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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Oct 15. 2023

나의 허물을 보냅니다

9일차

 훈련소에 입소할 때 사람들의 차림새는 각양각색이다. 편한 옷을 입고 온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브랜드부터 옷의 색상, 스타일까지 모두 다르다. 나는 상의부터 신발까지 당장 버려도 큰 타격이 없을 만큼 낡은 차림새로 입소했다. 2년 전만 해도 푹신했던 신발 밑창은 다 눌려서 딱딱했다. 입영 심사대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어느 정도 신경 쓴 옷차림으로 입소하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전날 밤새도록 놀다가 그대로 왔거나 배웅나온 친구들, 여자 친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 같았다. 환호성 속에 입대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높은 확률로 꾸민 티가 났다.


 하지만 무슨 옷을 입고 입소했든 하루가 지나면 모두 같은 옷, 심지어 속옷까지 똑같은 것을 입고 생활하게 됐다. 입고 온 옷은 고이 접어서 보관하다가 훈련소 조교가 나눠주는 상자에 담아야 했다. 이 상자는 각자 집에 돌려보내는 소포 상자로 장정 소포라고 부른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장정이라고 하면 건강하고 기운 좋은 남자라는 뜻만 생각할 텐데, 장정은 군역이나 부역에 소집된 남자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이름을 만든 사람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았다는 기쁨에 무릎을 탁 치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장정 소포에는 입고 온 옷 외에도 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써서 함께 담았다. 훈련소에서 보내는 편지는 생각보다 늦게 전달되기 때문에 소포가 더 빨리 도착할 가능성이 높았다.


 내일이면 장정 소포 상자를 수거해 간다는 말에 다들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지 쓰기에 바빴다. 나는 주말 동안 이미 편지를 다 써 두었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상자 속에 든 옷을 괜히 단정하게 정리하며 옷자락을 매만졌다. 상의는 목과 팔꿈치가 다 늘어나고, 하의는 무릎이 튀어나와 오래된 옷이 가진 추레한 특징은 다 갖고 있었다. 팔과 몸통이 스치는 부분에 일어난 보풀까지 완벽한 조화였다. 이건 빈티지도 아니고 그냥 버려야 할 낡은 옷이다 싶어 혼자 웃으며 이 옷들이 내 허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모습이 마치 오랫동안 몸에 달라붙어 역할을 다한 외피를 벗어던진 애벌레 같았다.


 곤충의 성장과정은 탈피와 변태로 이루어진다. 애벌레는 성충으로 변태 하기 전까지 여러 번의 탈피를 한다. 탈피나 변태나 둘 다 껍질을 남기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지만, 전혀 다른 모양의 성충이 되는 변태와 달리 탈피는 애벌레가 몸집을 키우기 위해 외피를 벗는 과정이라 형체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때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키우던 친구로부터 애벌레가 여러 번 탈피한다는 것을 배웠다. 애벌레가 열심히 옷을 벗고 다시 애벌레가 된다. 여러 번에 걸쳐 발전한 애벌레가 되는 과정을 ‘령’이라는 말로 구분하여 ‘2령 애벌레’, 3령 애벌레’와 같이 부른다.  


 갑자기 얕은 지식을 뽐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 생각이 난 것은 내가 벗어놓은 옷들이 변태 보다는 탈피에 의한 허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헷갈릴 일도 없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덩그러니 옷만 벗어 놓았으니 말이다. 애벌레는 탈피 직후 가장 연약한 몸을 가진다. 상처 입기 쉬운 몸으로 새로운 키틴질의 새 피부가 생기기까지 버텨야 한다. 나 역시 사회의 흔적이 묻어있는 옷을 벗고 가장 연약한 몸이 되었다. 이곳에서 내가 뭘 하다 온 사람인지 말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나는 타의에 의한 탈피를 하는 중이었다.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입고 온 옷을 벗어 차분히 정리하는 훈련병들의 손에는 주저함이 묻어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온 친구들의 옷도 이제 곧 상자에 들어가 한동안 잊힐 것이었다.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때마다 나는 연약해진 기분을 느꼈다. 주어진 자리에 적응하며 만들어온 것들을 버리고 무너뜨려야만 하는 시기는 때마다 찾아왔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사실 언젠가는 스스로 버려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을 벗어나도 조금 더 큰 도랑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매 순간 허물이 남는다. 내가 믿고 기대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었다. 옛 기억들과 함께 상자를 밀봉하며, 건조한 골판지가 살을 스치는 감각처럼 하루가 쓸쓸하게 지나고 있었다.


 과학적 용어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허물은 "잘못 저지른 실수" 혹은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거리" 와 같은 사전상의 의미에 가깝게 사용된다. 곤충과 파충류는 허물을 남기고 떠나거나, 허물을 직접 먹는다고 한다. 그런 모습이 사람의 눈에는 부정적으로 보인 모양이다. 하지만 두고 가는 모양이나 먹어 치우는 모양이 나에게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탈피 이전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혹은 극복하려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허물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 보다 허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냐 하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시를 써서 꾸준히 올리고 있다. 2019년부터 시작했으니, 현재(23년10월) 기준으로는 4년정도 되었다. 그 동안에 게시물도 많이 쌓여 168편이 되었다. 중복되는 게시물을 제외하고도 150편 정도이니, 늘어가는 숫자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내가 글마다 꼭 다는 해시태그는 "#잘쓰든_못쓰든" 이다. 해시태그에 기대어 완벽히 다듬어지지 않는 글들을 올리는 측면도 있지만, 잘 쓴 글이 아니더라도 내가 담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써서 올리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더하여, 다시 보니 별로라는 이유로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사실 과거에 쓴 글들을 보면 감상적인 표현에 기대어 미숙하게 쓴 글이 많아서,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글들에도 빛나는 부분은 분명하게 있다. 나의 표현이 미숙했을 뿐, 가치 없는 고민을 글로 쓴 적은 없었다. 지금에야 별 것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 내용들이 글에서 보일때면 나는 안쓰러움과 고마움으로 당시의 나를 떠올린다. 지금의 나를 위해 수십번 죽고 다시 태어난 나와 남겨진 허물들에게 괜히 한마디 씩 말을 걸어보게 되는 것이다. 


 허물을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허물을 막 벗은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연약한 몸으로 허물을 바라보는 마음만큼 애틋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허물은 가장 먼저 직시해야 했다. 아니, 사실 그전에 허물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 혹은 마음으로 그 허물을 씹어 삼켜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상자 속에 벗어둔 나의 사회의 옷가지들은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증거이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소화해야 할 남겨진 모습이었다. 쓸쓸했지만 나는 다시 단단해질 것을 믿었으니까, 보내줄 수 있었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허물을 보냅니다. 저는 또 한번 탈피하며 성장합니다.”라고 썼다면 멋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면 더 걱정되는 법이다. 우리 삶은 서서히, 조금씩, 어쩌면 영원히 탈피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변태와 함께 나비가 되는 것은 어느 날의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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