밤 도시의 골목에서 대치한다. 두 인물이 대치하는 장면에서 자베르는 죄인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요하듯 계속해서 그를 24601이라 부른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베르는 장발장의 자비로 목숨을 보전하게 되고, 죽을 위기를 겪으며서도 사람들을 보호하고 돕는 장발장의 모습을 보며 자기 신념을 놓고 갈등하다가 끝내 자살한다. 장발장은 그제야 온전한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어 모든 것을 정리한 후 교회에서 자신의 양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한다.


 다양한 측면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사건은 장발장이 자신의 이름을 잃고 24601로 살다가 다시 자기 이름을 되찾기까지의 여정이었다. 한때 그는 자기 이름을 버리고 가명으로 시장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기로 오해받은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자기가 24601 임을 고백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당장은 잡혀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그는 도망자의 신세를 택한다. 다양한 사건 이후 자베르의 죽음을 끝으로 장발장은 자기 이름을 완벽하게 되찾아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그의 삶은, 죄악과 선함의 경험들이 장발장이라는 이름 안에서 조화하며, 이름을 되찾아 새로워진 장발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이자 투쟁이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당연히 받게 되는 이름에 자기 삶이 덧씌워지며 이름보다 삶과 사람이 더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24601로 살았던 순간들은 그것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있었던 시련으로 느껴졌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것이 자신의 훈련병 번호이다. 입소 첫날 외워야 했던 온갖 숫자들, 제 2교육대 25 연대 3중대 2소대 뒤에는 나의 훈련병 번호가 있었다. 이병으로 진급하기까지 훈련병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게 된다. 나의 번호는 144번이었고 144번 훈련병으로 불렸다. 이후에도 군번이라는 것을 받지만 군번은 본인 확인을 위한 주민등록번호의 개념이지, 이름을 대체하는 번호는 아니다. 훈련병 번호로 살아가는 5주간은 군 생활 동안 유일하게 이름을 빼앗기는 순간이다. 


 144번 훈련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다 보면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 144번이라는 번호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고민하고,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번호는 그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맞추어 우연히 주어진 번호였다. 온전히 편의를 위해서 붙여진 번호인 것이다. 예전 한 영화에서 납치범이나 유괴범과 대화를 할 때 피해자의 이름과 취미 같은 정보를 일부러 전달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범인에게 피해자 역시 한 명의 사람임을 인식시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영화는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반대로 내가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번호로 불리는 것은 나의 인권이 말살되는 것 같은 과장된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이어서 ‘나의 이름을 내가 그렇게 소중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평생 나를 대표하고 인식시킬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고민해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발장이 자기 이름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런 순간이 나에게는 없었다는 자각이었다.


 이름은 노력 없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부모님께서 자식이 바르게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름의 소망을 담아 고심해서 지어 준 것이다. 나의 친구 중에는 이름을 바꾼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들은 자기를 어떻게 드러내고 싶은지를 열심히 고민하며 작명소를 찾아다녔었다. 물론 나는 나의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만 이름을 바꾸려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선택한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기쁨, 본인의 정체성과 이름을 동일시하는 기쁨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이름의 뜻에 대해 질문하면 친구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재잘재잘 설명해줬었다. 뺨에 홍조까지 띄워가며 자기 이름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나도 그들에게 내 이름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비해 뭔가 심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필명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나의 이름을 잠깐 떠나있었던 훈련소 기간은 그 욕심을 구체화시키기에 좋은 때였다. 사회에서도 '부캐'라는 용어가 막 유행하던 시기였고, 나는 이 유행어가 한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긍정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사람이기도 해요." 라는 표현이었다.  


 '정오'는 그렇게 내가 새로 지은 작가로서의 내 이름이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여유와 다급함이 공존하는 경계의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에서 한 자 씩 떼어 온 이름이기도 하다. '정오'를 나누어 볼 때 성은 '정' 이고 이름은 '오'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 본명은 오씨로 살고 있지만, 문학의 족보에 있어서는 어머니의 성 '정'을 우선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은, 사회에서의 삶을 사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아버지의 성인 '오'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필명이 아닌 평생을 살아가는 이름은 지금 그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의 본명은 두 자 모두 사랑과 관련된 한자를 쓰고 있다. 나의 행동에 대한 결과로 오는 사랑이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받은것으로 살아간다는 마음 역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받은 사랑만큼 베풀며 살아가자는 뜻으로 나는 나의 이름을 새로 기억했다. 훈련병 기간을 마치고 내가 다시 이름으로 불리게 될 때, 마침내 사회에 나와 계급마저도 사라진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때 늘 기억해야 할 의미였다.


 훈련소에서 쓴 일기를 돌아보면 나는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훈련병 번호로 적어두었다. “131번은 재미있다. 139번은 도움이 필요한 친구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훈련소 기간 후반으로 갈수록 번호보다 그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과 함께 겪은 일을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144번 훈련병이었던 때 언젠가 나의 이름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듯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들을 소중하게 기록해두었다. 144번 훈련병의 시절은 24601의 시절이었다. 이 시절에는 당연하게 시련이 함께하겠지만 모든 과정이 지나가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내 이름의 의미처럼 더욱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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